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안 쓰면 당장 밥줄 끊겨”…자영업 대출 1000조 돌파
코로나19 유행 전보다 48% 늘어
대출자수는 191만→309만 폭증
한은 “내년 말 취약차주 부실대출 19.1%로”
가계·기업대출 합치면 GDP대비 223%
“대출시장 연착륙 위해 지원 대책 유지해야”
“코로나가 한창일 때보다 매출은 늘었지만 밀린 임대료와 거의 두 배로 뛴 이자 부담때문에 빚을 더 져야 할 판이죠. 신용대출 금리는 빌릴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백방으로 방법을 알아보는 중입니다.”
서울 합정역 인근에서 덮밥집을 운영하는 박모 씨(37세)는 여전히 적자인 영업 상황을 이렇게 털어놨다. 2년 넘게 코로나 팬데믹 기간을 버틴 뒤 겨우 살림이 나아지나 싶었지만, 급격한 금리 인상이 발목을 잡았다. 내야 할 이자는 늘고 임대료 상환 부담도 커진 것이다.
국내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두자리수 증가세를 이어가며 사상 최초로 1000조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로 다수의 자영업자들이 매출 감소를 겪었다. 여기에 기준금리 추가 인상이 예상되고, 소비 회복세도 둔화될 것으로 보여 자영업자들 사정은 더욱 암울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자영업자 지원 대책 효과가 사라질 경우 내년 말 부실 위험에 빠진 자영업자 대출 규모가 39조원을 넘을 것으로 봤다.
여기에 금융안정을 나타내는 종합지표인 금융불안지수(FSI)는 국내 단기자금 시장 위축과 전세계적인 긴축기조에 따른 충격으로 ‘위기’ 단계에 진입하며 금융 분야 위험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22일 한은이 발표한 하반기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은 3분기말 기준 1014조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사상 처음으로 1000조원을 넘어선 것이자, 1년 전보다 14.3% 증가한 수치다.
차입 상황도 좋지 않다. 금리가 상대적으로 높은 비은행권에서 빌린 돈은 1년 전보다 28.7%나 늘어나 6.5%인 은행권보다 높았다. 다중 채무에 소득이 높지 않은 이른바 ‘취약 차주’의 빚 증가율은 18.7%로 비(非)취약차주(13.8%)보다 높았다.
대출 증가 배경엔 코로나19가 있다. 전체 대출 규모는 대유행 시작전인 2019년 4분기 684조9000억원보다 48%나 늘어났다. 돈을 빌린 자영업자 수도 2019년 말 191만4000명에서 올 3분기 말 현재 309만6000명으로 61.7%나 폭증했다. 급감한 매출과 운영비를 빚으로 막기 급급한 자영업자가 크게 늘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대내외 여건이 자영업자들에게 더욱 불리하게 흘러간다는 점이다. 급증하는 물가를 잡기 위해 한은이 올해 기준금리를 2.25%포인트 올리며 대출금리는 급증한 상태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자영업자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21%는 연 8% 이상의 고금리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지난 4월 거리두기 전면 해제 후 경기를 이끈 ‘펜트업 효과’도 잦아들 전망이다. 한은은 내년 민간소비 증가율을 2.7%로 전망하며 올해(4.7%)보다 눈에 띄게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금리 상승이 계속되고 매출 회복세가 둔화되는 상황에서 정부의 한시적인 금융지원 효과가 사라지면 자영업자의 대출 부실 위험이 커진다고 분석했다. 구체적으로 내년 말 기준 취약차주는 최대 19조5000억원, 비취약차주는 19조7000억원 등 총 39조2000억원의 자영업자 대출이 부실 위험군으로 분류된다. 특히 취약 차주의 부실 위험률은 19.1%로 올해 3분기(12.9%)보다 50% 가량 늘어난다고 한은은 설명했다.
대출 상황을 민간 전체로 넓혀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3분기 기준 가계와 기업부채를 합친 민간 신용은 국내총생산(GDP)대비 223.7%에 달한다. GDP 두배 수준의 빚이 가계와 기업을 짖누르고 있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1870조6000억원, 기업부채는 1722조9000억원에 달하는데 특히 기업부채 증가 속도가 심상치 않다.
가계부채는 1년전보다 1.4% 늘며 증가세가 둔화됐지만 기업부채는 같은 기간 15%나 늘었다. 자본시장 불확실성으로 회사채·기업어음(CP) 발행이 어려워져 유동성 확보를 위해 대출규모가 커졌고, 원화값이 하락하고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영향을 받았다. 단기자금 시장 경색의 신호탄이 된 부동산관련 기업대출과 PF(유동화증권) 취급도 마찬가지다. 9월말 기준 비은행권 건설부동산업 대출은 580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5%나 급증했고, PF대출도 22.8%나 늘었다.
한은은 향후 금리 인상이 민간 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짚었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현재 3.25%인 기준금리가 3.75%까지 오르면 취약 자영업자의 대출 연체율은 9.3%까지 치솟을 것으로 봤다. 또 금리 인상으로 주택값이 6월 대비 20% 떨어지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크고(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40% 초과), 자산 매각을 통한 부채 상환이 어려운(자산대비부채비율 100% 초과) ‘고위험’ 가구 비중이 3.3%에서 4.9%로 뛴다고 분석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계적인 대출 규모 감축은 부실 위험을 키울 수 있다”며 “자영업자들의 생계형 대출에 대해선 기한 연장과 저금리 상품으로 갈아탈 수 있는 정책 등을 제공해 연착륙을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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