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시선] 통계조작은 국가에 대한 범죄다

2022. 12. 23. 00: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실패한 정책, 성공으로 재포장
통계조작은 국가에 대한 범죄다

2018년 중반, 갑작스러운 통계청장 교체 소식이 들렸을 때 모두 의아해했다. 황수경 당시 통계청장은 노동연구원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온 경제 전문가였고, 문재인정부에서 발탁된 호남 출신의 여성 전문가란 점에서 더욱 그러했다. 2018년 5월, 통계청은 소득격차가 사상 최대로 벌어졌다는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것이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실효성에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결국 황 청장은 강신욱 보건사회연구원 박사로 교체되었는데, 그는 통계조사 방식을 변경하면 분배지표의 개선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보고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는 보도가 이어졌었다. 이후 통계청은 소득 자료수집 기준을 가구에서 개인으로 변경하고 표본 수를 조정해 소주성 정책의 성과를 과대 포장했다는 것이 이번 감사원의 감사 결과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느닷없는 통계청장 교체는 국가통계를 조작하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봐야 한다.

2022년 9월부터 진행된 감사원의 국토교통부, 통계청, 한국부동산원에 대한 감사는 부동산과 일자리 통계의 조작 의혹도 제기했다. 2020년 6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민간 전문조사기관인 KB부동산 통계를 근거로 2017년 5월부터 2020년 5월까지 문재인정부 3년간 서울 아파트 가격이 52% 상승했다고 발표하자 정부는 한국부동산원의 자료를 근거로 같은 기간 상승률이 14.2%였다고 반박했다. 이번 감사에서 한국부동산원은 부동산 가격동향조사에서 표본을 편향 추출하거나 심지어 임의로 숫자를 입력해 집값 상승 폭을 줄인 정황이 있다고 한다. 고용도 2019년 비정규직이 87만명 증가했다는 통계조사 결과가 나오자 강신욱 당시 청장은 ‘조사방식이 바뀌었고, 조사방식에 문제가 있다’면서 마치 자신이 청장으로 있는 통계청의 잘못인 것처럼 발표했다. 비정규직 증가율은 문재인정부 이전에도 연 20만명을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소주성을 통한 저소득층의 소득 증가를 주장해 온 문재인정부의 정책 실패를 보여준 통계를 통계청장 스스로 통계청의 잘못이라고 자인한 것이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학
아직은 의혹 단계라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이것이 사실이라면 강 전 청장과 그 윗선인 홍장표 전 경제수석을 비롯한 문재인정부 청와대 경제·일자리 관련 비서관들에 대한 수사와 엄중한 처벌은 불가피하다. 국가통계의 조작은 질이 매우 나쁜 범죄일 뿐만 아니라 국민과 시장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로서 일벌백계하여 다시는 유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일 이번 사안을 그대로 넘긴다면 어느 정부든 자신들의 정책 실패를 통계 조작을 통해 가리면서 ‘통계체계의 개선’이라는 말장난으로 합리화할 것이다. 제 돈 아까운 줄은 알면서 국민 혈세는 펑펑 써대고 결과가 나쁘면 통계를 조작해 실패도 성공으로 재포장하는 전례를 남기는 일을 결코 용납할 수 없다.

통계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방식의 변경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단지 현실을 왜곡하는 것은 학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안 하는 것일 뿐이다. 더욱이 정권에 아부해 통계방식의 변경을 제시하는 것은 배운 사람으로서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차제에 통계청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 확보 문제를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국가통계의 방식과 자료수집의 단위, 지표, 분석방법 등은 오랫동안 누적된 합리성의 산물이다. 이를 변경하는 것은 시계열 자료의 연속성을 단절시키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 향후 국가통계 방식의 변경은 반드시 학계 검증을 통해 그 정당성을 확인받도록 하고, 이후 국회의 동의를 거쳐 확정하도록 제도화하자. 비록 차관급이지만 통계청장의 인선을 정권의 입맛대로 할 수 없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회의 추천과 학계의 검증, 그리고 대통령의 임명 등 3단계 과정을 거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임기제를 도입해 임기 중 부당하게 해임되는 것을 막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

홍성걸 국민대 교수·행정학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