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지록위마(指鹿爲馬) 같은 밀크플레이션 소동

윤성식 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 2022. 12. 23.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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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은 원유 가격 인상으로 인해 흰우유 가격이 인상되고, 유제품이 들어가는 가공식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만 부각하고 있다.

특히 2년 이상을 고민해왔던 낙농제도 개편이 '밀크플레이션'이라는 키워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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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기고의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는 무관합니다. 필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글은 가급적 수정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윤성식 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


올해 낙농산업에는 의미 있는 변화가 있었다. 치즈, 버터와 같은 유가공품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농가가 생산하는 원유(原乳)를 마시는 용도와 가공 용도로 구분해 가격을 다르게 매기기로 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매스컴은 원유 가격 인상으로 인해 흰우유 가격이 인상되고, 유제품이 들어가는 가공식품 가격도 덩달아 오르는 이른바 '밀크플레이션(우유+인플레이션)'만 부각하고 있다. 이는 식품업계의 가격 인상에 면죄부를 주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원유 가격 인상으로 인해 유제품뿐만 아니라 빵, 커피 등 다른 식품 가격도 연쇄적으로 인상이 이뤄진다는 주장은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정부 당국에서도 설명했듯이 빵, 커피, 피자, 빙과 등 우유가 들어가는 가공식품의 제조 원가에서 우유나 유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원유가격 상승으로 인한 추가적 가격 인상 가능성은 크지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서 발간한 '2021년 식품산업 원료소비 실태조사'에 따르면 빵류에 사용하는 주요 원료는 밀가루가 62.6%, 백설탕이 11.2%였고 우유나 유제품은 모두 합쳐봐야 3.6%에 지나지 않았다. 이것도 수입산 치즈나 탈지분유 등을 제외하면 비율은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상이 이러하니 농가가 생산하는 원유가격이 조금 올랐다고 하더라도 원유가격 인상이 빵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국제곡물가격 인상이나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산 밀가루와 백설탕 가격 인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인스턴트 커피믹스의 경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유가 들어간다고 하지만 저렴한 수입산 카제인 분말이 첨가되고, 국산 농축탈지유 분말은 그야말로 쥐꼬리만큼 들어간다.

커피의 진한 갈색을 연하게 만들기 위해 블랙커피에 넣어 마시는 커피 크리머(creamer)도 우유 카제인, 코코넛 오일, 물엿, 유화제 등을 혼합해 만든다. 실상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주요 매스컴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우유 때문에 각종 가공식품 가격이 오른다고 한다. 마치 사슴을 가리켜 말(馬)이라고 우기는 주장과 무엇이 다른가. 오히려 최근 모 커피 프랜차이즈 업체에서 발표한 것처럼 원유와 원두, 설탕, 인건비 등 실제 인상요인을 명확히 밝혀줘야 정확하다.

낙농을 아끼는 한 사람으로서 국내산 원유가격 인상이 다른 식품 가격의 인상을 부추기는 빌미를 제공하고 우유가 죄인 취급을 받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특히 2년 이상을 고민해왔던 낙농제도 개편이 '밀크플레이션'이라는 키워드로 인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든다. 시장 상황에 맞게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낙농가, 원유가 과잉이지만 활로를 만들어보겠다는 유업계가 제도개편에 합의하는 과정을 지켜본 전문가로서 소비자들께 좀 더 여유를 갖고 우리 낙농산업을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리고 싶다.

윤성식 연세대학교 생명과학기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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