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벌찬의 차이나 온 에어] 中 해열제 암시장선 가격 130배… 곳곳서 약품 약탈
22일 만리장성 동쪽 끝에 있는 허베이성 산하이관(山海關). 최근 코로나가 다시 확산하며 식당과 기념품점 대부분이 문을 닫았지만, 약국 앞에는 이른 아침부터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해열제를 사러 약국 5곳을 찾았지만,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한 약사는 “기침약이라도 사 두라”고 했다.
지난 7일부터 ‘위드 코로나’로 돌아선 중국에선 ‘약황’(藥荒·약품 부족)이 가장 시급한 해결 과제로 꼽힌다. 의료진 부족과 발열 환자 폭증으로 병원 진료가 극히 어려워졌지만, 해열제는 물론 기침약조차 구하기 힘들어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코로나 확진자들이 주로 복용하는 해열·소염진통제인 이부프로펜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자 수출국인 중국이 이 같은 사태에 직면하자 방역 완화를 위한 당국의 준비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해열제는 약국 대신 암시장에서 구해야 하는 희귀품이 됐다. 보통 위챗(중국판 카카오톡)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거래하는데, 정가의 100배가 넘는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코로나가 급속히 확산하는 상하이에선 정가 15위안(약 2700원)짜리 해열제가 130배가 넘는 2000위안(약 36만5000원)에 팔리고 있었다. 저장성 원저우시 룽완구 시장감독국은 “한 약사가 2.69위안에 들여온 100알짜리 이부프로펜을 포장을 뜯어 쪼개 파는 방식으로 107배 비싼 가격에 판매하다 적발됐다”고 밝혔다.
지난 18일 광둥성 주하이의 한 제약공장 앞에는 시민 수백명이 줄을 섰다. 이부프로펜을 정가에 구입하려는 이들이다. 한 30대 남성은 “3일째 허무, 자후이 등 대형 병원을 돌며 코로나 치료제를 구하고 있다”고 했다. 약품을 약탈하는 사태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21일 헤이룽장성 한 약국은 무료로 해열제를 나눠주는 행사를 벌이다 난입한 주민들에게 약품을 전부 강탈당했다.
중국 당국은 지난 3년간 ‘4가지 약품’으로 불리는 해열제·기침약·항생제·항바이러스제의 생산과 판매를 통제해 왔다. 지난 3일 구매 규제를 해제하기 전까지는 의사 처방을 받아 실명으로 소량만 구입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제약사들은 해당 약품 생산량을 줄여야 했고, 이런 상황을 버티지 못한 일부 기업은 도산했다. 이와 관련, 약품 수요 급증에 대비해 제때 증산 지시를 내리지 않은 당국의 실책이 최근 약품 부족 사태의 원인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약 전문가들이 활동하는 위챗 계정 ‘병원원장’에는 “방역 완화에 앞서 당국이 선제적으로 제약사들에 생산을 늘리라는 지침을 내렸어야 했다” “방역 완화 한 달 전부터 제약사 절반 정도가 생산 라인을 최대로 가동했다면 약품 부족 사태는 없었을 것” 등 지적이 잇따랐다. 배달원이나 화물차 기사 등 물류 종사자 상당수가 코로나에 확진돼 배송이 지연된 것이 사태를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에서 약품을 구하지 못한 중국인들의 ‘해외 직구’가 급증하며 홍콩·대만·일본·태국·호주·프랑스 등에서도 해열제 등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19일 대만 당국은 “약품 대량 반출로 품귀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며 해외 배송 자제를 당부했다.
중국 국가의약품감독국은 20일 긴급 약품 승인 절차를 가동, 코로나 치료약이나 아동용 약품의 심사와 승인 절차를 가속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대 이부프로펜의 원료 생산 업체인 산둥신화제약은 최근 공장을 24시간 풀 가동하고 있다. 중국 온라인 약품 구매 사이트 ‘메이퇀 마이야오’는 약국 검색 범위를 ‘반경 3~5㎞’에서 도시 전체로 확대했다.
이런 가운데 코로나 사망자가 늘면서 시민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퇴직 군 간부들이 요양하는 베이징 하이뎬구 한 시설에서는 최근 10일간 5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군 병원 사정을 잘 아는 한 중국인은 “코로나가 사인(死因)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중국 고위층 인사들의 사망이 급격히 늘고 있다”고 했다.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은 “중국에서 코로나 중증 환자가 증가하는 현 상황을 매우 우려하고 있다”며 “새로운 변이 출현을 부추길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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