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2030] 배달 청년은 이제 어디로 가나
“솔직히 돈 때문에 했지만 할 일이 못 돼요. 하는 동안 현타(현실 자각 타임) 세게 왔어요.”
코로나가 한창이던 지난 2년간 배달 라이더로 일한 스물다섯 청년이 전화 너머로 이렇게 말했다. 배달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작년 50%가량 증가했던 20대 특고(특수 형식 근로 종사자) 규모가 올해 도로 쪼그라들었다는 기사를 쓰느라 전화를 돌리다 들은 말이다. 주 6일, 하루 12시간씩, 매일 콜을 60~80번 받으면 일주일에 150만원은 거뜬히 손에 쥘 수 있었다고 한다. 한 달에 600만원. 웬만한 직장인 벌이보다 나았다.
하지만 그 돈을 벌려면 감내해야 하는 것이 있었다. 가장 힘들었던 건 손님의 ‘은근한 갑질’이었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난 아파트에서 사는 손님은 백이면 백 전화를 받지 않았다. “걸어 올라오라는 거죠. 한마디 말도 없이….” 문 앞에 배달 음식을 두고 가라는 말이 없어 벨을 누르고 서 있었더니 “왜 거기 서 있느냐”며 따지는 손님도 많았다. 그런 날에는 마음이 많이 구겨졌다.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 취급 받는 것이 청년의 자존감을 갉아먹었다. “하루에 스무 번씩 이런 일을 겪으면 멘털(정신력)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망가지고 있다는 불안감도 견디기 어려웠다. 당장 쏟아져 들어오는 콜에만 급급하다 보니 자신을 돌보는 일에 소홀해졌다. 아무 옷이나 막 입고 다녔고, 머리는 헬멧 때문에 항상 눌려 있었다. 열일곱 살 때부터 미용 일을 해 온 그는 “살면서 이렇게까지 꾸미지 않은 적이 없다”고 했다. 배달 일을 하는 동안 새로운 기술을 배우지도 못했고, 경력이 쌓이지도 않았다. 미래가 보장되는 일도 아니기에 막막함은 더 커졌다. “마음 한편에는 항상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고 했다.
올해 들어 벌이가 뚝 떨어지자 그는 결단을 내렸다. 오토바이 핸들을 놓고 다시 가위를 들었다. 그는 “돈이 안 되는 일을 계속할 이유가 없었다”며 “주변 다른 20대 동료도 배달 일을 관두는 추세”라고 했다. 적잖은 청년이 자발적으로 배달 일에 뛰어들었지만, 코로나 특수가 끝나고도 지속할 만한 ‘질 좋은 일자리’는 아니었던 셈이다.
배달에 뛰어들었던 청년들은 이제 어디로 가게 될까? 돌아갈 곳이 있다면 운이 좋다. 최근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면서 내년 신규 취업자가 10만명을 밑도는 ‘고용 빙하기’가 닥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1989년 이후 전년 대비 취업자 수 증가 폭이 10만명 미만이었던 적은 1998년 외환 위기(127만6000명 감소), 2009년 금융 위기(8만7000명 감소), 2020년 코로나 사태(21만8000명 감소) 등 총 다섯 차례밖에 없었다. 경기가 얼어붙고, 산업 전반이 침체하면 갈 곳 없는 청년이 늘 수밖에 없다.
이런 가운데 지난달 청년층(15~29세) 취업자가 1년 새 5000명 줄어 작년 2월 이후 21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눈여겨봐야 할 ‘고용 한파 예보’라고 본다. 정부는 어려운 숙제를 풀어야 한다. 청년 취업자 수가 내리막길을 걷지 않도록 질 좋은 일자리를 마련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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