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법원장 투표’ 과연 필요한가

양은경 사회부 법조전문기자 2022. 12. 23.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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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장이 되고 싶은 부장판사가 배석판사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겠습니까. 배석도 똑같이 한 표인데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뉴스1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시행하는 한 법원의 부장판사가 한 말이다. 일선 판사들의 투표를 거쳐 추천된 후보 2~4명 중 법원장을 임명하는 이 제도를 김명수 대법원장이 내년까지 전국 20개 법원으로 확대하겠다고 하면서 법원은 유례없는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일부 판사들이 ‘대법원장 치적 알박기’와 자의적 인사권 행사를 공개 비판하고 나섰고,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이달 초 ‘일선 법원의 투표 결과를 존중하라’며 대법원장의 인사권에 일침을 가하는 의결을 했다. 게다가 이 제도를 법률도 아닌 행정처 내부 사무처리지침에 불과한 ‘예규’로 만들면서 법적 근거가 없다는 논란에도 휩싸여 있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한 판사는 법관회의에서 “추천제 하고 나서 법원 분위기가 많이 좋아졌다. 그동안 어려워했던 법원장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분위기 좋은 법원, 친근한 법원장이 ‘좋은 재판’으로 귀결되는지는 의문이다. 최근 한 변호사는 변론을 끝낸 후 선고 기일을 내년 4월로 통보받았다. 변론 종결 후 2~4주 후에 선고하던 과거 관행에 비하면 상상할 수 없는 지연이다. 실제 1심 선고까지 2년 이상 걸린 사건이 5년 전에 비해 민사는 3배, 형사는 2배 늘어났다.

그동안 법원은 재판을 잘하는 판사 중에서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승진시켰고 이들 중 리더십이 인정된 사람을 법원장으로 임명했다. ‘재판을 잘하는’ 기준 중 하나는 사건을 적시에 처리하는 능력이다. 이 때문에 법원별로 통계를 돌려 판사들에게 미제 사건 처리를 독촉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 민주화를 명분으로 고법부장 승진제를 폐지하고 법원장 후보추천제를 도입하면서 시스템이 무너졌다. 재판을 잘하고, 쓴소리를 해가면서 사건 처리를 재촉하는 판사 대신 ‘사람 좋다’는 소리를 듣는 판사가 법원장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인사 포퓰리즘’ 비판을 받는 이 제도는 반대로 ‘대법원장의 측근 알박기 수단’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유력 후보군인 수석부장판사를 대법원장이 임명하는 데다, 득표 순위에 관계없이 대법원장이 최종 임명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역대 대법원장의 법원장 인사권이 문제 되지 않았던 이유는 ‘능력주의’라는 시스템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명수 대법원이 시스템을 무너뜨리면서 인사 포퓰리즘과 인사권 전횡 논란, 사법의 비효율만 남게 됐다. 한 원로 법관은 “김 대법원장이 ‘사법 민주화’ 평가와 자신의 인사권을 모두 누리려 한 데서 빚어진 결과”라고 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는 10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 논란의 제도를 전국으로 확대할 게 아니라 이 제도가 과연 필요한지 원점에서부터 다시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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