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 I am sorry
반면 미국 사람들은 ‘I’m sorry’를 입에 달고 산다. 길에서 살짝 스치기만 해도, 약속 시간에 몇 초만 늦어도, 남의 호의를 거절할 때도, 말을 못 알아들었을 때도, 누가 아프거나 죽었다 해도, 심지어 내가 배고프다 해도 그들은 ‘I’m sorry’라 말하면서 슬픈 표정을 짓는다.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실수나 잘못을 즉각적으로 인정하는 솔직한 성격이기 때문에 그 말을 자주 쓴다고 생각했었다. 미국 국적기를 타고 여행할 때 미국 승무원이 준 식사 쟁반에 포크가 없었다. 승무원에게 포크를 달라고 하자 아무 말없이 뒤돌아 가더니 잠시 후 “Here you are!(여기 있어요)”이라 퉁명스럽게 말하고 사라졌다. 당연히 “I’m sorry”라 먼저 말하고 공손하게 줄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 이유는 나중에 알았다.
미국 주재 생활 시작할 때 주위로부터 들었던 팁 중의 하나가 비록 나의 명백한 과실로 교통사고가 났더라도 절대 상대방에게 ‘I’m sorry’라는 말을 하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거의 모든 미국 사람들의 보편적 특성이라 했다. Sorry라고 말하는 순간 사과하는 것이고 이는 곧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니 추후 재판에서 불리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발생된 상황 또는 자신이 야기한 상황일지라도 경미한 것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I’m sorry’라 말한다. 하지만, 추후 경제적 손실, 업무상 또는 법적 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로 그 말을 하지 않는다.
그 승무원은 자신의 실수로 포크를 챙기지 못한 것에 대해 “I’m sorry’라고까지 말하면서 책임을 인정하기는 싫었던 것이다. 만일 문제가 되면 근무 평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었을 것이니 말이다. 나와 관련 없는 상대방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 ‘I’m sorry’라고 말하는 것은 ‘나도 맘이 아프다’라는 동감의 표현이지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므로 가볍게 자주 쓴다. Sorry라는 단어는 ‘슬픔이라는 Sorrow’와 ‘상처가 시린 Sore’에서 나온 것이니 슬프고 아픈 일이다. 결국 인도 사람이나 미국 사람이나 추후 자신의 책임으로 연결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좀처럼 ‘I’m sorry’라 말하지 않는 공통점이 있다.
미국은 인구 1만명당 변호사가 41명이니 그 수가 무려 120만명을 넘는다.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소송을 부추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소송사회 또는 소송천국이라는 말이 미국의 수식어처럼 뒤따른다. 교통 사고 현장과 병원 응급실에서 소송을 대리 해주겠다고 부추기는 변호사들이 많아 그들을 앰블런스 체이서(Ambulance Chaser; 구급차를 쫓아가는 사람)라 부를 정도이다. 미국의 재판에서는 배심원이 사실판단을 한다. 그들은 비 전문가이고 법률가도 아니므로 감정에 치우친 판단을 할 여지가 많다.
한 유능한 앰블런스 체이서가 교통사고에서 심하게 화상을 입은 피해자(원고)를 대리하여 자동차 메이커(피고)를 상대로 엄청난 금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시작하였다. 자동차의 결함으로 사고 시 차에 불이 났고, 그 결과 원고가 심한 화상을 입었다는 논리의 이른바 제조물책임(Product Liability) 소송이다. 재판은 보통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집중적으로 열린다. 재판을 빨리 끝내 줘야 배심원들이 각자의 생업에 복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심원들은 원고 변호사와 피고 변호사의 공방과 양측의 증언을 지루하게 듣고 있다가 최종일 판사의 안내에 따라 누가 잘못했는지, 결함 유무 등의 사실을 판단하는 역할을 한다.
