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연말, 잊는 것의 의미를 생각하는 때

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외과 교수 2022. 12. 23.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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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년회라는 말은 여전히 쓰고 있는 말이다.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분명한 것은 세상사는 것이 쉽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물론 개인의 일이라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의 실수나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망각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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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구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위암협진팀장

망년회라는 말은 여전히 쓰고 있는 말이다. 일본식 한자 표기로 사용을 자제하자는 말도 있지만 괴롭고 힘든 일을 잊어버리자는 의미에서 연말 모임을 가리키는 흔한 말이다. 시대가 지나도 여전히 분명한 것은 세상사는 것이 쉽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일보다는 잊고 싶은 일이 여전히 많은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망각은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잊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망각이라는 것이 제멋대로라는 것이다. 잊고 싶은 일만 잊어버리게 놔두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 유난히 기억되고 꼭 필요한 전화번호는 기억을 하고 싶어도 잊어버린다. 다시 말하면 망각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며 부끄럽고 숨기고 싶어 잊으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뚜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실패나 실수를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대부분은 잊고 싶어 한다. 물론 개인의 일이라면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사회에서 발생한 실패나 실수에서 이런 경향이 있다는 것은 조금은 달리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간혹 '극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좋지도 않은 일을 자꾸 꺼내지 말자고 이야기한다. 그냥 잊고 다시 시작하자고 이야기한다. 잊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 잊자고 강요하는 분위기도 느껴진다.

이런 분위기에서 본질은 중요하지 않게 되기 쉽다.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의 실수나 실패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망각이 우선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대로 된 분석과 책임 그리고 재발 방지가 문제의 본질이다. 망각은 그 이후다. 본질이 파악되지 않고 망각이 강조될 때 과거는 온전하게 청산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따라다닌다. 또 불행은 여전히 반복되며 해결되지 않은 채무처럼 후세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잊으려 할수록 더 뚜렷한 기억처럼 역효과만 날 것 같다. 틀린 문제를 다시 풀어보는 똑똑한 학생은 그 과정이 힘들지 몰라도 다시는 똑같은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을 것이다.

문명사회는 구성원의 건강과 안녕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약속을 한다. 가장 중요한 기본이 되는 개념이다. 이런 약속의 핵심은 '필요한 것은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한다는 존재의 중요성'이다. 이것이 쌓여 매뉴얼이 되고 시스템이 된다.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지켜져야 할 기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약속이 그러하지 않던가?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부재의 상황은 그 무게가 너무나 크고 결과는 상상하기 어렵다.

우리를 힘들게 한 다른 부분이 있다. 그것은 나름대로 자부심을 가졌던 우리 공동체가 구성원의 안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약속 하나도 지키지 못한 것 같은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자괴감일 것이다. 자칫 우리를 과대평가하고 있지 않았던가? 우리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모습은 더욱 아니었다.

이제 우리는 잊고 싶은 아픔이 있다. 하지만 잊어야 할 것이 있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간혹 이것을 잘 알지 못한다.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망각은 강요되기 쉽다. 강요된 망각이 효과를 보는 경우를 봤던가? 오히려 잘 잊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망각'이 아니라 '각성'일 지도 모른다.

올해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는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의미의 '과이불개(過而不改)'라고 한다. 한해를 정리하는 이때 존재의 강인함, 부재의 무거움과 망각의 철저한 양면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그리고 꾸준히 존재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있는 것 자체가 큰 의미가 되고 힘이 되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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