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홍 칼럼]소인배 정치는 ‘윤석열의 길’이 아니다
이기홍 대기자 2022. 12. 23. 03:04
경선 코앞 룰 변경은 尹 장점인 당당함 훼손
‘당원-국민 비율’ 변경은 차차기부터 적용하고 결선투표만 도입하는 교통정리 나서야
편한 길, 눈앞 이익 택하면 신뢰·존경 약해져
‘당원-국민 비율’ 변경은 차차기부터 적용하고 결선투표만 도입하는 교통정리 나서야
편한 길, 눈앞 이익 택하면 신뢰·존경 약해져
필자는 칼럼을 준비하면서 지인들의 의견을 청해 듣곤 한다. 그중엔 우리 사회 이념 스펙트럼을 극좌1~극우10으로 놓고 펼쳐볼 때 5.1~8 사이로 분류할 만한 인사 그룹이 있다.
독립을 염원하는 식민치하 백성들처럼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실수나 측근 편중 인사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래도 문재인의 캠코더보다는 낫지 않나. 이재명 정권이라면 얼마나 악몽이었겠느냐”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당 대표를 무리하게 쫓아내려는 윤핵관에 개탄하면서도 이준석의 박덕(薄德)한 인성에 혀를 찼고, 간단한 사과 한마디면 정리될 사안을 ‘새끼’ 발언마저 부인하며 질질 끌고 가는 걸 답답해하면서도 MBC의 행태에 몇 배 더 분노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주 필자에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며 지적한 것은 “내 주변 보수들은 유승민류의 정치인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데 왜 느닷없이 경선룰 분란을 자초하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당의 대표는 당원들이 뽑는 게 맞지 않느냐”고 당원 100% 타당론을 슬쩍 제시하자 대뜸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으냐”는 반박이 돌아왔다.
“당원 100% 방식에 찬성한다”는 분들도 “이번부터 적용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가 당원 100% 당위성 홍보에 아무리 열을 올려도 국민은 ‘당신들 속셈을 다 안다’며 실소하는 것이다.
친정체제 구축은 국민에겐 지긋지긋한 패거리 정치, 소인배 정치의 동의어로 들린다.
문제는 소인배 정치가 당사자들만의 자승자박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나라 미래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윤핵관의 의중대로 공천 영향력을 확대해 자기 사람들을 쉽게 심으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다. 총선에서 지면 친윤-비윤이 극렬히 싸우고 나라는 다시 포퓰리스트 좌파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다.
지금은 여권이 단결해 외연을 넓혀도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내년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악화되면 윤 대통령의 개혁도 동력이 떨어지고 여당은 더 불리한 조건에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백번 양보해 정치공학적으로 친정체제가 유용하다 해도 지금 룰 변경을 밀어붙이는 친윤계가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이라는 ‘빅 픽처’에 따른 정교한 전략을 갖고 그러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갈대처럼 한 방향으로 눕는 여당 의원들을 국민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연극 보듯 환시(環視)하고 있다. 의원들의 우선 관심사는 대통령이나 지지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설령 정권이 쇠하는 길로 갈지라도 내 공천과 배지가 안정적이 되는 게 우선이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당원 중심으로 가자는 의원들 총의는 존중하되 다음(차차기)부터 적용하고 이번에는 결선투표만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원-국민 비율’ 변경은 시험 코앞에 출제범위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에 해당하지만, 표심 왜곡을 막기 위한 결선투표 도입은 채점 절차를 더 엄격히 하는 것이므로 불공정 시비 소지가 적다. 결선투표를 반대하는 후보라면 자신이 과반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상대 표 분산이라는 요행수만 노리고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보수진영 지도자에게 지지율 못잖게 중요한 건 지지층 마음 속의 신뢰와 존경이다.
