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커피하우스] 그래서 누가 손해를 보았는가?
귀족노조 그늘에서 서민 노동자가 손해 보고 통계조작으로 정권은 이익, 국민은 큰 피해
그러니 부릅뜨고 보라, 손해 입는 일 없는지
‘누구에게 이익이 돌아가는가(Cui bono?)’라는 질문은 범죄의 동기를 찾아내기 위해 기원전부터 한 질문이다.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범죄로 얻는 이익이 있다. 따라서 이익을 따라가다 보면 그 끝에 범인이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법정에서도 범죄 동기가 없다면 범죄 성립이 어렵다.
중국 고대 사상가인 한비자는 범죄자뿐 아니라 모든 인간을 기본적으로 이(利) 지향적 동물로 파악했다. 그는 “수레를 만드는 여인(輿人)은 모두 부귀해지기를 바라고, 관을 짜는 장인(匠人)은 사람이 일찍 죽기만을 기다린다. 이는 정녕 여인이 장인보다 선해서가 아니라, 이득이 있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다”라고 했는데, 결국 인간 통치에는 애정이나 의리 따위보다 냉혹한 이해관계가 더 효과적이라는 통치 철학을 말하고 있다.
한비자가 아니라도 인간이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것은 그리 새로운 통찰은 아니다. 범죄자의 동기 역시 마찬가지다. 이해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이다 보니 오히려 손해 보고 사는 사람들이 이상할 지경이다. 누군들 처음부터 범죄를 저지르고 싶어 범죄자가 되었겠는가.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무엇-그것이 돈이든, 지위든-을 부나방처럼 좇다 보니 어느새 범죄자 꼬리를 달게 되었을 것이다. 공자가 일찍이 ‘이(利)’를 보면 ‘의(義)’를 생각하라고 한 것도 범죄를 면하라는 비방(祕方)일지 모른다.
아무튼 요즘같이 수사 기법이 발달한 시대에 이익을 따라 범죄자를 색출하기는 비교적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그로 인해 손해를 본, 그러나 스스로 손해를 본 줄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것을 깨우쳐 주는 일이다. 그들에게 던져야 하는 질문은 ‘누가 손해 보았는가(Cui malo)’이다. 그래서 그들이 마땅하게 분노하고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도록 해 주어야 한다.
대장동 사건만 해도 그렇다. 범죄로 이득을 본 자들만 쳐다보느라 대장동 주민들에게는 크게 눈길을 주지 않았으나, 그들이야말로 대장동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대장동 개발로 생긴 천문학적 수익이 애초 그들에게 정당하게 돌아가야 할 수익이었기 때문이다. 민노총의 불법 파업도, 우리 산업과 국가에 입힌 피해만 수조원에 달한다는 각종 보도가 나오고 있지만, 소위 ‘귀족 노조’ 파업의 그늘에는 ‘서민 노동자’들의 진짜 피해가 햇빛도 못 본 채 웅크리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 소식의 댓글창에는 “나도 화물 하지만, 화물연대라고 하지 마라. 너희의 잘못된 운송 거부 조건과 방식으로 모든 화물 차주까지 욕먹는다. 우리가 원하는 건 안전운임제가 아니라 운송료 투명화와 운송사 수수료 상한제다”라는 글이 올라와 있다.
정부와 여당이 최근 노조 재정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논의하자, 야당 측 인사가 TV에 나와 ‘노조 탄압’이라고 맞받았다. 깜깜이 재정의 투명 운영 어디에 탄압이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투명 회계야말로 조합비를 내는 노조원들의 당연한 권리 아닌가. 정부가 나서기 전에 노조원이 먼저 주장했어야 할 일이다. 불투명한 회계 관리로 인한 피해자는 누구도 아닌 노조원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감사원은 문재인 정부 때 벌어진 국가 통계 조작 의혹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조작 의혹의 핵심은 문 정부가 당시 추진하던 소득 주도 성장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포장하기 위해 통계청을 통해 소득, 고용, 주택 관련 국가 통계를 ‘마사지’하고, 더 나아가 이런 목표를 위해 통계청장을 교체했다는 의혹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인위적 통계 조작은 국정 농단”이라고 했고, 여당은 “문 정부의 판타지 소설을 위해 숫자까지 조작한 통계청” “나라를 좀먹는 중대한 범죄 행위” “단순한 숫자 조작이 아니라, 시장을 왜곡하고 국가 정책을 왜곡된 방향으로 끌고 가 결국 국가 전체를 망가뜨리는 중대한 범죄”라는 논평을 내놨다. 물론 통계청에서는 국가 통계 수치 자체를 조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항변하고 있고, 야당은 ‘모욕 주기’라고 비판하고 있으나, 당시 통계가 좀 이상했던 건 사실이다.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무렵,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대정부 질문에서 “11% 올랐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국가 통계를 조작함으로써 이득을 얻는 사람은 명백하게 당시 집권 정부일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손해를 보았는가? 무색무취한 숫자를 다소 ‘마사지’한 게 대체 누구에게 어떤 피해를 줄 수 있는지 따져보면 문제가 결코 가볍지 않다.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1차 가해, 그걸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 통계라는 중요한 하부 구조를 망가뜨림으로 인해 3차 가해, 사회 전반에 대한 진실성을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4차 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나열하자면 집값이 생각보다 많이 오르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구매한 사람들이 피해를 보았고, 영끌 투자로 집을 구입한 청년 세대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소득 주도 성장 통계를 손보는 과정에서 고용 취약 계층이 불이익을 당했다. 무엇보다 통계라는 전문 분야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의 도덕성을 허물고 명예에 먹칠을 했을 뿐 아니라, 나라를 공산국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제로 코로나 정책을 폐지한 중국에서는 얼마 전 베이징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2명 나왔다고 자신들의 국가 통계를 인용해 발표했다!). 부정확한 통계가 국가 미래를 왜곡할 개연성은 말할 필요도 없다.
남이 얻은 부당한 이익에는 분노하면서 정작 자신이 입은 부당한 손해에는 의외로 무신경한 사람이 많다. 무신경하니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러니 눈을 부릅뜨고 보라. 멀쩡히 있는 나와 공동체에 피해를 주는 일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지는 않은지. 그게 시민 의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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