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스토리]크리스마스의 그늘…'제빵기사 없는 날'
"제빵기사 인력난에 휴식 보장 위한 일시적 조치"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연말 시즌과 겹쳐서인지, 크리스마스는 특정 종교인이 아니라고 해도 기념일 같은 기분이 들게 하죠. 저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친구들과 이런저런 선물을 교환하거나 평소엔 잘 먹지 않던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켜곤 합니다. 추석에는 송편을, 설날에는 떡국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를 먹어야 이 날을 온전히 보낸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실제로 저같은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베이커리 업계 최대 대목입니다. 크리스마스 전후 일주일간은 케이크 판매량이 평소의 3~4배에 달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어떤 케이크가 나오는지도 시장의 관심사가 됩니다. 파리바게뜨와 뚜레쥬르 등 주요 베이커리 프랜차이즈들 역시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다양한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내놓고 '대박'을 기원합니다.
장사가 잘 되면 모두가 행복할 것 같은데, 누군가는 또 웃지 못하는 경우가 생깁니다. 바로 제빵기사들입니다. 제빵기사들의 노동 강도는 식품업계에서도 유명합니다. 한 달 내내 쉬지 못하고 일하는 제빵기사들도 많습니다. 인력난이 심각해 제빵기사가 쉬면 대체할 인력이 없어 매장을 닫아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벌어지기 때문입니다. 크리스마스처럼 '대목'인 경우에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업계에서는 뚜레쥬르의 '기사 없는 날'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이 바쁜 연말에 주 1회 의무휴일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제빵기사들의 '쉴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얘기겠죠? 그런데 이 기사 없는 날. 좋은 의미로 화제가 되고 있는 건 아닙니다. 주 2회도 아니고 주 1회 휴무를 보장한다는 이야기를 거창하게 꺼낼 정도로 업계의 인력난이 심각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 '기사 없는 날' 도입에 현장에서는 반발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요약하면 "이게 최선이냐"입니다. 주 1회 휴무로는 불충분하다는 거죠. 기사 없는 날을 운영하면 새로 빵을 만들 수 없는 만큼 그 전날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주 5일제나 52시간제 같은 이야기는 별나라 이야기입니다.
매장이나 본사도 고충은 있습니다. 제빵기사가 없으면 매장이 돌아가지 않는데, 일할 사람은 너무나 부족한 상황입니다. 기사 없는 날 역시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결과물입니다.
사실 본사와 매장 점주들도 입사 시 조기 정착을 위한 격려금 지원·채용 편의를 위한 써치펌 연계·인력 추천과 경력 입사자 인센티브 등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시하며 제빵기사 확보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눈에 띄는 성과는 나지 않고 있습니다. 고된 일로 알려진 제빵기사를 하려는 젊은이가 많지 않아서라는 설명입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의 인력난에 대해 "코로나19로 재택 근무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어난 데다 배달 등 단시간 근무로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일이 나타나면서 인력 유출이 가속화됐다"며 "다양한 방식으로 채용을 지원하고 있지만 회복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제빵기사들의 업종 전환이나 처우 문제로만 볼 수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애초에 제빵기사가 출근하지 않으면 매장을 운영할 수 없는 상황이 문제라는 겁니다. 이는 점주가 직접 빵을 굽지 않는, 대형 프랜차이즈 베이커리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제빵은 비슷한 규모의 외식 프랜차이즈인 치킨이나 피자와 궤가 다릅니다. 치킨이나 피자는 점주는 물론 정직원, 아르바이트생까지 몇 시간에서 며칠의 교육을 받으면 동일한 품질의 상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반면 제빵은 빵의 종류마다 굽는 시간과 온도가 제각각입니다. 치킨 자격증·피자 자격증은 없지만 제빵 자격증은 '국가기술자격시험'으로 운용되는 이유입니다.
개인 베이커리의 경우 대부분 점주가 제과제빵 자격증을 보유해 직접 빵을 굽지만 프랜차이즈 베이커리는 대부분 점주는 경영을 맡고 제빵기사가 따로 있습니다. 이러니 제빵기사가 쉬면 매장은 꼼짝없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CJ푸드빌도 이런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가맹점주가 제빵기사 교육을 받기를 원하면 교육비를 무상 지원하고 자격증을 취득해 제빵기사로 일할 수 있게 되면 포상금을 지원하는 정책을 올해부터 운영 중입니다. 점주가 제빵기사 자격증을 따면 매장 운영에 숨통이 트일 수 있습니다. 실제 지금까지 100여명의 뚜레쥬르 점주가 제빵기사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본사가 이정도를 했다고 칭찬을 해 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더 많은 대화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CJ푸드빌 관계자는 "가맹점·본사·협력사가 깊은 논의 끝에 한시적으로 주 1회 휴일을 제공하게 됐다"며 "빠른 시일 내에 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인력 채용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해결이 힘든 상황인 만큼 최소한의 휴식이라도 보장하겠다는 게 요지인데요.
문제는 여기에 '제빵기사'들의 입장이 빠져 있다는 겁니다. 본사는 기사 없는 날 운영으로 인해 매출이 줄어든다고 말할 겁니다. 가맹점주도 마찬가지겠죠. 하지만 그건 사용자의 입장이지 노동자의 입장은 아닙니다. 일할 권리 만큼이나, 쉴 권리도 중요합니다. "바빠서 어쩔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할 게 아니라 '바빠도 쉴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김아름 (armijjang@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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