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산지에게 자유를’, 언론사에서 공개편지 쓴 까닭은?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2022. 12. 23.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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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 5개 주요 언론사가 공개편지를 썼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기밀 자료 보도를 위해 협력한 이 언론사들은, 줄리언 어산지가 재판에 넘겨져선 안 된다고 밝혔다.
2017년 5월19일 줄리언 어산지가 영국 런던의 에콰도르 대사관 발코니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 Photo

2010년 6월 미국 기밀문서·외교 전문 수십만 건을 폭로한 위키리크스(WiKi Leaks) 창립자 줄리언 어산지(51). 당시 어산지는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과 관련한 기밀문서 49만 건, 재판 없이 구금된 미군 관타나모 기지 수감자 약 800명에 대한 정보 및 외교 전문 25만 건을 공개했다. 그의 폭로로 이라크전, 아프간전에서 공식 추정치보다 훨씬 많은 민간인이 죽거나 다쳤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현재 영국 내 교도소에 복역 중인 그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와 유럽의 대표 언론 4개 등 5개 언론사가 미국 정부를 향해 그에 대한 기소를 취하해달라고 촉구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어산지의 기소 취하를 촉구한 언론은 미국 〈뉴욕타임스〉, 영국 〈가디언〉, 프랑스 〈르몽드〉, 독일 〈슈피겔〉, 스페인 〈엘파이스〉 등이다. 해당국의 대표 언론사다. 이들 5개 언론은 어산지가 미국 정부의 기밀을 폭로할 당시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한 바 있다. 그들은 연대 서한에서 “공공의 이익에 필요한 민감 정보를 취득하고 이를 알리는 것은 언론인의 일상적 필수 임무인데, 이런 일을 범죄시하면 공적 담론과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취약해질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또한 어산지를 ‘방첩죄’로 기소한 것은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제1조를 약화하는 위험한 선례를 남긴다”라고 비판했다.

이들 언론사는 미국 정부가 어산지를 기소하기 위해 근거로 삼은 방첩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1917년 제정된 방첩죄 관련 법에 따르면, 미군 활동을 방해하거나 적국을 이롭게 할 목적으로 관련 정보를 불법으로 취득한 자, 즉 간첩이 주된 처벌 대상이 된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기밀을 취득해 폭로하는 언론인도 이 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다(방첩죄로 언론사 발행인이나 기자가 처벌된 사례는 아직 없음).

어산지는 익명의 제보자가 제공하는 기밀이나 미공개 정보를 폭로하는 위키리크스를 2006년 창립해 사실상 언론인으로 활동해왔다. 그는 미국 육군 정보분석요원이던 첼시 매닝(개명하기 전 이름 브래들리 매닝)으로부터 기밀문서를 건네받아 이를 폭로했다. 매닝은 당시 혐의로 2013년 군사재판에 넘겨져 35년 징역형을 받았고, 2017년 1월 오바마 대통령이 퇴임하기 직전 사면되었다.

어산지는 위키리크스 창립 이후 자신이 줄곧 ‘언론인’으로 활동해왔다고 주장한다. 그의 지지자들도 어산지에 대한 기소에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말살하기 위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2019년 5월 트럼프 행정부 시절 어산지 기소를 담당한 존 데머스 법무차관은 당시 발표문에서 “어산지는 언론인이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어산지가 매닝과 공모해 기밀을 취득하고, 비밀요원의 이름을 폭로한 것은 기자라면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어산지가 일반 언론인이었다면, 내부고발자가 제공한 정보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처벌될까? 엄격히 말하면 미국 대법원은 수정헌법 1조에 따라 이런 행위를 처벌할 수 없도록 했다. 1971년 6월 〈뉴욕타임스〉는 국방부 제보자로부터 ‘펜타곤 페이퍼스’를 입수해 연재 형식으로 게재한 적이 있다. 이 문서에는 베트남전 군사개입의 명분을 쌓기 위한 추악한 내막이 담겨 있었다. 법무부가 소송을 냈지만 연방 대법원은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다. 수정헌법 1조 덕분이다. 오바마 행정부도 수정헌법 1조를 감안해 어산지를 기소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2017년 1월 트럼프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3월 그에게 군사기밀 유출 혐의를 적용했다. 이 경우 최대 형량은 5년이다. 1년 뒤 트럼프 행정부는 방첩죄 위반 혐의로 그를 추가 기소했다. 2019년 4월, 영국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던 어산지가 영국 경찰에 체포된 직후였다. 영국 정부가 그의 신병을 확보한 지 불과 한 달 뒤 미국 검찰은 17개 항목에 걸친 방첩죄 위반 혐의로 그를 기소했다. 최대 합산 형량이 175년이다. 이런 가혹한 형량 때문에 어산지는 미국 송환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2022년 10월 8일(현지 시각) 줄리언 어산지 석방을 촉구하는 시위대가 영국 런던 시내에서 ‘인간 사슬’을 이뤄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

“어산지는 언론인이 아니다”

어산지는 영국 법원에 송환 중지 소송을 내 2021년 1월 1심에서 승리했다. 하지만 이후 상급법원에서 기각됐다. 지난 6월 영국 내무장관이 송환을 승인하면서 미국으로 가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그는 영국 고등법원과 유럽인권재판소에 항고해 최종 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어산지의 변호인단은 유럽인권재판소가 송환 중단 결정을 내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인권단체와 언론자유 옹호 단체도 어산지의 방첩법 기소는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미국민권연맹(ACLU)의 벤 위즈너 국장은 “전례도 없고, 위헌적인 처사”라고 비판했다. 그는 “어산지 처벌이 가시화되면 다른 언론사들도 폭로성 보도와 관련해 수사를 피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비영리기관 언론자유재단(FPF)의 트레버 팀 사무총장은 AFP 통신에 “바이든 행정부가 트럼프 행정부 때처럼 어산지 송환에 계속 매달린다면, 이는 어산지 기소 건이 언론 자유를 침해한다는 인권단체들의 엄중한 경고를 외면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어산지 기소 건을 어떻게 처리할까? 지난 10월, 바이든 행정부의 메릭 갈런드 법무장관은 수정헌법 제1조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언론인이 정부에 대한 폭로성 보도를 해도 취재수첩을 압수하거나 영장 청구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법무부가 언론 보도를 위축시키는 행위를 남발했는데, 이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이런 전향적 태도가 어산지에게도 적용될지 주목된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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