탈레반 “여학생들 복장이 불량해서 여대생 교육 금지령 내렸다”
여학생들의 대학 교육 금지로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고 있는 탈레반 정권이 여학생들의 복장 불량을 이유로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니다 모하마드 나딤 아프가니스탄 고등교육부 장관 대행은 22일(현지시간) 아프간 국영 RTA방송에서 여대생들이 이슬람 복장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남녀 학생들이 상호 접촉하는 문제 등이 있어 이번 조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그는 “(여학생들은) 히잡 규정을 준수하지 않았다”면서 “여학생 대부분이 결혼식에 갈 때나 입는 옷을 입고 등교했다”고 주장했다.
아프가니스탄 고등교육부는 지난 20일 아프간 내 공립·사립 대학에 보낸 서한에서 “추가 통보가 있을 때까지 여학생들의 수업 참여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지난해 8월 미군이 철수한 후 재집권한 탈레반은 여중·고생들의 등교를 대부분 막으면서 여학생들이 교육받을 기회를 박탈했는데, 이번엔 대학에서도 여성의 교육을 가로막은 셈이다. 여대생 교육 금지령이 떨어진 후부터 카불에 있는 주요 대학 정문 앞에는 무장 경비원들이 배치돼 여성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장악한 직후엔 여성과 소수자들의 권리 보장을 약속했으나, 점차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를 엄격하게 해석해 적용하면서 아프간 내 여성 권리는 급속도로 악화했다. 현재 아프간 여성은 얼굴을 모두 가리는 의상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하고, 남자 가족 없이는 여행도 할 수 없다. 대학 수업도 남학생반과 여학생반을 나눠 따로 진행됐으며, 여대생들에겐 얼굴을 가리거나 어두운 색깔의 옷만 입으라는 등 엄격한 복장 규정을 따르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에 이날 수도 카불에서는 이번 조치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처음 열렸다. 대부분 여성으로 구성된 시위대 50여명은 카불대학 밖에 모여 “교육은 우리의 권리다. 대학 문을 열어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당국의 결정에 반발했다. 아프간 동부 난가하르 대학에서도 항의 시위가 열렸다. 이 학교 의과대학 남학생들은 여학우들을 배제하는 조치에 항의하는 의미로 시험을 거부하기도 했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서방사회도 아프간의 여대생 교육 금지령을 규탄하고 나섰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이 결정이 번복되지 않는다면 대가가 있을 것”이라면서 “오늘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겠지만, 우리는 동맹국과의 협력 아래 이를 추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요 7개국(G7)도 성명을 내고 “성차별은 비인도적인 범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세력 알카에다의 9·11 테러에 대응해 2001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도 부인 로라와 함께 비판에 가세했다. 부시 부부는 “여성을 이류 시민으로 취급하고, 그들의 보편적 인권을 박탈하고 더 나은 삶을 살 기회를 부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분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나딤 장관 대행은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우리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그는 탈레반 정부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여성의 권리를 존중한다면서 여성 교육과 관련한 논의가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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