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마트가 아니라 사람이 쉬었다

기자 2022. 12. 23. 03:0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국룰’은 아녀도 웬만하면 지키자는 문화가 있다. 일요일에 결혼식 날짜를 잡지 않는 것, 업무 전화나 메시지도 가급적 피한다는 것. 주말에 급한 용건으로 연락을 하면 “주말에 쉬시는데 죄송합니다”라고 당연히 양해를 구한다. 그래서 ‘주말장사’에 매달리는 자영업이 괴로운 것이다. 남들 쉴 때 일을 한다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고된지는 굳이 겪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그래도 근래 일요일에 문을 닫는 식당과 소매점들도 속속 늘어난다. 단골 식당 사장님도 일요일 손님도 적고, 운영비 부담만 커서 차라리 휴무를 갖기로 하셨다. 그리고 교회도 다시 나가신다며. 일요일에는 다음날 출근에 대비해 웬만하면 휴식을 취하는 문화가 자리를 잡아가던 차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하지만 이를 거스르는 결정이 최근 근로시간을 주당 52시간에서 69시간까지 늘리겠다는 정부의 방침이다. 52시간도 결코 짧지 않다. 나처럼 경기 동북부에 사는 ‘경기러’라면 서울 출퇴근에만 꼬박 서너 시간을 길에다 헌납하고 다닌다. 평일에 수면과 휴식 시간을 줄여가면서 버티는 생이 대한민국의 삶이다. 그래서 아무런 약속도 없는 일요일, 그 하루는 생명 연장의 꿈을 그나마 실현하는 ‘절대하루’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민제안 1위가 ‘대형마트 월 2회 의무휴업 폐지’ 요구다. 이에 대구시가 먼저 일요일 의무휴업을 평일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며 나섰다. 대형마트 전성시대였던 10년 전, 소상공인보호와 대형마트에 근무하는 노동자들의 건강권 보장을 위해서 만들어진 제도이며 2018년 ‘합헌’결정이 나와 있다. 대형유통업체들은 일요일 의무휴업이 골목상권을 활성화시켰는지 확실하지 않고, 외려 유입인구가 줄어 상권이 더 죽었다며 줄기차게 폐지를 요구했다. 심지어 주말장사를 못해서 농가들 피해와 입점업체들의 연쇄피해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주말에 쇼핑할 자유를 왜 침해하느냐는, 권리의식 도드라지는 소비자들의 요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대형마트의 쇠퇴가 정말 격주 의무휴업 때문이기만 할까.

아들딸 낳아 잘 사는 4인가족의 형태가 속수무책 무너지고, 1인 가구가 급격히 늘었다. 여기에 코로나19라는 대형변수까지 끼어들면서 조리를 전제로 한 식품구매보다는 편의점 구매나 온라인구매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2021식품소비행태보고서’를 보면 온라인으로 식품 구입 가구가 전체 가구의 60.7%로 전년도에 비해 9.5%포인트 늘었고, 구입횟수도 전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나온다. 대형마트들도 온라인시장과의 경쟁에 밀려 주말 장사라도 하겠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소비자들도 주말에 영업을 하면 마트에 한두 번 더 가게 될 테고, 분명 영업이익에 보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주말영업으로 수익개선이 이루어진다 해도 10년 전의 영광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일요일 의무휴업이 평일로 옮겨진다면 피해자는 있다. 겨우 얻었던 월 2회의 일요일 휴식권이 박탈되는 대형마트 종사자들이다. 대부분 여성노동자들인 대형마트의 노동자들은 일요일 의무휴업제 폐지의 가장 큰 고통을 겪게 된다. 그런데도 이 결정에 자신들의 목소리는 쏙 빼버려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 한 달에 네 번도 아니고 딱 두 번, 관리자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요일에 쉴 수 있었던 권리를 국민들이 쇼핑할 권리 때문에 빼앗는 것이다. 근로시간은 자잘하게 쪼개져 있어 주말에 근무하면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다. 주말근무를 하느라 친구들 모임에 거푸 빠지면서 눈치가 보여 스스로 모임방에서 빠져나왔다는 마트 노동자의 말을 들었다. 친구도 만나고 늦잠도 자고 가족들과 한 달에 두 번 함께 밥을 먹겠다는 요구가 유난한가. 그동안 일요일에 마트 문을 닫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쉬었다.

정은정 농촌사회학 연구자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