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흉노 망국으로 이끈 실크의 치명적 매력[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2. 12. 23. 03:02
《인류의 역사는 옷과 함께했다. 동물과 달리 몸의 털을 줄이고 지능을 키우면서 인간은 기후와 환경에 적절한 옷을 만들어 입어야 했다. 옷은 단순히 몸을 가리는 도구가 아니다. ‘옷이 날개’라는 말처럼 사람이 자신의 지위와 정체성을 상징하는 가장 좋은 도구는 바로 옷이다. 지금도 명품이라고 하면 대부분 옷을 의미하는 이유다. 모피가 추운 겨울을 대표하는 명품이라면 실크는 지역과 시대를 불문하고 우리의 최고 사랑을 받은 명품이다. ‘실크로드’라는 말에 숨겨진 진짜 ‘실크’가 가진 수천 년 명품의 역사를 살펴보자.》
황금 못지않은 명품
흔히 유라시아를 가로지르는 교역로를 ‘실크로드’라고 한다. 정작 고대의 어떤 기록에도 실크로드 같은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19세기 말 독일의 학자 리히트호펜이 주장한 것이다. 그는 해양을 통한 식민지 경쟁에서 밀려버린 독일의 대안으로 바다를 거치지 않아도 중국으로 이르는 무역을 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견해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그 길을 중국의 명품을 대표하는 실크의 길로 명명했다. 로마 이래로 서양 사람들에게 실크는 황금보다도 값진 명품이라는 인식이 강렬하게 각인돼 왔다. 실제로 실크는 고대에 중앙아시아를 가로지르는 교역에서 주요한 명품이었다. 그 배경에는 험난한 내륙을 가로지르는 교역로라는 지리적 특성이 있다. 배에 많은 짐을 실어 나르는 바닷길과 다르게 내륙은 낙타의 등에 짐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가볍지만 고부가가치의 명품을 주로 거래했다. 향료나 비단 같은 물건이 최적이었다. 이제 실크로드라는 이름은 실크와는 전혀 관계없이 세계 곳곳을 잇는 무역로에 ‘실크로드’란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실크는 고부가가치의 명품 교역품을 대표하기 때문이다.
실크의 기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낸 흔적이 보인다. 누에 벌레는 뽕잎을 먹고 입으로 다시 토해서 실을 뿜어 고치를 만든다. 예전부터 고치 안에 있는 번데기는 주요한 단백질원으로 널리 사용됐다. 고치 속 번데기를 꺼내 먹는 과정에서 고치가 가진 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다. 다만, 야생의 누에에서 뽑아낸 원시적인 실크는 서로 끈적거리게 엉키고 거칠어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실크가 명품으로 되는 데는 고르게 실을 잣는 양잠기술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한나라 시절에 양잠기술이 최절정에 달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도 즉위 직후 6부를 돌면서 양잠을 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실크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고대의 전문화된 기술을 의미한다. 최고의 ‘명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재료 자체보다는 최고의 기술이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실크라는 명품에는 누에 벌레의 선별과 실을 뽑는 일련의 양잠기술 획득이 필수다. 고대 이래로 그 노하우를 유지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사업이었다. 그래서 고대부터 양잠을 관장하는 신께 드리는 제사가 동아시아에서 널리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의 제도에서 따온 왕비가 직접 참석하는 ‘선잠제’를 거행했다.
실크 두른 3000년 전 청동신상
그런데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양잠의 신을 모시는 의식의 기원은 실제로는 중원지역이 아니라 남서부의 쓰촨 지역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대 이래로 중원과는 다른 쓰촨 분지의 사람들은 고대에 파와 촉 사람이라는 뜻으로 파촉(巴蜀)이라고 불렸다. 유비가 세운 촉(蜀)나라로도 유명한 촉이란 이름의 한문은 뽕나무에서 기어 다니는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것이다.
