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기업과 소통” 강조하는 尹대통령…공정위는 文정부 ‘외부인 접촉 금지령’에 봉쇄 상태
실수 누락에도 벌당직…만남 기피하는 공정위 직원들
소통 줄어드니 조사 과정에서 기업과 충돌 종종 발생
‘기업과 소통’ 강조하는 尹대통령 기조와도 맞지 않아
“제도 취지는 알지만, 솔직히 너무 번거롭죠. 실수로 보고 빠뜨렸다가 벌당직 서는 직원도 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면 사람을 점점 안 만나게 됩니다. 갈라파고스 이야기가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에요.”
공정거래위원회 소속 간부 A씨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과감히 없애 민간 주도의 경제 활성화를 이루겠다고 선언한 ‘친(親)기업’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도 7개월을 넘어섰다. 그런데 각종 규제 개혁의 중추적 역할을 해야 할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시절 김상조 전 위원장이 도입한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에 발목을 잡혀 기업과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친기업 기조가 아니어도 요즘 같은 경기 둔화 시기에는 정부·기업 간 소통이 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는데, 공정위 직원들은 기업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규정 위반 여부를 일일이 따지고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다 보니 소통에 소극적으로 변해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 김상조 전 위원장 작품…공정위 ‘갈라파고스’ 만들어
23일 공정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공정위 업무 특성상 대기업 임직원이나 법무법인 변호사·회계사를 종종 만나는데, 조직 내부적으로 보고 의무가 있어 많은 직원이 스트레스를 호소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가 언급한 ‘보고 의무’는 문재인 정부 시절 공정위가 도입한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이다.
문 정권에서 공정위는 재벌 개혁의 첨병 역할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신임 공정위원장에 ‘재벌 저격수’로 알려진 김상조 한성대 교수를 임명하며 기업과 대립각을 세웠다. 김 전 위원장은 재임 시절 민간 기업에 근무하는 공정위 전관의 영향력을 차단하겠다며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을 만들었다. 당시 공정위는 “빈번한 방문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는 공정위 퇴직자 등 3가지 유형의 외부인과 접촉하는 경우에는 5일 이내에 상세 내역을 감사담당관에게 보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공정위 퇴직자 외 나머지 2가지 유형은 공직자윤리법상 취업심사 대상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회계사 등의 법률 전문 조력자 가운데 공정위 사건 담당 경력자, 공시대상기업집단 회사에 소속돼 있으면서 공정위 관련 업무를 취급하는 자다. 접촉은 사무실 안팎에서의 대면 접촉과 전화·이메일·문자메시지 등 통신 수단을 통한 비대면 접촉을 모두 포함한다. 외부에서 만나 식사 등을 하는 것도 원천봉쇄했다. 상갓집에서 조문하러 갔다가 마주치는 일까지 보고 대상으로 집어넣으려다 직원들의 반발로 철회하는 일도 있었다.
공정위와 기업의 유착 근절을 목적으로 만든 제도이긴 하나, 문제는 이 규정 도입 이후 공정위와 기업 간 소통이 확 줄어 조사 과정에서 마찰이 잦아지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규제하더라도 산업 동향을 면밀히 이해한 뒤 합리적이고 효과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평소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기업과 갈등이 심화한 것이다.
공정위 직원들은 부지런히 보고해도 문제라고 푸념한다. 한 공정위 간부는 “나는 정직하게 모든 접촉을 보고했을 뿐인데, ‘이직 준비를 하느라 외부인을 열심히 만나는 것이냐’는 말을 들었다”며 “물론 웃으면서 건넨 농담이었지만 기분이 너무 나빴다”고 했다.
◇ 尹정부 친기업 행보에도 안 맞아…“규제 실효성 의문”
공정위 직원들 사이에서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은 정권 교체 후 더 큰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 직후부터 ‘규제 모래주머니’ 철폐를 거듭 강조하며 친기업 광폭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윤 대통령은 8월 26일 대구 성서산업단지에서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주재하면서 “정부의 중요한 역할은 민간이 더 자유롭게 투자하고 뛸 수 있도록 방해되는 제도와 요소를 제거해주는 것이고, 그 핵심은 규제 혁신”이라고 했다.
한기정 공정위 위원장도 후보자 시절부터 과감한 규제 혁파를 통해 기업 활동을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한 위원장은 “현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철학은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는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정부가 뒷받침하려면 효율성을 담보하기 위한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야 한다. 이 부분에 방점을 두고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인데 정작 기업과 적극 소통하며 규제 혁신에 앞장서야 할 공정위 실무자들은 기업인과 만남에 부담을 느끼는 구조인 것이다. 최근 공정위 내부에서는 “우리 자신을 외딴 섬에 갇히게 한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한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모든 직원의 의견이 같을 순 없겠지만 상당수가 외부인 접촉 관리 규정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건 사실”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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