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주 캐디서 프로 '화려한 변신' 이성관... "비슷한 환경 학생들에 모범 될 것"

김기중 2022. 12. 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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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CC 캐디로 6년 근무... 강지만·최경주 골프백 메기도
이성관이 KPGA 스릭슨투어에서 티샷을 하고 있다. 군산CC에서 캐디로 활동하다 강지만과 최경주 등 프로들의 골프백을 멨던 이성관은 2023 시즌부터 KPGA 코리안투어에 출전하게 된다. KPGA 제공

이성관은 새 시즌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서 뛰게 될 신인이다. 지난달 15일부터 나흘간 열린 퀄리파잉 토너먼트(QT) 최종전에서 18위로 내년 1부 투어 출전권을 획득했다. 만으로 32세인 이성관은 투어 데뷔 선수로는 나이가 많은 축에 든다. 골프 선수로서 한창 전성기를 맞아야 할 나이에 투어에 데뷔할 수밖에 없었던 이성관의 사연을 22일 직접 들어봤다.

이성관은 캐디였다. 프로선수들의 골프백을 메고 경기를 돕는 전담 캐디가 아니라, 골프장에서 아마추어들을 상대로 도움을 주던 하우스 캐디였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성인이 된 후 골프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육상 선수 생활을 하던 그는 15세에 아버지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 하지만 그는 선수로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집안 경제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골프를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2009년 20세의 나이로 해병대에 입대를 했다. 아버지가 국가 유공자라 군 면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하라”는 아버지의 입대 권유를 따른 것이다. 한편으로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 입이라도 하나 덜어보자는 마음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전역 후 그는 곧바로 생업에 뛰어들었다. 운동선수만 해 왔기에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었다. 그래서 그는 친구의 소개로 골프장에서 캐디로 일하기 시작했다. 캐디를 하면 한 달이면 몇백만 원은 벌 수 있다는 얘기에 귀가 솔깃했다. 그가 일하던 골프장은 전북 군산에 있는 군산CC였다.

이성관은 그렇게 6년 동안 군산CC에서 캐디 일을 했다. 캐디 생활 초반에는 틈틈이 골프채를 잡으며 선수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의지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때 이성관은 2006년 신한동해오픈 우승자인 강지만(46)을 만났다. 이성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강지만은 그의 스승이자 골프 인생 은인이었다. 2015년 군산CC에서 열린 KPGA 코리안투어 군산 오픈에서 강지만의 캐디백을 처음 메고 대회에 나선 이성관은 무언가가 가슴을 휘저었다.

매일 나섰던 일터였지만 오랜만에 밟아본 대회 필드는 그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고, 다시 골프채를 잡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꿈틀댔다. 조금 더 돈을 벌 목적으로 대회 캐디를 나섰는데 그의 인생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됐다.

이때부터 프로 테스트를 준비하기 시작한 이성관은 이듬해인 2016년 KPGA 프로(준회원) 자격을, 2017년에는 KPGA 투어프로(정회원) 자격을 땄다. 군산CC 캐디 일도 그만두고 강지만의 전담 캐디로 활동했다. 이성관을 유심히 지켜보던 강지만은 그의 성실함과 노력에 시간이 날 때마다 레슨을 해 줬다.

이성관(뒤쪽)이 KPGA 코리안투어 현대해상 최경주 인비테이셔널에서 최경주와 함께 그린을 살피고 있다. KPGA 제공

‘한국프로골프의 맏형’ 최경주(52)와의 인연도 강지만 덕분에 맺었다. 이성관은 “지만이 형님이 최경주 프로와 연습라운드 도중 ‘이 친구가 골프 선수로서 상당히 큰 재능을 갖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후 최경주 재단에 소속되면서 골프 선수의 꿈을 다시 이어갈 수 있었다”며 “어려운 집안 사정으로 인해 정식 레슨을 받기 어려웠지만 최경주 재단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2부 투어인 ‘스릭슨투어’에서 활동하던 이성관은 최경주가 국내 대회에 출전할 때면 어김없이 그의 백을 멨다. 이성관은 “최경주 프로의 플레이를 가까이서 보면서 경기 운영 방법, 벙커샷 등 많은 것을 배웠다”고 회상했다.

이렇게 실력을 쌓아가던 이성관은 지난해 1부 투어의 매운맛을 잠깐 봤다. 시드 대기자 자격으로 7차례 1부 투어 대회에 출전했는데 결과는 참혹했다. 그나마 ‘홈구장’이라고 할 수 있는 군산CC에서 열린 군산오픈의 18위를 제외하고는 모두 중위권 밖이었다. 3개 대회에서는 100위권 밖으로 밀렸다. 이성관은 “러프의 길이와 그린의 딱딱함 등이 2부 투어와 너무 달랐다”고 말했다.

맛보기 1부 투어 경험이 오히려 그에게는 좋은 예방주사가 됐다. 티샷 정확도를 높이고 단단하고 빠른 그린에 공을 세울 수 있는 연습을 차근차근 하면서 그는 결국 내년 시즌 시드권을 챙길 수 있었다.

늦은 나이에 1부 투어에 진출했지만 그의 내년 목표는 신인왕이다. 그는 “젊은 선수들과 경쟁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누가 뭐라 해도 신인왕과 시드 유지가 목표다”라며 “가능하다면 우승도 꼭 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골프를 시작하고 골프 선수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학생들에게 좋은 모범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목표도 밝혔다.

김기중 기자 k2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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