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자의 작은 이야기] 진정한 애도는 진실뿐이다
어둠 속에 홀로 앉아 있는 이들 곁에서
작은 촛불이라도 켜게 하소서
이들은 창밖의 어떤 불빛도 새어 들어오지 못하는
얼음장 속에 갇혀 있습니다
자식을 잃고 형제와 친구와 사랑하는 이를 잃고
울부짖는 이들 곁에서 함께 통곡하게 하소서
차가운 돌무덤에 갇힌 자들의 체온은 영하
이들은 흐르는 눈물조차 얼어붙는 찬바닥에 갇혀 있습니다
산산조각난 심장 곁에서 함께 부서지게 하소서
산산조각난 심장의 부스러기로라도 곁에 있게 하소서
이들은 꽃도 피지 않고 새도 노래하지 않는
겨울 정원을 견디고 있습니다
이미 대못이 박혀 결박당한 사지에 대못만은 박지 않게 하소서
비수가 박혀 마비된 심장에 더는 비수를 꽂지 않게 하소서
진실은 아직 눈물조차 스며들지 않는
아스팔트 밑에 묻혀 있습니다
진정한 애도는 진실뿐입니다
진실만이 산산조각난 심장에 대한 예의입니다
- 근작시, 김해자, ‘산산조각난 심장 곁에’
데디 리그는 미국인 심리치료사로, 아들 타일러를 차 사고로 잃었다. 그는 아픈 사람들과 함께 가면을 만들고, 가면 속에서 맨얼굴로는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토해냈다. “가면 어둠이 아래로 내려”오고, “떨어지며 당신은 진정한 나 자신인가?”라고 물었다. 말은 논리적이지 않고 토막토막 끊기고, 당신과 나와 너가 합체되어 있다. “나의 코는 부러졌다. 그것은 별도 없는 밤에 산산이 부서진 나의 심장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그것은 나의 차가운 눈초리 밑에서 춤추는 음악 또는 선율 속에서 날아온, 연, 트럼펫의 시끄러운 소리…”라는 글에서, 죽은 아들이 춤추는 음악과 트럼펫을 좋아했구나 짐작할 뿐이다. 연이어진 문장 “나무는 구부리고 입은 외치고 붉은 잎은 나무에서 시든다. 여기저기 갈라진다”는 표현에서 한 존재가 산산이 부서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시간이 아들이 사고로 죽은 1996년 3월2일 새벽 3시30분에 멈추어 있다는 것도.
겨울 정원과는 달리, 나는 봄을 볼 수가 없다.
마비된 나의 심장만이 오직 견딘다.
바람이 나의 몸을 관통한다.
이것이 내 삶의 온도이다.
- 시, 데디 리그, ‘겨울 정원 -타일러를 위해’
세월호 이후에 필사한, 데디 리그의 산산이 부서진 문장을 이태원 참사 후에 다시 읽는다.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정호승 시인의 시 ‘산산조각’의 몇 구절을 읊조리며, 하루하루를 견딘다는 유족들의 절규와 분노와 슬픔을 헤아리며. 그러나 내가 어찌 이해할 수 있으랴. 2022년 10월29일 밤에 시간이 멈춘 자들의 갈가리 찢긴 마음을. 마비된 심장으로 견디며, 찬 바람이 관통한 눈사람 같은 몸, 그것이 “내 삶의 온도”라 고백하는 자식 잃은 자들의 심정을.
그러니 기도한다. 억울함과 그리움과 슬픔과 분노로 가득 찬 부서진 가슴에 대고 더는 비수를 꽂지 않게 해달라고. 그러니 촛불을 켠다. 이미 박살 난 심장에 더는 대못 꽝꽝 박아대지 않게 하기 위해. 그러니 촛불을 든다. 진정한 애도는 진실뿐이니까. 나는 간다. 이태원역 1번 출구에서 내 걸음으로 60보밖에 되지 않는 그곳에 심장을 내려놓은 이들이 있으니. 더 부서질 게 없는 자들 곁에서는 함께 부서져 내리는 수밖에 없기에. 희망 때문이 아니다. 신념이 남달라서가 아니다. 꽃도 피지 않고 새도 노래하지 않는 겨울 공화국 한복판에서, 산산조각난 심장의 부스러기로라도 곁에 있어주기 위해서 나는 간다.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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