좌파 진영에서는 ‘지지=신뢰=존경’의 등식이 성립한다. 권력 쟁취가 곧 실질적 자기 이익의 증대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주말 거리의 좌우 시위대를 비교해보라. 좌파 진영의 상당수는 노조, 시민단체, 온갖 조합·사회적 기업 등 우파 정권의 몰락이 자신의 이익과 직결돼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우파 중에 정권 향배가 실제 자신의 일상 경제활동이나 이해관계에 직결돼 거리로 나온 사람은 드물다.
‘문재인의 40%’는 그 어떤 내로남불에도 “사랑해요”를 외치는 데 반해 ‘윤석열의 40%’ 중 태반은 말실수 한 번에도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모래성을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은 존경과 신뢰다. 길은 간단하다. 당당하게 대도(大道)를 걷고, 자기편의 허물이나 실수에 엄정하고 겸허해지는 것이다. 만약 샛길, 꼼수를 택하면 존경과 신뢰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윤석열’은 정치 입문 전까지 최소한 절반이 훌쩍 넘는 국민에게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 멋은 당당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당당했던 검사, 뒷거래 꼼수는 생각하지 않는 강직한 이미지…. 그런 점에서 경선을 앞두고 룰을 바꾸는 식의 정치는 가장 비(非)윤석열적인 길이다.
‘윤석열 돌풍’은 기존과 달랐기 때문이다. 정권의 사냥개였던 옛 검찰과 달랐듯이, 계파·친정체제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졌던 과거 대통령들과 달라야 한다.
정치 신인이 뭐가 아쉬워서 야합과 술수에만 능한 정치꾼들의 때를 묻히는가. 게다가 윤 대통령이 개혁하고 싶어 한 보수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패거리·계파정치 아니었나.
힘들게 쌓았던 당당함의 이미지를 한줌도 안 될 현실 이익 때문에 훼손해선 안 된다. 검사 시절 정권이 아무리 난리 쳐도 국민이 지켜줬듯이, 당 대표가 누가 되든 대통령만 당당하면 국민이 최대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임을 잊은 것인가.
독립을 염원하는 식민치하 백성들처럼 정권교체를 열망했던 그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말실수나 측근 편중 인사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래도 문재인의 캠코더보다는 낫지 않나. 이재명 정권이라면 얼마나 악몽이었겠느냐”며 스스로를 다독였고, 당 대표를 무리하게 쫓아내려는 윤핵관에 개탄하면서도 이준석의 박덕(薄德)한 인성에 혀를 찼고, 간단한 사과 한마디면 정리될 사안을 ‘새끼’ 발언마저 부인하며 질질 끌고 가는 걸 답답해하면서도 MBC의 행태에 몇 배 더 분노했다.
그런 그들이 이번 주 필자에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며 지적한 것은 “내 주변 보수들은 유승민류의 정치인에게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는데 왜 느닷없이 경선룰 분란을 자초하느냐”는 것이다.
필자가 “당의 대표는 당원들이 뽑는 게 맞지 않느냐”고 당원 100% 타당론을 슬쩍 제시하자 대뜸 “핵심은 그게 아니지 않으냐”는 반박이 돌아왔다.
“당원 100% 방식에 찬성한다”는 분들도 “이번부터 적용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것”이라고 했다. 친윤계가 당원 100% 당위성 홍보에 아무리 열을 올려도 국민은 ‘당신들 속셈을 다 안다’며 실소하는 것이다.
친정체제 구축은 국민에겐 지긋지긋한 패거리 정치, 소인배 정치의 동의어로 들린다.
문제는 소인배 정치가 당사자들만의 자승자박에 그치는 게 아니라 나라 미래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윤핵관의 의중대로 공천 영향력을 확대해 자기 사람들을 쉽게 심으면 총선은 해보나 마나다. 총선에서 지면 친윤-비윤이 극렬히 싸우고 나라는 다시 포퓰리스트 좌파의 수중에 넘어가게 된다.
지금은 여권이 단결해 외연을 넓혀도 총선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제 정세는 급변하고 내년 경제 상황은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먹고 사는 문제가 악화되면 윤 대통령의 개혁도 동력이 떨어지고 여당은 더 불리한 조건에서 총선을 치러야 한다.
