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주주 본때 보여주마" 목소리 키우는 행동주의펀드

김태일 2022. 12. 2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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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러스톤운용, 태광산업·BYC에 반발
얼라인파트너스, 라이크기획 계약 조기 종료 이끌어내
기업사냥꾼 이미지 여전...주주 존재 알리는 점에선 긍정적
올해 주주행동 사례 /그래픽=정기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주주들은 더 이상 ‘컴퍼니 디스카운트’ 요인을 지켜만 보지 않는다. 기업 총수나 경영진이 지배구조 문제를 일으켜 주가를 갉아먹는다거나 경영상 판단 착오로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그 선봉에는 행동주의(Activism) 펀드가 있다. 소액주주들이 단체로 법무법인을 선임하는 사례도 있다. 이 같은 주주행동이 되레 주가를 회복시키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힘을 받는 모양새다. 다만, 주주들을 모아 강한 목소리를 내고 주가를 띄운 뒤 차익을 챙겨 떠나는 ‘먹튀’ 논란이 불식된 것은 아니다.
주주가치 반하는 행동에 ‘태클’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이 주축이 돼 기업들을 상대로 주주가치 제고 정책을 주문하고 있다.

트러스톤자산운용이 태광산업의 흥국생명 4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막아선 일이 대표적이다. 태광산업 최대주주인 이호진 전 회장이 흥국생명 대주주라는 이유로 증자에 참여하겠다는 판단에 대해 “소액주주 권리 침해”라고 지적했다. 태광산업은 흥국생명 지분이 없다.

트러스톤운용은 BYC에도 부동산 자산 공모리츠화,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배당 확대, 무상증자 등을 요구했다. 자산 수익률을 높이고, 운영상 투명성을 확보하며, 주가를 부양해 ‘소액주주 이익 사수’를 실행하라는 뜻이다. 트러스톤운용은 앞서 지난해 12월 보유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하기도 했다. 임원 선·해임, 지배구조 개선에 관여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SM엔터테인먼트에서 이수만 총괄프로듀서의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떼 내는 작업을 주도했다. ‘일감 몰아주기’ 의혹이 지속되면서 에스엠(SM) 주가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단 판단에서다. 최근에는 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에스엠브랜드마케팅 등 관계사들에 대한 지분을 늘리라는 의견을 냈다. 주축 사업임에도 그로부터 나오는 수혜를 충분히 보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다.

플래쉬라이트 캐피탈 파트너스(FCP), 안다자산운용은 KT&G를 상대로 한국인삼공사 인적분할, 거버넌스 재정립 등을 실행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라이프자산운용이 SK에 자사주 소각을 요구하는 주주서한을 보냈고, 실제 지난 8월 2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소각이 결정됐다.

소액주주들도 힘을 모은다. 젬백스링크 경영정상화비상대책위원회는 이달 20일 법무법인 원앤파트너스와 경영 참여를 위한 법률 자문계약을 맺었다.

비대위 관계자는 “13차례에 걸친 전환사채(CB) 발행으로 주식 가치가 하락하고, 적자 경영을 하고 있는 현 경영진을 대신할 전문경영진으로 이사회를 개편할 것”이라고 전했다.

풍산과 DB하이텍은 올해 10월 강력한 주주 반발에 부딪혀 물적분할 계획을 물렸다.

주주가치 제고? 기업 사냥?

행동주의 펀드에 대해 ‘기업 사냥꾼’ 이미지가 여전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기업을 헤집어 놓고 떠나는 사태를 목도한 탓에 국내 투자자들의 불신이 뿌리 깊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2018년 현대모비스-현대글로비스 분할·합병 등에 반대하며 경영 개입을 시도한 미국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대표적이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승인 과정에서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 등이 압력을 행사해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7월 제기한 7억7000만달러 규모의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ISDS)’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또 다른 미국계 헤지펀드 메이슨 캐피탈 매니지먼트는 같은 이유로 2억달러 규모 ISDS를 제기했고, 스위스에 본사를 둔 승강기업체 쉰들러 홀딩 아게가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 과정에서 발생한 손해의 책임이 정부에 있다며 제기한 1억9000달러 규모의 ISDS도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 행동주의 펀드를 향한 이미지는 달라졌다. 활동 자체가 악재가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주주들에게 안도감을 제공하고 있다. 실제 에스엠과 라이크기획의 계약 종료 소식이 전해진 지난 9월 16일 에스엠 주가는 18.6%나 뛰었다.

특히 이들 펀드가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 요구를 넘어 기본적인 거버넌스(지배구조) 개선까지 주문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단 기대도 나온다. 소수 지분을 들고 있어도 대주주 일가 혹은 경영진 전유물이었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사실의 학습이 이뤄지고 있다. 트러스톤운용은 태광산업 지분 5.8%, 얼라인파트너스는 에스엠 지분을 불과 0.21% 보유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 등이 언제 기업 사냥꾼으로 돌변할지는 늘 유념하고 방심하지 말아야 되는 지점”이라면서도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총수·경영진에게 주주들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전략이라는 점에서는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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