실크의 기원은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인도와 중앙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서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낸 흔적이 보인다. 누에 벌레는 뽕잎을 먹고 입으로 다시 토해서 실을 뿜어 고치를 만든다. 예전부터 고치 안에 있는 번데기는 주요한 단백질원으로 널리 사용됐다. 고치 속 번데기를 꺼내 먹는 과정에서 고치가 가진 실의 특성을 자연스럽게 알았을 것이다. 다만, 야생의 누에에서 뽑아낸 원시적인 실크는 서로 끈적거리게 엉키고 거칠어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실크가 명품으로 되는 데는 고르게 실을 잣는 양잠기술이 필요하다. 중국에서는 일찍이 한나라 시절에 양잠기술이 최절정에 달했다. 또한 그와 비슷한 시기에 신라를 건국한 박혁거세도 즉위 직후 6부를 돌면서 양잠을 권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실크는 단순히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고대의 전문화된 기술을 의미한다. 최고의 ‘명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재료 자체보다는 최고의 기술이 중요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실크라는 명품에는 누에 벌레의 선별과 실을 뽑는 일련의 양잠기술 획득이 필수다. 고대 이래로 그 노하우를 유지하고 품질을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주요 사업이었다. 그래서 고대부터 양잠을 관장하는 신께 드리는 제사가 동아시아에서 널리 발달했다. 조선시대에도 중국의 제도에서 따온 왕비가 직접 참석하는 ‘선잠제’를 거행했다.
실크 두른 3000년 전 청동신상
그런데 최근 고고학 발굴을 통해 양잠의 신을 모시는 의식의 기원은 실제로는 중원지역이 아니라 남서부의 쓰촨 지역일 가능성이 제기됐다. 고대 이래로 중원과는 다른 쓰촨 분지의 사람들은 고대에 파와 촉 사람이라는 뜻으로 파촉(巴蜀)이라고 불렸다. 유비가 세운 촉(蜀)나라로도 유명한 촉이란 이름의 한문은 뽕나무에서 기어 다니는 누에고치를 형상화한 것이다.
옛 기록에 따르면 촉나라의 선조를 잠총(蠶叢)과 종목(縱目)이라고 기록했다. 종목은 세상을 굽어보는 천리안이요, 잠총은 양잠을 관장하는 신이다. 우리로 말하면 단군에 해당하는 사람이 바로 양잠의 신인 셈이다. 잠총과 종목의 실체와 쓰촨 지역의 오랜 양잠기술은 실제 고고학 자료로도 증명됐다. 2021년에 중국을 뒤흔든 대형 발굴이 쓰촨의 수도 청두 근처인 싼싱두이(三星堆)에서 벌어졌다. 중국중앙(CC)TV는 일주일 가까이 발굴을 생중계할 정도였다. 바로 이 유적은 3000년 전 쓰촨 지역에서 살던 사람들이 모시던 제사 터다. 특히 제사구덩이에서 툭 튀어나온 눈에 황금마스크를 한 청동신상이 다수 발견됐다. 신상을 감싼 직물을 감정한 결과 양잠을 해서 뽑아낸 실크로 판명됐다. 이로써 마치 영화 ‘아바타’의 주인공을 연상시키는 이 신상은 잠총과 종목이라는 결론이 났다.
유목민 야성 잃게 한 매력
유목민 야성 잃게 한 매력
2017년 국립문화재연구원과 몽골 고고학연구소는 몽골의 가장 서부인 알타이 산맥 근처의 시베트 하이르한이라는 유적에서 약 2000년 전 중국제 비단옷을 입은 미라를 발굴했다. 이 지역은 기후 조건이 좋아서 미라와 의복들이 종종 발견된다. 그런데 이제까지는 주로 혹독한 초원의 기후를 견디고 말을 타기 편한 가죽옷이 주로 발견됐다.
하지만 이 유적에서는 전형적인 중국제의 비단이 발견되었다. 혹자는 비단을 입었으니 중국인이 아니냐는 오해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초원 깊숙한 지역에서 중국인이 유목을 하며 살 리는 없다. 반대로 유목민들 사이에서 비단이 널리 유행했다는 뜻이다. 흉노 시절에 비단은 왕에 해당하는 선우와 귀족들만 입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는 어린아이도 비단옷을 입을 정도로 몽골 알타이 지역에서 비단이 널리 유행했다.