백번 양보해 정치공학적으로 친정체제가 유용하다 해도 지금 룰 변경을 밀어붙이는 친윤계가 총선 승리와 정권 재창출이라는 ‘빅 픽처’에 따른 정교한 전략을 갖고 그러는 것인지도 의문이다.
그런데도 갈대처럼 한 방향으로 눕는 여당 의원들을 국민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연극 보듯 환시(環視)하고 있다. 의원들의 우선 관심사는 대통령이나 지지자들과 다르다. 그들은 설령 정권이 쇠하는 길로 갈지라도 내 공천과 배지가 안정적이 되는 게 우선이다.
이제라도 윤 대통령이 교통정리를 해줘야 한다. 당원 중심으로 가자는 의원들 총의는 존중하되 다음(차차기)부터 적용하고 이번에는 결선투표만 도입하도록 하는 것이다.
‘당원-국민 비율’ 변경은 시험 코앞에 출제범위를 완전히 바꿔버리는 것에 해당하지만, 표심 왜곡을 막기 위한 결선투표 도입은 채점 절차를 더 엄격히 하는 것이므로 불공정 시비 소지가 적다. 결선투표를 반대하는 후보라면 자신이 과반수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사람임을 알면서도 상대 표 분산이라는 요행수만 노리고 있음을 자인하는 셈이다.
보수진영 지도자에게 지지율 못잖게 중요한 건 지지층 마음 속의 신뢰와 존경이다.
좌파 진영에서는 ‘지지=신뢰=존경’의 등식이 성립한다. 권력 쟁취가 곧 실질적 자기 이익의 증대에 직결되기 때문이다.
주말 거리의 좌우 시위대를 비교해보라. 좌파 진영의 상당수는 노조, 시민단체, 온갖 조합·사회적 기업 등 우파 정권의 몰락이 자신의 이익과 직결돼 있는 사람들이다. 반면 우파 중에 정권 향배가 실제 자신의 일상 경제활동이나 이해관계에 직결돼 거리로 나온 사람은 드물다.
‘문재인의 40%’는 그 어떤 내로남불에도 “사랑해요”를 외치는 데 반해 ‘윤석열의 40%’ 중 태반은 말실수 한 번에도 우수수 떨어져 나가는 이유가 그것이다.
그런 모래성을 견고하게 만드는 방법은 존경과 신뢰다. 길은 간단하다. 당당하게 대도(大道)를 걷고, 자기편의 허물이나 실수에 엄정하고 겸허해지는 것이다. 만약 샛길, 꼼수를 택하면 존경과 신뢰는 순식간에 사라진다.
‘윤석열’은 정치 입문 전까지 최소한 절반이 훌쩍 넘는 국민에게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 멋은 당당함에서 나온 것이었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며 당당했던 검사, 뒷거래 꼼수는 생각하지 않는 강직한 이미지…. 그런 점에서 경선을 앞두고 룰을 바꾸는 식의 정치는 가장 비(非)윤석열적인 길이다.
‘윤석열 돌풍’은 기존과 달랐기 때문이다. 정권의 사냥개였던 옛 검찰과 달랐듯이, 계파·친정체제 욕심을 부리다 수렁에 빠졌던 과거 대통령들과 달라야 한다.
정치 신인이 뭐가 아쉬워서 야합과 술수에만 능한 정치꾼들의 때를 묻히는가. 게다가 윤 대통령이 개혁하고 싶어 한 보수정치의 가장 큰 병폐는 패거리·계파정치 아니었나.
힘들게 쌓았던 당당함의 이미지를 한줌도 안 될 현실 이익 때문에 훼손해선 안 된다. 검사 시절 정권이 아무리 난리 쳐도 국민이 지켜줬듯이, 당 대표가 누가 되든 대통령만 당당하면 국민이 최대의 버팀목이 되어줄 것임을 잊은 것인가.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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