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멂과 눈뜸 사이의 장벽이란 얼마나 얄팍한가! [책&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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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빛이여/ 마음에 들어와 환히 빛나라/ 거기 눈을 심어 모든 안개를 흩어버려라/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가 식별할 수 있도록."(존 밀턴 <실낙원> Ⅲ 51~55행, 필자 윤문) <실낙원> 은 밀턴이 실명 이후 구술방식으로 지은 서사시. 실낙원> 실낙원>
지은이는 호메로스부터 존 밀턴, 헬렌 켈러, 보르헤스, 스티비 원더까지, <리어왕> 부터 <걸리버여행기> , <눈먼 자들의 도시> , <듄> , <스타워즈> 까지 훑어내리며 눈멂의 고정관념을 깬다. 스타워즈> 듄> 눈먼> 걸리버여행기> 리어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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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복’ 서사 폄하된 헬렌 켈러
문자 좌우해온 시각중심주의
“눈멂 역시 하나의 관점이다”
거기 눈을 심어라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
리오나 고댕 지음, 오숙은 옮김 l 반비 l 2만원
“천상의 빛이여/ 마음에 들어와 환히 빛나라/ 거기 눈을 심어 모든 안개를 흩어버려라/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을/ 내가 식별할 수 있도록.”(존 밀턴 <실낙원> Ⅲ 51~55행, 필자 윤문) <실낙원>은 밀턴이 실명 이후 구술방식으로 지은 서사시. 원조 인간 부부의 낙원 추방 얘기지만 실은 눈뜸과 눈멂에 관한 탐구다. ‘육의 실명은 곧 영의 눈뜸’이라는 클리셰에 대못을 박았다.
<거기 눈을 심어라> 지은이가 눈멂/눈뜸의 ‘결정적 순간’(“거기 눈을 심어”)에서 표제를 따온 것은 도발적이다. 선악과를 훔친 이브처럼 논쟁적 핵을 훔쳐, 늙은 시인한테 한방 먹이고 우리한테도 먹으라고 권한다. 눈멂의 역사에 관한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탐구라는 온건한 부제를 달았으나 내용은 편두에 번쩍 불이 보일 정도로 강한 펀치다.
우려먹고 고아먹는 헬렌 켈러(1880~1968)가 단적인 사례. 생후 19개월에 열병을 앓아 눈과 귀가 멀었다. 딸에 대한 엄마의 지극사랑은 설리번을 스승으로 들였고, 동병상련 스승의 지극정성으로 켈러는 미몽에서 깨어나 언어를 배움으로써 세상에 나와 대학을 수석 졸업했다. ‘대단해요’ 위인전은 그가 20대에 쓴 <헬렌 켈러 자서전> 요약, 끝이다. 전형적인 영감 포르노(inspiration porn)다. 정작 그의 세계관과 자신의 생각하는 방식을 기술한 <내가 사는 세계>는 외면 받아 절판된 지 오래다. 그는 여든여덟까지 꾸준히 대사회 발언을 하며 살았다. “장애인이 뭘.” 개무시 당하면서 살아낸 세월이 60년을 훌쩍 넘는다.
자서전이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대중은 아우성을 쳤고 스승과 제자는 전국을 돌았다. 연단에 오르기 전에 돈을 걷는 게 상례지만 그들은 후불을 택했다. 여러 차례 사기를 당했다. 한번은 선불을 요구했더니 청중은 화를 냈고 다음 날 신문에 “헬렌 켈러, 돈을 쥐기 전에는 강연 거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마흔 살이던 1920년부터 5년 동안 켈러는 설리번과 함께 버라이어티 쇼 무대에 섰다. 하루 20분 2회 군중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밥벌이를 했다. 어떤 이는 이를 두고 “래드클리프칼리지 학위라는 찬란한 광채를 받을 때 예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비꼬았다.
지은이는 호메로스부터 존 밀턴, 헬렌 켈러, 보르헤스, 스티비 원더까지, <리어왕>부터 <걸리버여행기>, <눈먼 자들의 도시>, <듄>, <스타워즈>까지 훑어내리며 눈멂의 고정관념을 깬다. 시각장애인을 점쟁이, 초능력자 아니면 바보 취급하지 말라. 당신들과 조금 다른 사람일 뿐이다. 상대와 어긋난 채 대화하는 걸로 시각장애인을 표현하거나, 상대의 얼굴을 만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지 말라. 넌더리난다. 시각은 눈뜸/눈멂으로 이분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는 수많은 얼룩덜룩한 공간이 있다. 누천년 반복되는 잘못은 비시각장애인이 문자를 좌우한 탓이라는 게 지은이의 생각이다. 책은 우리의 시각중심 문화에 대한 경종으로도 읽힌다.
참고로 지은이는 열살 무렵부터 40여년에 걸쳐 시각이 약화돼 현재는 완전히 실명했다. 작가, 공연예술가, 교육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쎈 언니’다. 종내 숨긴 말. 시각장애인들이여! 문자를 점령하라.
임종업 <뉴스토마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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