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서 꺼낸 '마술적 리얼리즘' 회화의 황홀경…박민준 'X'번째 개인전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전통적인 고전 회화의 보편적 서사와 재현의 마술적 효과를 동시대 회화 언어로 전달하는 박민준 작가(51)의 열번 째 개인전 'X'가 2023년 2월5일까지 서울 종로구 갤러리현대에서 열린다.
작가는 2018년 '라포르 서커스'(Rapport Circus)와 2020년 '두 개의 깃발'(Two flags)을 발표한 소설가이기도 하다. 2010년 중반까지 서구 신화를 작품의 테마로 삼았던 그는 두 소설을 발표한 작품 속 서사를 회화로 구축하고 있다. 글을 미술로, 미술을 글로 표현하며 자신만의 세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두 소설의 서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정물화·풍경화의 형식과 조형성을 변주한 'X',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탈리아에서 유행한 즉흥극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초상화로 재해석한 '콤메디아 델라르테'(Commedia dell'Arte) 연작 등의 작품 40여점을 선보인다.
갤러리에 입장하면 노란색 벽면에 걸린 연작 'X'를 마주한다. 작가는 떠오른 장면이나 그려보고 싶은 대상을 자유롭게 캔버스에 옮기며 이 연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작가가 방문한 뉴욕 센트럴파크와 스코틀랜드의 바닷가, 이탈리아 정원을 배경으로 한 각 작품 속에는 작가가 창조한 캐릭터나 색의 패턴, 구체적인 상황이 삽입돼 있다. 작가는 "창조한 것들을 집어넣음으로서 그 공간을 나만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이밖에 채색된 목각 손, 사슴 뼈, 고양이, 나무로 만든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 등을 하나의 작품으로 표현하고, 이를 한 화면에 묶어 그리면서 연작의 세계관을 구성한다.
지하로 발길을 옮기면 마치 작은 극장에 들어선 느낌을 받는다. 어두운 공간에 9개의 작품이 반원형태로 걸려 있고 그 앞에 극장에서 볼법한 의자 두 개가 놓여 있다. 검은색 펜스를 지나 의자에 앉으면 '정지'해 있는 각 작품 속 주인공들이 움직이며 대사를 할 거 같은 인상을 준다.
작가는 서커스와 광대 등을 작품의 주인공으로 삼으며 이들의 예술·문화사적 기원을 추적했고, 그 과정에서 '콤메디아 델라르테'를 새로운 연작의 테마로 삼았다고 한다.
동물의 탈을 쓴 작품 속 주인공들은 거짓말과 수와 돈, 돈을 향한 욕망, 정의와 살인, 작품과 작가의 영혼, 돈과 우정, 영생과 죽음, 기억과 행복 혹은 불행, 감각과 마음의 소리를 대변한다. 보다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주인공을 캐릭터화하기 위해 작가가 직접 쓴 글이 담긴 리플렛을 먼저 읽고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2층에서 펼쳐진다. 소설 '두 개의 깃발' 속에서 빈 캔버스로 남아있던 '신념의 탑'과 '영원의 탑'을 작가가 대형 작품으로 끄집어내 나란히 걸었다. 두 작품은 멀리서 보면 마치 중세 시대 종교화 같다. 가까이 갈수록 작품 속에 그려진 사물을 보며 첫인상은 지워지지만 '엄숙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작가는 숫자 '2'와 '3'에 천착했다. 숫자 '2'는 삶과 죽음, 남자와 여자, 음과 양, 시작과 끝 등 인간 세계의 대칭성을 상징한다. 반면, 숫자 '3'은 삼위일체, 헤르메스 트리스메기스투스, 케르베로스 등 신의 영역을 의미한다. '신념의 탑'이 인간의 영역이라면, '영원의 탑'은 신의 영역을 대변한다.
2층에는 이외에도 라포르 서커스단을 집단 초상화로 표현한 작품과 탈을 쓴 광대를 주인공으로 한 작품 등을 만나볼 수 있다.
작가는 대학 시절 극사실적인 그림(하이퍼리얼리즘)을 추구했다. 그러다 극사실주의에 서사를 더한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시대의 거장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도마'를 보고 충격에 빠진 후 무작정 유럽으로 건너가 수많은 그림과 건축물을 공부했다고 한다. 이후 일본 도쿄와 미국 뉴욕에서 수학하고 활동했다.
박민준 작가의 이번 전시가 다양한 서사를 현실화했다는 측면에서 주목받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본 관객이라면 작가의 집념과 정성스러운 붓놀림에 놀랄 수밖에 없다. 열번 째 개인전이지만, 나이 오십을 넘겨 맞는 첫 개인전이란 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인상도 준다. 젊은 시절 단정했던 헤어스타일이 자유분방해졌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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