그만큼 중국의 실크가 유명했다는 뜻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목민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황금보다 값비싼 실크를 몸에 걸치면 험한 말 타기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망명한 흉노 선우의 신하는 비단을 좋아하다가는 결국 망할 것이라는 눈물의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실크를 구입하는 데 막대한 부를 소모했고, 또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중국제 마차를 몰고 다니면서 흉노는 점차 유목민의 야성과 힘을 잃어갔다.
로마의 곳간 탕진시킨 실크
흉노뿐이 아니라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기원전 55년에 파르티아와 벌인 카레이 전투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2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포로로 잡혔지만 정작 파르티아는 100명도 안 되는 사상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 패배 와중에도 로마인들은 파르티아인이 두른 실크에 반했고, 이후 로마의 부를 탕진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이기도 했다.
실크는 20세기 근대 일본을 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 상징성을 근거로 2014년 일본은 근대 실크산업의 산실인 도미오카 제사장(실크를 뽑는 공장)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일본이 최초로 등재한 근대화 산업유산이기 때문이다. 고대에 양잠기술은 중국에서 고도로 발달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서양에 뒤처졌고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현대적인 양잠기술을 도입해 현대화된 실크 제품을 생산했다. 과거의 전통을 현대의 기술로 개혁하는 ‘동도서기’의 상징인 셈이다. 이후 현대화된 양잠산업은 메이지 유신의 경제적 밑천이 돼 일본이 경제를 일으키던 1920년대에는 한 해 수출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크는 동서 문명의 기원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실크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그 대신 다양한 화장술로 자신을 가꾸거나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재질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실크 같은 명품 콘텐츠를 찾아 헤매고 있다. 반도체 같은 작고 가벼운 기술, 그리고 사람을 매혹시키는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로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실크의 역사가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그만큼 중국의 실크가 유명했다는 뜻도 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유목민의 멸망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황금보다 값비싼 실크를 몸에 걸치면 험한 말 타기를 제대로 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중국에서 망명한 흉노 선우의 신하는 비단을 좋아하다가는 결국 망할 것이라는 눈물의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실크를 구입하는 데 막대한 부를 소모했고, 또 값비싼 비단옷을 입고 중국제 마차를 몰고 다니면서 흉노는 점차 유목민의 야성과 힘을 잃어갔다.
로마의 곳간 탕진시킨 실크
흉노뿐이 아니라 로마도 마찬가지였다. 로마는 기원전 55년에 파르티아와 벌인 카레이 전투에서 기록적인 패배를 기록했다. 2만 명이 죽고 1만 명이 포로로 잡혔지만 정작 파르티아는 100명도 안 되는 사상을 기록할 정도였다. 그 패배 와중에도 로마인들은 파르티아인이 두른 실크에 반했고, 이후 로마의 부를 탕진하는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그야말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치명적인 유혹이기도 했다.
실크는 20세기 근대 일본을 대국으로 끌어올리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 상징성을 근거로 2014년 일본은 근대 실크산업의 산실인 도미오카 제사장(실크를 뽑는 공장)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도미오카 제사장은 일본이 최초로 등재한 근대화 산업유산이기 때문이다. 고대에 양잠기술은 중국에서 고도로 발달했다. 하지만 근대 이후에는 서양에 뒤처졌고 일본은 프랑스로부터 현대적인 양잠기술을 도입해 현대화된 실크 제품을 생산했다. 과거의 전통을 현대의 기술로 개혁하는 ‘동도서기’의 상징인 셈이다. 이후 현대화된 양잠산업은 메이지 유신의 경제적 밑천이 돼 일본이 경제를 일으키던 1920년대에는 한 해 수출량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기도 했다.
실크는 동서 문명의 기원인 동시에 시대를 초월한 진정한 소프트 파워의 상징인 셈이다. 하지만 지금 실크의 위상은 예전 같지 않다. 그 대신 다양한 화장술로 자신을 가꾸거나 가상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재질만 바뀌었을 뿐 사람들은 여전히 실크 같은 명품 콘텐츠를 찾아 헤매고 있다. 반도체 같은 작고 가벼운 기술, 그리고 사람을 매혹시키는 한류라는 소프트 파워로 세계로 나아가는 우리에게 실크의 역사가 주는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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