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선제적으로 외부 감사 도입해야 노조 지속 가능... 정부 개입은 부적절"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 부패도 공직·기업 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고 언급하는 등 정부·여당이 노조를 개혁 대상으로 겨냥해 공세를 퍼붓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노조가 자율적·선제적으로 재정 투명성 강화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통해 노조의 신뢰가 높아진다면 조직률도 높아지고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지금처럼 정부가 법적 규제를 추진하는 것은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할 수 있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약한 고리' 노조 재정 건전성... "미래 노조를 위해 재고 필요"
22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조의 대부분은 내부적으로 대의원대회에서 회계감사 내역을 발표하고 이를 심의하는 절차를 갖추고 있다. 다만 조합비 운영 내역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고, 공개하더라도 조합원이 이를 들여다보려면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하는 등의 문제가 지적됐다. 일부 노조 집행부의 노조비 횡령 사건이 발생하는 등 허점도 있었다.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제도가 있다고 해도 실제 운영이 어떻게 이뤄지느냐는 다른 문제"라며 "최근 문제가 된 건설산업노조도 규정대로였다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었겠지만, 현실은 다르다"고 말했다.
지난 6월 노조비 10억여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던 진병준 전 건설산업노조 위원장은 21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고, 앞서 한국노총은 진 전 위원장이 기소되자 7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건설산업노조를 제명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회계 감사의 전문성, 독립성이 우선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법은 △회계감사원으로부터 6개월에 1회 이상 회계감사를 실시하고 공개할 것 △회계연도마다 결산결과와 운영 상황을 공표해야 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회계감사원 선정 기준, 자격이나 활동의 독립성 확보 방안 등은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정부·여당은 민주노총이 산하 조직에서 회계감사 업무를 담당한 사람들을 내부 회계감사원으로 선임하는 것에 대해 투명성을 문제 삼고 있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기준 감사위원이 5명이고, 모두 내부 출신이다. 대의원대회 과반수 동의를 얻은 사람이 감사위원으로 뽑히고, 이들이 작성한 감사보고서와 결산보고서는 대의원대회에서 통과돼야 결산이 완료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앞으로 노조 안에서도 MZ세대와 기성세대 간 갈등이 불가피한데, 이때 약한 고리인 재정의 불투명성이 갈등 요인이 될 것"이라며 "이전부터 문제가 됐던 사안인 만큼 선제적인 예방조치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선제적 예방조치와 관련해 현재 외부 회계감사를 받고 있는 한국노총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2005년 이남순 전 한국노총 위원장이 건설업체로부터 억대의 리베이트를 받아 실형을 선고받는 등 간부들의 잇따른 비리에 시달렸던 한국노총은 대의원대회 결의를 거쳐 외부 감사제를 도입했다.
한국노총은 국고 지원금에 대해서는 삼덕·한울 회계법인 등 외부 회계사무소에 정산을 맡기고 있고, 일반 재정에 대해서는 내부감사 4명에 외부에서 온 공인회계사 2명을 포함한 감사단이 1년에 2차례 결산하고 있다. 한국노총 본부 외에도 산하 금속노련 등은 외부 회계 감사를 받고 있다.
2005년 한국노총 사태 당시 노동계에서 '노동운동이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여파가 컸던 점을 고려하면, 민주노총과 기타 산별노조들도 선제적으로 투명성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으로 규율 전에 자구책 마련이 우선"
다만 지금처럼 정부가 나서서 노조 재정에 직접 관여하려하거나 규제할 법을 만드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자칫 노조의 자주성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진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노조는 자주적이고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에 국가가 회계내역을 요구하는 등의 행동은 노조활동에 대한 직접적 개입이나 노조 탄압, 억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국이 비준한 국제노동기구(ILO)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협약' 제3조는 부정에 대한 내부 진정 등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근로자 단체에 대한 공공기관의 제한과 간섭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협약 위반 논란에 휘말릴 여지도 있다.
노동계는 정부·여당이 노조를 부패집단으로 언급하며 재정 운영을 문제 삼는 것에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으로 보고 반발하고 있어 실제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 노동계 인사는 "(외부 회계감사 도입 등은) 노조가 자주적으로 선택할 문제이지 정부가 개입하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양대노총도 "노조 때리기"라며 저의를 의심하고 있다.
오지혜 기자 5g@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제주 유명식당 사장 살인사건… 2000만 원 받고 ‘청부 살해’
- 박수홍 23세 연하 아내, 뽀뽀 후 '편집' 언급에 "뭐 어때?"
- "푸틴 떨고 있나" 젤렌스키, 마침내 미국 패트리엇 받았다
- 이재명, 검찰 소환 통보에 “내가 그렇게 무서운가”
- [단독] "배상윤 회장의 돈 세탁기였나" CB폭탄 돌리기 피해자의 절규
- 윤 대통령의 길어진 발언... 자신감 반영? 만기친람 전조?
- 민진웅·노수산나, 공개 열애 마침표 "지난해 결별"
- 불도저와 벽화 사이... '갈 지(之)자' 오간 ‘낡은 집’ 정책 20년
- 이일화, 박보검과 열애설에 해명…스캔들 전말은? ('라스')
- 푸틴 한 사람 때문에… 무고한 24만 명이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