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수의 사람을 생각하는 정책] 용두사미와 침소봉대, 그리고 약자복지
2022년 한국 사회를 가장 잘 표현한 사자성어로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가 선정되었다. 과이불개를 추천한 이유는, 우리 지도층 인사들의 정형화된 언행을 잘 보여주는 것으로 여야 모두 잘못이 드러나면 서로 남 탓만 하고 고칠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일상의 삶은 점점 불안해지는 상황에서도 민생을 우선 생각하는 정치권의 모습과 내 삶을 나아지게 만들 정책들은 보이지 않으니 각자도생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답답할 뿐이다.
국민들 삶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요한 정책 변화와 관련해서 윤석열 정부 출범 전후 정책 방향과 내용이 발표된 과정을 표현한 사자성어를 꼽아보면 용두사미(龍頭蛇尾), 견강부회(牽强附會), 침소봉대(針小棒大)가 떠오른다. 그리고 사자성어는 아닐지라도 윤석열 정부가 복지정책 방향으로 강조하는 ‘약자복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다.
우선 시작은 야단스러운데 끝은 보잘것없이 흐지부지된다는 용두사미의 대표적인 정책 사례가 국정과제에 제시된 청년정책 중 하나인 청년도약계좌다. 대선 당시부터 주요 공약으로 청년들로부터 가장 주목받았고 여전히 많은 청년들이 기대하고 있다. 청년도약계좌는 기존의 청년희망적금이 추가 이자율을 지급하는 방식과 차별화하여 청년의 소득계층과 저축금액에 따라 정부가 상당한 수준의 매칭금을 차등 지원한다는 내용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실제 예산안에 반영된 청년도약계좌는 실망스럽다. 가장 소득이 낮은 구간의 저소득 청년에 대한 정부 매칭비율조차도 전체 저축금액의 최대 6%에 불과할 정도로 기대 이하 수준이다. 청년의 저축액이 매월 50만~70만원이 되지 않고서는 당초 공약에 발표됐던 10년간 1억원은 생각할 수도 없고 수정 발표한 5년간 5000만원을 만드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이것은 보건복지부가 중위소득 100% 이하 청년을 대상으로 이미 시행 중인 청년내일저축계좌의 최소 일대일 매칭이나 중소기업 재직 청년 대상의 청년내일채움공제 매칭 지원수준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최근 고금리 상황을 생각하면 단순히 금융권 이자율보다 조금 높은 수준으로 정부가 한 번 더 매칭하는 형태로 축소됐다. 게다가 청년도약계좌를 시행하지 않은 상황에서 유사·중복이란 이유로 중소기업 재직 청년에 대한 청년내일채움공제의 예산부터 절반 수준으로 축소했다. 또한 내년부터 영아수당을 대체하여 시행하는 부모급여도 부모의 기대와 달리 보육료 지원과 가정양육수당을 통합한다. 정부나 지자체가 별도 지원하는 출산장려금, 산모신생아 지원, 산후조리지원서비스도 유사·중복이란 이유로 축소한다면 출산과 양육 부담을 느끼는 부모 입장에서 크게 나아지는 게 없을 것이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억지로 끌어다붙여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 사자성어는 견강부회다.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는 그동안 정부가 내년 세제개편안이나 예산안을 발표하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노인일자리와 공공임대주택 관련 예산 축소에 대한 정부의 설명이었다. 노인일자리의 질이 낮다는 이유로 70세 이상 고령 노인의 다수가 생계형으로 참여하는 공익활동형 노인일자리를 10%나 축소하는 대신 시장형 노인일자리가 확대되니 노인일자리의 총량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해명하다가 결국 국회 심의과정에서 공공형 노인일자리를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으로 철회했다. 매입임대주택 등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대폭 축소하면서 공공분양임대주택을 확대했다거나 이사비용을 지원한다는 등 가장 어려운 취약계층을 두껍게 지원하겠다는 약자복지에도 걸맞지 않은 설명을 반복해오고 있다.
바늘처럼 작은 일을 몽둥이처럼 크게 부풀려 허풍 떠는 모습을 의미하는 침소봉대에 해당하는 사례는 정부의 예산안 발표 과정과 건강보험 개혁을 발표하면서 제시했던 내용들이다. 재정지출을 효율화하더라도 취약계층을 두껍게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사회복지 예산을 대폭 확대한 듯이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 법정 지출에서 고령화에 따른 수급대상 확대나 고물가 상황에 법정 물가상승률을 반영해 인상된 급여수준 등 자연증가분으로 정부의 정책의지가 반영된 약자복지 예산은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최근 건강보험 개혁 추진방향을 발표하면서 가장 먼저 제시된 것은 전 국민 대상의 보편적 건강보험에서 의료서비스 이용자 중 상위 10%도 아닌 10명의 과도한 의료쇼핑 사례다. 특히 초음파, MRI 등 검사 오남용과 지출 증가를 강조하며 ‘문재인케어’ 보장성 확대를 폐기한다고 발표했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역대 정부에서 공통적으로 추진한 일관된 방향이며 건강보험 재정의 합리적인 개혁 방향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보장성 확대 과정에 나타난 의료서비스 공급기관의 과잉진료나 사무장병원 등 불법행위보다 극소수의 의료이용 행태를 강조한 것은 침소봉대의 전형적 사례다. 재정지출을 효율화하여 필수의료 강화나 재난적 의료비 지원 등 약자복지에 사용한다고 강조하지만 보장성을 강화하면서도 박근혜·문재인 정부 모두 지속적으로 확대해왔던 것에 불과하다.
윤석열 정부는 약자복지를 강조하지만 국민 누구나 다양한 사회적 위험으로 어느 날 갑자기 일상적 삶이 완전히 무너질 수도 있다. 그래서 누구나 일상의 삶을 안정 속에 유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고 이는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이자 국민의 권리다. 보편적 사회안전망은 사각지대 없이 누구나 기본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보장수준이 되어야 하며, 단지 약자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인정한 취약계층만을 위한 것은 절대로 아니다.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개혁도 필요하지만 국민의 일상적 삶의 안정을 외면하고 오히려 불안하게 만드는 개혁은 아무리 올바른 방향이라 해도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살아있는 우리 모두 행복하라’, 국민들만 바라보겠다고 이야기하는 정치권이 아니라 한 해 동안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드라마인 <우리들의 블루스>가 시청자들에게 전해준 위로의 메시지다. ‘약자’만이 아니라 힘겹게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행복해야 한다. 새해에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정치권의 모습과 다양한 정책으로 인해 모두가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지면 좋겠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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