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님, 배당을 더 드릴까요? 아님 자사주를 소각할까요?” [주경야독]
최근에 국내 증시 상장사 중에서도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곳이 부쩍 늘었습니다. 보통 주주환원정책이라고 하면 배당을 얼마나 주느냐만 따졌었는데 이제는 자사주 매입·소각도 또 하나의 옵션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입니다.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주가가 100% 오른다는 확신은 없는 만큼 확실하게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배당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자사주 매입·소각과 배당은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더 선호합니다.
이번엔 자사주 매입·소각은 어떤 것인지, 그리고 배당과 비교했을 때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주식 투자자들에게 상장사가 자사주를 시장에서 매입하는 일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한번 곰곰히 따져보면 뱀이 자기 꼬리를 무는 것처럼 이상한 일입니다. 주식회사에는 회사의 주인인, 자본금을 댄 주주가 있습니다. 기업이 자사주를 갖고 있다는 것은 기업이 자신의 주주가 된다는 뜻입니다. 기업이 스스로에게 투자했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그 회사를 청산한다면 자사주를 들고 있는 청산회사의 몫은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등 여러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이 때문에 한때는 주식회사의 자사주 매입을 엄격히 금지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장사에게 먼저 자사주 취득이 허용됐고, 지금은 비상장사도 자사주 매입이 가능하게 됐습니다.
상장사가 자사주 매입 계획을 내놓는 것은 당연히 주가에 호재입니다. 일단 단기적으로 새로운 매수 주체가 등장해 수요가 늘고, 유통 주식수가 줄어들어 중장기적으로도 공급이 줄어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자사주를 소각하지 않고 회사가 그대로 보유하고 있는 것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향후에 주가가 올라 회사가 자사주를 다시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상장사가 보유한 자사주는 6개월이나 1년의 보호예수가 있긴 합니다만 그 이후에는 다시 매물로 내놓아도 문제가 없습니다. 특히 이 경우에는 현 주가가 고점이라는 인식을 시장에 주기 때문에 주가에 더욱 악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배당가능이익 한도 내에서만 자사주를 매입할 수 있습니다. 배당가능이익이 많으면 자사주를 잔뜩 살 수 있고, 배당가능이익이 거의 없다면 자사주를 살 수 없는 것입니다.
흑자가 나더라도 일정한 비율까지는 이익잉여금 중 일부를 회사 내에 쌓아두어야 합니다. 이 준비금을 제외하고 회사 내에 쌓여있는 유보금을 배당가능이익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동안 흑자를 꾸준히 낸 회사, 그래서 회사 내부에 여유 자금이 충분히 쌓여있는 회사만 자사주 매입이 가능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자사주 매입이 주가를 끌어올리는 효과가 있긴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단 회사의 재무구조를 다소 악화시킵니다. 회계상 기업이 매수한 자사주 만큼 자본금이 감소하게 됩니다. 어떤 상장사가 발행주식의 10%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매입했다고 하면 자본금도 10%가 줄게 됩니다. 자본금이 줄면 자본총계도 감소하고 부채비율은 높아지는 등 전반적으로 회사의 재무 안정성이 악화되게 됩니다.
일부 상장사 중에서는 경영권 방어 측면에서 자사주 매입이란 카드를 쓰기도 합니다. 발행 주식수가 총 100주이고 회사의 최대주주가 30주를 보유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재 이 최대주주의 지분율은 30%이지만 회사가 자사주를 40주 매수하면 지분율은 50%로 뛰게 됩니다. 사실상 회사 돈으로 최대주주의 경영권을 유지시켜주는 것입니다.
주주에게도 배당과 자사주 매입·소각의 효과는 동일합니다. 주당 1만원의 주식이 1만주 발행된 시가총액 1억원의 회사가 있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이 회사가 보유한 현금 2000만원을 주주에게 주당 2000원씩 배당하기로 했습니다. 배당액만큼 기업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주가는 1만원에서 8000원으로 떨어집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주주들은 현금 2000원을 손에 쥔 대신 배당락으로 2000원의 손해를 보게 됩니다.
주당 1만원으로 2000주, 총 2000만원어치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소각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업가치는 마찬가지로 8000만원이 되지만 주식수가 감소하면서 주가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1만원이 유지됩니다. 결과적으로 배당이나 자사주 소각은 계산상 동일한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장은 자사주 소각을 훨씬 더 좋아합니다. 저 계산에는 반영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주식수가 1만주에서 8000주로 감소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지분율이 높아졌다는 점입니다. 주주의 권리는 크게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 배당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있는데 주식 일부가 소각되면서 기존 주주들은 이전보다 더 큰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자사주 소각은 현재 이 회사가 가진 현금이 풍부하다는 신호로 여겨집니다. 통상 자사주 소각은 특별한 시기에 일회성으로 진행합니다. 배당이 늘었다 줄었다 하는 것을 막기 위해 배당은 일관되게 하고 주주환원을 더 많이 하고 싶을 때 자사주 소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자사주 소각을 한다는 것은 우리 회사 사업이 요즘 들어 유난히 더 잘 되고 있다는 시그널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영진이 만약 “배당을 더 드릴까요? 자사주 소각을 할까요?”라고 묻는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이제 분명해졌을 것 같습니다. 배당은 하던대로 하고 자사주 소각을 하자고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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