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급망 탈중국” 韓기업, 자원 찾아 지구 한바퀴

살타=이건혁 기자 2022. 12.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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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IRA 대응위해 리튬 등 확보 사활
호주-아르헨티나 광물 투자 줄이어
현지 환경규제-수출통제 큰 변수
“정부, 불리한 조건 없게 지원을”
국내 기업들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등을 계기로 특정 국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원자재 공급망을 다양화하기 위해 아르헨티나, 호주, 인도네시아 등 자원 부국으로의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포스코홀딩스가 아르헨티나 서북부 ‘옴브레 무에르토’ 염호에 짓고 있는 1단계 리튬 생산 설비 전경. 살타=이건혁 기자 gun@donga.com
“한국 기업의 추가 진출에 대한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아르헨티나 서북부 살타시에서 만난 포스코그룹 관계자는 현지 연방 정부 및 주정부의 한국에 대한 관심을 전하며 이렇게 귀띔했다. 관광객조차 드물었던 내륙 도시 살타는 포스코그룹의 투자로 일자리가 늘면서 2010년 60만 명 수준이던 인구가 최근 100만 명에 육박할 만큼 성장하는 효과를 봤다. 한국인의 왕래가 늘자 현지 주민들은 동양인을 보고는 으레 ‘올라! 코레아노?(안녕하세요, 한국인인가요?)’라고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 한국 기업 ‘탈중국’ 자원확보 행렬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으로 중국산 원자재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호주, 아르헨티나, 캐나다, 인도네시아 등 자원 부국에 진출하는 국내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 국가들도 한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고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다만 각국이 수출을 통제하는 등 ‘자원 민족주의’를 강화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는 만큼 신중한 투자와 함께 정부의 지원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 기업이 적극 진출하는 국가 중 하나는 매장량 기준 리튬, 니켈, 코발트 세계 2위, 희토류 6위인 호주다. SK온은 10월 자원개발 업체 레이크리소스 지분 10%(투자 금액은 미공개)를 취득하고 10년간 리튬 23만 t을 공급받기로 했다.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과 포스코는 각각 120억 원과 50억 원을 투자해 니켈 및 코발트 제련사 퀸즐랜드퍼시픽메탈 지분을 사들였다.

22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2010년 6억5900만 달러(약 8500억 원)이던 대(對)호주 투자 금액은 지난해 11억5300만 달러(약 1조4900억 원)로 약 75% 증가했다. 올해는 상반기(1∼6월)에만 9억2300만 달러(약 1조1900억 원)로 집계됐다. 지난달 말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한·호 경제협력위원회(KABC) 연례회의에서 국내 기업인 약 70명은 호주의 광물, 자원 업체와의 관계 조성에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는 포스코홀딩스가 염수리튬 확보를 위해 아르헨티나에 약 2조4500억 원을 투자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LG에너지솔루션 등 국내 기업 컨소시엄이 니켈 채굴부터 배터리 생산까지 이어지는 가치 사슬 구축에 약 11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캐나다에서는 9월 양국 기업과 정부가 핵심 광물 공급망 구축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기도 했다.
○ “자원 민족주의 규제에 발목 잡힐라”

대한상공회의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8대 2차전지 핵심 광물에 대한 중국 의존도는 58.7%에 이른다. 50% 이하인 일본, 중국 등에 비해 높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급망을 다양화하려는 국내 기업들의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다만 중국의 대안으로 떠오른 자원 부국들이 과거보다 투자 조건을 까다롭게 제시하거나, 투자가 이루어진 뒤 예상치 못한 장애물이 생기는 등 변수가 나타나 한국 기업들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아르헨티나는 해외 법인의 현지 투자 금액에 따라 국외로 송금할 수 있는 배당금이나 매출액에 제한을 두고 있다. 외화 사정이 넉넉지 않은 아르헨티나는 한국 등 외국 기업의 투자금 회수에 민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호주는 강력한 환경 규제 탓에 채굴한 광물을 현지서 가공할 공장을 짓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인도네시아는 호주, 캐나다 등과 공동으로 니켈 수출량과 가격을 통제하기 위한 기구 설립을 추진하고 나섰다.

이에 전문가들은 공급망 다양화를 위해 기업들의 투자와 함께 정부의 지원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천구 인하대 에너지자원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주로 맺는 MOU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현지 정부를 설득해 규제나 불리한 조건을 없애도록 하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살타=이건혁 기자 gun@donga.com
시드니=김재형 기자 mona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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