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유지되더라도… 39만가구는 집 팔아 빚 못갚는다
한국은행이 22일 펴낸 금융안정보고서는 금리 인상의 후폭풍으로 빚을 감당하기 어려운 처지로 내몰릴 수 있는 자영업자와 가계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담고 있다.
집값 하락의 직격탄을 맞아 재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을 팔더라도 빚을 다 갚지 못하는 가계가 급증하게 될 것으로 예상됐다. 전셋값 하락세가 지속될 경우 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도 크게 늘어나게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코로나 시기를 빚으로 버틴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대출 상환 유예와 만기 연장 조치가 끝날 경우 벼랑 끝으로 몰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준금리 0.5%포인트만 올라도 연체율 급증
가계와 기업의 부채를 합친 민간신용은 3분기에 명목 GDP의 223.7%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3분기 GDP(약 2141조원)를 감안하면 약 4790조원에 달한다.
한은은 다양한 시뮬레이션(모의 예측)으로 부채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기준금리가 지난 6월 말보다 2%포인트 오를 경우 취약 가계의 대출 연체율은 5.7%에서 7.3%로 치솟고, 취약 자영업자의 연체율은 5.7%에서 9.3%로 높아진다고 추정했다. ‘취약 대출자’는 3곳 이상의 금융사에서 돈을 빌린 대출자 가운데 소득이 하위 30%이거나 신용 점수가 664점 이하인 경우를 말한다.
문제는 기준금리가 6월 대비 2%포인트 오르는 상황이 먼 미래가 아니라 눈앞에 닥쳤다는 것이다. 6월 말 기준금리는 연 1.75%였는데 이미 연 3.25%까지 올랐다. 앞으로 0.5%포인트만 더 올라도 한은 시뮬레이션대로 취약한 가계와 자영업자의 연체율이 급격하게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 분석 결과, 내년 말에는 자영업자 중 취약 대출자가 32만7000명에 달하고, 이들의 사업자 대출 규모는 102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그중에서 금리 상승, 경기 부진, 정부 금융 지원 종료 등 3가지 악재가 겹치면 19조5000억원이 부실 대출이 될 것으로 추정됐다.
◇집값 20% 하락하면 57만가구 무너져
부동산 시장 경착륙에 의해 무너지는 가계가 속출하는 광경도 조만간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한은은 지난 6월 대비 집값이 20% 하락하면 집을 팔아도 빚을 다 못 갚는 고위험 가구가 전체 금융 부채를 갖고 있는 가구(6월 말 1182만가구)의 4.9%인 57만4000가구에 이를 수 있다고 봤다.
전세 시장 상황도 심상치 않다고 했다. 최근 월세가 급증하며 전셋값이 하락하고 있는 현상이 해소되지 않을 경우 집주인은 전세금을 전액 돌려주지 못하고, 세입자는 보증금을 떼일 가능성이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줘야 할 보증금 차액이 전셋값이 10% 하락하면 평균 3044만원, 30% 하락하면 평균 7642만원이 될 것으로 계산했다.
이에 따라 세입자에게 돌려줄 보증금 차액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집주인들이 속출할 것으로 예상됐다. 전셋값이 10% 하락하면 집주인의 85.1%는 금융자산을 처분하면 해결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금융자산 처분으로는 모자라 빚을 내야 하는 집주인이 11.2%에 이르고, 빚까지 내더라도 차액을 마련할 능력이 없는 집주인도 3.7%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전셋값이 30% 하락한다면 금융자산 처분만으로 해결 가능한 집주인이 68.6%으로 줄어든다. 30% 하락의 경우 대출까지 필요한 집주인은 22.4%, 빚을 내도 해결이 안 되는 집주인은 9%로 늘어난다.
◇부동산 대출·보증 GDP의 1.26배까지 늘어
한은은 지난 9월 말 기준으로 전체 부동산 대출·보증이 국내총생산(GDP)의 126%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모든 부동산 금융 익스포저(위험 노출액)를 2696조6000억원으로 집계했는데, 이것이 GDP의 1.26배라는 것이다. 그중 금융사들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보증 등이 포함된 부동산 기업 금융이 1074조4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7.3% 급증했다. 카드사와 캐피털사 등 여신 전문 금융 회사의 지난 9월 말 기준 부동산 PF 대출 잔액은 27조1000억원, 저축은행은 10조6000억원이었다.
한은은 증권사, 저축은행, 카드·캐피탈사 등 2금융권에 위험성이 큰 부동산 대출·보증이 많아 자칫하면 유동성 위기를 부를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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