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시선] '미워도 다시 한번'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
(요하네스버그=연합뉴스) 김성진 특파원 =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이 이번주 집권 아프리카민족회의(ANC)의 당대표에 재선됐다.
이로써 그는 2024년 총선에서 ANC가 승리할 경우 헌법 규정에 따라 대통령에 재선될 수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닷새 일정으로 지난 20일 마무리된 제55차 전당대회에서 5년 임기의 당 대표에 재선됐을 뿐 아니라 사무총장 등 다른 당 고위직 6인 가운데 4명을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로 채웠다.
현지 매체에 따르면 또 당 최고 의사결정 기관인 전국 집행위원회(NEC)의 추가 멤버 80명 가운데 라마포사 캠프 사람들이 70%를 차지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2017년 라마포사가 당 대표에 뽑혔을 때 지지 세력과 반대 세력이 거의 양분된 것과 대조적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5년 전보다 2기 당 대표 체제에서 훨씬 더 많은 우군을 거느리게 됐다.
이에 따라 경제성장을 위한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데 큰 힘을 받게 됐다고 외신은 분석했다.
랜드화 가치가 반등하는 등 시장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라마포사 대통령이 당 대표에 재선돼 '팜게이트'(farm gate)로 불리는 뭉칫돈 스캔들과 탄핵 정국의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가셨다는 평가 때문이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자신의 개인 농장에서 미화 58만 달러(약 7억4천만 원)를 강도들에게 도난당한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미심쩍은 돈의 출처와 미신고 대응 등으로 의혹을 받았다.
의회 조사 패널은 보고서에서 그가 외국환관리법을 위반했을 수 있다면서 탄핵으로 가는 길을 텄으나, 과반의석을 확보한 ANC에 의해 의회에서 탄핵 절차 개시 안이 부결됐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관련 혐의를 부인하고 보고서 문제를 법정으로 가져갔다. 경찰 등이 팜게이트 사건을 조사 중이나 아직 기소하진 않았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2018년 전임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국정농단과 부패 연루 혐의로 불명예 퇴진한 이후 부패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지도자가 됐다. 따라서 이번 스캔들이 그에게 미친 상처는 적지 않다.
그러나 스캔들 폭로의 주체가 주마 전 대통령의 심복이었기 때문에 시민사회가 폭로에 무조건 찬동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됐다.
또 ANC 입장에서도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라마포사를 탄핵했을 경우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도 당 대표 재선의 배경으로 꼽힌다. 경선에 나섰던 즈웰리 음키제 전 보건부장관도 부패 의혹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남아공의 일부 백인들은 라마포사에게 개인 비리가 있을 수는 있어도 다른 부패 정치인들보다는 그나마 더 낫다는 견해를 밝힌다. 또 노조 지도자와 기업인 출신인 그가 좀 더 비즈니스 친화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라마포사 대통령은 이번 당대회에서 재신임을 받았지만, 대통령직 재선을 위한 본게임은 사실상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110년 역사를 자랑하고 넬슨 만델라를 배출한 ANC는 지난 1994년부터 내리 집권하면서 무능과 부패, 내홍으로 계속 지지도가 하락했다. 급기야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처음으로 지지율이 50%를 밑돌아 비상이 걸렸다.
수년째 계속된 순환 단전이 갈수록 악화해 요즘도 하루 7시간 이상 단전이 되고 실업률이 35%인 상황에서 ANC가 내후년 총선에서 무조건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라마포사는 당대회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부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역설했다. 또 전력, 물 등 기본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ANC는 당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많다.
집행위원회에 그웨데 만타셰 당 의장 등 부패에 연루된 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는 데다, 인종적으로도 백인은 한 명뿐이고 아시아 인도계는 전무하다. 당의 확장성을 모색하기 어려운 구조다.
라마포사 대통령도 지난 1기 당 대표 겸 대통령 시절, 말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실행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당 안팎에선 시쳇말로 '헤어질 결심' 대신 '미워도 다시 한번' 식의 재신임이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세기를 아프리카의 세기로 부르면서 대륙의 관문 국가로서 남아공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가 당의 재신임 이후 스캔들로 얼룩진 과거를 덮을만한 신뢰를 쌓을지 주목된다.
sungji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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