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 부문 빚, GDP 두 배 훌쩍 넘어 [한강로 경제브리핑]
올해 3분기 국내 가계와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빚이 3593조원으로 전체 국내 경제 규모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자영업자 대출은 높은 증가율 속에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집값이 20% 떨어지면 대출자 5%는 집과 자산을 모조리 팔아도 빚을 갚을 수 없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한은 “3분기 말 명목 GDP 대비 민간 신용 비율 사상 최고치 경신”
◆“전세가 10% 하락 시 집주인 10명 중 1명은 빚내야 전세금 돌려줄 수 있어”
한은은 보고서에서 금융시스템의 취약 요인 중 하나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부동산금융의 증대를 꼽았다. 한은은 “부동산금융을 중심으로 민간신용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부동산 경기 부진이 장기화할 경우 차주의 부실화와 금융기관의 건전성 저하 우려가 있다”고 진단했다.
금리 상승 과정에서 부동산가격이 빠르게 조정될 경우 가계의 순자산이 크게 줄면서 ‘고위험가구’ 비중이 빠르게 상승할 여지가 큰 것으로 파악됐다. 한은의 부동산 관련 재무 건전성 분석에 따르면 주택가격이 올해 6월 말보다 20% 떨어질 경우 처분가능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고(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초과),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 상환이 어려운(자산대비부채비율·DTA 100% 초과) 고위험가구가 전체 대출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3%에서 4.9%로 뛰었다.
이정욱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부동산가격 경착륙 가능성 등에 대해 “실거래가 기준으로 코로나19 사태 이후 부동산가격이 37∼38% 올랐는데, 올해 11월까지 10.4% 떨어졌기 때문에 급락이라기보다는 조정 국면”이라며 “아직 이 정도 하락은 금융기관이나 가계가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주택 매매가격뿐 아니라 전세가격도 하락세가 계속되고 있다. 상승세인 월세가격과 달리 전세가격은 지난 6월 하락 전환한 뒤 하락 폭이 확대되고 있다.
전세가 하락은 전세 실수요자 입장에서는 거액 임차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줄여주고, 갭투자 유인 축소를 통해 주택시장 안정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전세가 상승과 맞물려 빠르게 늘어나던 전세자금대출 증가 속도를 둔화시킴으로써 가계부채 누증 완화에도 기여한다. 실제 전세자금 증가율(전년 동기 대비)은 지난해 3월 31%에 달했지만 지난 10월에는 8.4%로 둔화했다.
하지만 전세가격이 단기간에 급락할 경우 임대인 일부가 보증금 반환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을 불러온다. 한은이 2021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활용해 전세가격 하락 시나리오별 보증금 반환능력을 점검한 결과, 보증금 10% 하락 시 집주인(전세임대가구)의 85.1%는 금융자산 처분을 통해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11.2%는 금융자산 처분과 함께 금융기관 대출이 필요했고, 3.7%는 금융자산 처분과 추가 대출로도 보증금 하락분을 마련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가구당 평균 약 3000만원이 부족한 것으로 분석됐다.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가시화되면서 건설금융의 불안도가 커지고 있다. 미분양 우려가 커지는 데다 집값 하락이 본격화되면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부실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10월 말 ‘레고랜드 사태’로 한 차례 불거진 ‘PF발 금융대란’이 내년 초 재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평가사는 지난 20일 시공능력 8위 롯데건설(A+)과 17위 태영건설(A), 25위 한신공영(BBB+)의 회사채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회사채 신용등급을 낮춘 것은 아니지만, 유사시 강등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셈이다.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건설사들은 채권을 발행할 때 더 높은 금리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자금 마련이 더 어려워진다는 의미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확대된 것이 신용등급 전망 하향의 주원인이다. 우발채무란 재무제표상 부채로 잡히지는 않지만 우발적 사건에 따라 부채로 돌변할 수 있는 금액이다.
일반적으로 건설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 시행사는 은행 대출을 받거나 채권을 발행하고, 건설회사나 증권사들은 시행사 보증을 선다. 이를 PF라 통칭한다.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 사태가 발생하면 시행사가 돈을 갚지 못하게 되는데 이 경우 부채는 고스란히 건설사들에 돌아온다.
국내 증권사 상당수도 PF와 관련이 있다.
한은이 이날 펴낸 ‘2022년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말 기준 PF유동화증권 규모는 46조8000억원으로 2019년 말 대비 13조2000억원이 늘어났다. 이는 증권사의 PF대출시장 참여확대가 주요인으로 파악됐다. 한은은 “PF 부실 우려, 대내외 금융시장 불안 등 공통요인에 업권별 특이요인이 맞물리면서 비은행금융기관의 유동성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다”며 유동성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대다수 PF유동화증권의 만기가 내년 초에 돌아오는 것도 불안감을 높이고 있다.
금융연구원의 조사 결과, 내년 2월까지 약 29조원의 PF유동화증권 만기가 돌아온다. 연구원은 “최종 분양성적에 대한 우려로 차환되지 않거나, 상환능력이 없다면 내년 초반 신용시장 전반의 위기로 리스크가 전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내년 국채시장의 불확실성을 감안해 국고채 발행 물량을 줄이고 시장 변동성에 대응하기 바이백(매입) 지원도 확대할 방침이다. 최상대 기획재정부 2차관은 이날 은행회관에서 열린 제4회 국고채 발행전략협의회에서 “2023년 예산안은 국고채 발행 규모를 167조8000억원 수준으로, 국채 잔액을 결정하는 순발행 규모는 올해보다 크게 줄어든 61조5000억원 수준으로 계획하고 있다”면서 “내년 발행계획 수립 시 아직 불안한 시장 상황을 고려해 매입(바이백·조기상환) 재원을 올해 예산보다 확대하고, 1분기 국고채 발행량을 축소하는 한편, 2년 만기 국고채의 통합발행기간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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