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하의 대중문화평론] 범죄수사물의 유행에 부쳐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무장한 세계적 작품들을 안방에서 편안히 시청할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이 즐겨보는 목록에 범죄수사 관련 콘텐츠가 꾸준히 올라 있다는 건 주목할 만한 문화현상이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었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악명 높은 범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오늘날 갑자기 생겨난 기이한 현상이 아니다. 범죄와 사람들의 공포, 그것을 해결하는 형사와 탐정들의 이야기는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대중들의 이러한 관심에 힘입어 범죄 이야기는 지금도 소설에서 영화로, 드라마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고 있다.
이미 한 장르가 되어버린 “셜록 홈즈”는 시대물이나 오컬트 장르와 결합하여 스토리텔링 되거나 스핀오프 작품으로 이어지고, 범죄학 교과서에나 나올 만한 잔혹한 범죄자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영화가 제작되어 소비되고 있다. 범죄와 범죄자에 대한 대중들의 두려운 호기심은 범죄수사물의 꾸준한 제작으로 증명된다. 테드 번디가 영화의 주인공이 될 정도로 말이다.(‘테드 번디’(2021), ‘나는 악마를 사랑했다’(2019))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일종의 ‘교양’이나 ‘예능’으로 분류되는 프로그램 가운데는 전문적으로 ‘범죄’를 다루는 것들도 있다. ‘예능’과 ‘범죄’의 조합은 기이하지만, 흥미롭게도 이 조합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해 시청률을 견인하는 역할을 한다. 주목할 만한 건 대중들이 ‘창작물’이 아니라 ‘실화’에 기반한 범죄 이야기에 더욱 열광한다는 사실이다.
오랫동안 큰 인기를 끌며 방영 중인 ‘그것이 알고 싶다’(1992∼)는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다루는 한편, 장기미제사건 등을 분석하고 추리하면서 사회에 굵직한 이슈들을 던져왔다. 강도, 살해, 고문 등 끔찍한 단어들이 난무하고, 군데군데 모자이크 처리가 된 불편한 화면과 내용을 다루고 있는데도, 사람들의 관심과 지지는 꾸준하다.
범죄수사와 관련하여 시즌을 거듭하며 방송 중인 ‘용감한 형사들’(2022∼)의 인기도 눈길을 끈다. 이 프로그램은 ‘예능’으로 분류되지만 전문 프로파일러와 해당 사건을 다루었던 형사들이 직접 출연하여 사건을 생생하게 들려주며 ‘전문성’을 앞세워 차별화를 시도한다. 재연이 아닌 당시의 사건자료, 영상 등은 이 프로그램이 그저 흥미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 프로그램은 넷플릭스 인기 순위에 오를 만큼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용감한 형사들’에 진행자로 출연하는 연예인들은 일반 시민의 입장을, 프로파일러는 범죄자의 심리를 분석하는 전문가의 시선을, 사건 담당 형사들은 사건을 직접 ‘발로 뛰며’ 해결하는 현장 전문가의 역할을 담당한다. 일종의 ‘공조’라 할 만하다. 이 프로그램은 일반 시민들의 분노와 경악, 전문가의 냉정한 분석, 형사들에 의해 전달되는 현장의 긴박함의 조합이라는 포맷 외에도, 이미 해결된 사건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기해결사건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미제사건이 가져다주는 분노나 답답함은 찾아보기 어렵다.
‘이미 해결된 사건’이란, ‘죄를 지은 자는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논리에 기반하고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사건의 발생부터 마무리까지 보여주는 이 프로그램의 묘미는 이미 발생한 범죄의 잔혹함, 합리적 추론과 과학적 수사에 따른 사건 해결, 범죄자에 대한 판결과 처벌을 보여주는 데 있다. 복선이나 반전의 묘미는 없지만 짧은 시간 안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사건의 해결 과정은 어떤 드라마보다도 명쾌하다.
이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사건들이 가지는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음모나 정치적 의도 등이 배제된 사건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부패한 권력과 자본의 결탁, 눈에 뻔히 보이는 사건들이 정치적 수식어에 의해 묻혀버리는 사건은 잘 다루어지지 않는다. 고발과 고소가 난무하고,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요란한 언론 플레이와 편집된 증거들, 결국 엉망이 되어버려서 진실을 도무지 찾아가기 어려운 정치적 사건들, 또는 누구에게나 뻔히 보이는 명백한 범죄들이 권력에 의해 무마되고 마는 답답한 사건들은 배제되어 있다.
이 프로그램의 미덕은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간단하고도 명쾌한 논리가 여전히 세상에, 현실에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는 데 있다. 대중들이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것은, 죄를 지은 범죄자는 언젠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단순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죄와벌’로 요약될 만한 간명한 논리가 대중들이 열광할 만한 문화현상이 되었다는 건, 반갑고도 씁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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