앰블런스 체이서, 즉 원고 변호사는 공격하였고, 피고 자동차 메이커는 최신 기술에 따라 안전하게 설계하여 만든 자동차이므로 책임이 없다고 방어하며 공방은 팽팽하게 진행되었다. 재판 내내 매일 원고 변호사는 보자기에 무언가를 싸서 탁자 위에 올려 놓았지만 풀어서 보여주지는 않아 배심원들의 호기심만 자극했다. 마지막 날까지 배심원들은 그 보따리에 시선을 보내며 궁금해 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마지막 날 최후 변론에서 원고 변호사가 그 보자기를 풀었다. 두 장의 사진이 나왔다. 하나는 원고의 교통 사고 전 예쁜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화상을 입어 보기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 사진이었다. 배심원들의 감정은 요동쳤다. 그 때 원고 변호사가 두 사진을 자동차회사의 대표(피고)에게 보여주며 어떻게 생각 하냐고 질문했다. 그는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I’m sorry”라 말했다. 팽팽한 공방에 어느 쪽을 편들지 결정하기 힘들어하던 배심원들은 그 말을 듣고 주저없이 피고 자동차회사에 책임이 있다고 결정하였다.
미국에서 ‘I’m sorry’라는 말은 치명적임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이 말은 ‘사과한다’라는 ‘Apologize’나 ‘내 잘못이다’라는 ‘It’s my fault’보다는 약하지만 어느 정도 책임과 연결 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교통사고 현장이나 다른 분쟁 상황에서 한쪽이 영어의 ‘I’m sorry’에 해당하는 “미안합니다” 라고 말한 경우, 이는 잘못의 일방적 인정이 아니라 지금부터 서로 좋은 방향으로 원만하게 해결해 보자고 타협을 제안하는 태도이다. 문화의 차이이다.
2007년 미국 동부의 한 대학에서 이민 온 한국 학생의 총기 난사로 본인 포함 33명이 사망한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한인 교포사회 리더들은 그 사건에 대해 “We are very sorry”라며 사과했다. 이에 대해 교포 2세들과 미국 주류 사회 사람들은 왜 미안하다며 사과하는지 모르겠다고 의아해 했다. 특수주의와 보편주의라는 개념으로써 설명 가능한 문화 차이이다.
국제 문화 경영학의 대가이며 2011년 영국 ‘HR Magazine’이 뽑은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사상가 20인’의 한명으로 선정된 폰스 트롬페나스(Fons Trompenaars) 박사는 그의 저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국은 프로테스탄트 문화권이다. 이 문화권에서는 인간관계의 경향에서 보편주의(Universalism)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편주의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바람직한 가를 원칙으로 정하고, 이를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게 적용하려는 신념의 문화이다. 이와 반대되는 개념은 특수주의(Particularism)이다. 이는 한 가지 보편적 원칙을 고정시키기보다는 특수한 관계에 따라 유연하게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문화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 네팔, 중국, 인도 등이 특수주의적 문화권이고, 미국 및 유럽이 보편주의 문화를 가진 나라라 한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특수관계를 의식한 즉, 특수주의 문화에 젖은 나이든 이민 1세 교포들이 공동체적 책임의식에서 미국 사회를 향해 ‘We are very sorry”라 사과했다. 그러나 보편주의적 문화의 미국인과 교포 2세들은 한인사회와 관계없이 신 앞에 다 똑같은 한 인간의 죄일 뿐인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이해가 안 간 것이었다. 프로테스탄트의 영향이 강한 미국에서 죄는 미워하되 구원의 대상인 인간 자체는 미워하지 말라고 보편적 가치를 가르친다. 그래서 그들은 총기 난사범인 한국 학생까지 희생자와 더불어 추모했다.
트롬페나스 박사는 말했다. “문화는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두고 어떻게 행동하며 어디에 가치를 부여하는지 보여주는 것이며, 인간은 물속의 물고기처럼 문화 속에서 문화를 통해 호흡하며 살아간다.”고. 세계 각지에 파견되어 글로벌 경영에 몰두하는 우리 기업의 주재원들은 현지 문화를 빨리 이해하고 보편주의에 입각하여 ‘I’m sorry’ 라고 말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정확히 판별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원칙의 평등 적용을 추구하는 보편주의가 글로벌 기업 경영에 더 좋다.
[진의환 매경경영지원본부 칼럼니스트/ 현) 소프트랜더스 고문/ 서울대학교 산학협력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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