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부동산 경기부양 총력전의 후과가 두렵다

오관철 기자 2022. 12. 23.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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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9채 빌라왕’과 ‘은마아파트 영끌’. 최근 두 건의 소식을 접하며 상식을 벗어난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40대 빌라왕은 갭투자로 엄청난 규모의 빌라를 사들였지만 세입자 수백명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숨진 채 발견됐다. 배후 세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주거 약자들에게 피해를 준 이런 행태를 정부는 왜 제어하지 못했을까.

오관철 경제에디터

은마 영끌은 경매시장에 나온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매물이 24억원 대출을 동원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물건으로 파악됐다는 내용이다. 매입 시점은 지난해 9월로 대부업체에서 20억원 넘게 빌렸다고 한다. 월 2000만원의 이자를 감당하려 하면서까지 매입자가 노렸던 건 일확천금 불로소득이 아니었을까.

앞으로 다른 충격적 소식들이 어디선가 또 불쑥 튀어나올지 모르겠다. 정부의 정책은 그럴 가능성을 더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다.

지난 21일 정부가 내놓은 내년 경제정책방향을 보면 부동산 경기부양이 중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수요 억제책을 상당 부분 해제하는 내용이 담겼다. 4주택 이상 다주택자 취득세율은 12%에서 6%로 낮아지고, 양도세 중과 배제는 연장해 내년에 근본적 개편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다주택자 규제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거래주체로서의 역할 강화를 언급했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 시절 등록임대 대상에서 제외됐던 아파트도 10년 장기 매입임대, 85㎡ 이하 아파트에 한해 등록을 재개하기로 했다. 지난 정부에서 등록임대제도는 부동산 가격 폭등에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으며 대표적 실책으로 꼽혀왔다.

지난여름 반지하 수해 현장을 찾아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이 되지 않도록 주거정책을 챙기겠다고 했던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 “공공임대 확충은 재정과 납세자에게 부담을 주며 경기위축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 과거 선분양을 통해 모은 자금으로 아파트를 지어 막대한 이윤을 남긴 건설사들에는 희소식일지 모르겠다. 이쯤 되면 정부는 집값 안정을 위해 필수적인 수요 억제와 공급 확대, 두 정책 사이의 균형을 포기해버린 것 같은 느낌마저 준다.

2014년 5월 박근혜 정부의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문재인 정부 초반 부동산 가격 폭등의 바탕이 됐다. 부동산의 경기조절 기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관료들의 습성이 한국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를 낳았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보유세 강화를 포기한 정부가 앞으로 투기 광풍의 씨앗을 심는 건 아닌지 불안하기만 하다. 집값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심리임을 감안하면 부동산시장은 조금만 틈이 보여도 언제든 요동칠 수 있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해 초저금리 정책으로 대거 풀렸던 유동성이 회수되면서 부동산시장이 하락 국면에 접어든 것은 사실이나 비정상적 흐름이 복원되는 과정이라면 인위적으로 막을 일은 아니다. KB국민은행이 공개하는 ‘KB아파트 담보대출 PIR(가구소득 대비 가격 비율)’을 보면 올 3분기 기준 서울의 PIR은 14.5배에 달했다. 가구소득은 5701만원, 아파트 가격은 8억2875억원이었다. KB국민은행에서 아파트 담보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천차만별이겠지만 중간 기준으로 소득 대비 14.5배 가격의 주택을 구입했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거품 추산 방법 중 하나로 PIR지표를 보는데 10배를 넘으면 과도하게 상승한 것으로 판단한다. 적정 수준은 5배를 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분기 기준 경기와 인천의 PIR도 각각 10.3배, 9.1배에 달했다.

정부의 눈은 주택시장 약자인 세입자, 실수요자, 무주택자의 주거안정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투기를 막고 불로소득을 환수하며 임차인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는 게 사회정의에 부합한다. 거품이 낀 주택가격의 하향 조정은 외면해선 안 되는 목표다. 역대 정부는 보유세 강화를 강하게, 일관되게 추진하지 못했고 이것이 부동산 공화국을 만든 주요 원인 중 하나다. 불로소득을 얻는 구조와 풍토를 개혁하지 않는다면 미래세대 역시 불로소득의 환상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 연일 폭등하는 집값으로 좌절감에 빠진 무주택자들이 ‘부동산 블루’를 호소했다. 이대로 가면 윤석열 정부에서도 별반 달라지지 않을 거 같다. 부동산시장 연착륙 명분 뒤에 숨어 있는 집값 띄우기의 결말은 과거 사례가 보여주고 있다.

오관철 경제에디터 ok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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