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파서’ 무인매장 턴 50대에…컵라면 내민 경찰
경찰, 생필품 전달…부산시는 “임대아파트 보증금 지원”
무인점포에서 생필품을 훔친 절도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이 훔친 컵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하는 딱한 사정을 확인하고 도움을 준 사연이 알려졌다.
22일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이달 초부터 1주일간 부산진구 범천동 무인점포에서 16차례에 걸쳐 절도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물품은 모두 라면과 쌀, 생수 등 생필품이었고 금액은 모두 합쳐 8만원 상당에 불과했다.
신고를 받고 수사에 나선 경찰은 범행 현장 주변에 있는 폐쇄회로(CC)TV 영상을 추적해 한 고시원 복도에서 생활하는 용의자 A씨(50대)를 검거했다. 조사 결과, A씨와 남편 B씨(60대)는 정신지체장애를 앓고 있어 돈벌이를 하지 못해 훔친 생필품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부부는 2020년 8월부터 낡은 여인숙에서 생활했다. 여인숙이 고시원으로 업종을 바꾸자 잠시 다른 곳에서 지내다 다시 고시원으로 돌아와 월 35만원에 방 2칸을 빌려 생활했다. 1.5평짜리 방이 좁아 한 명은 난방이 되지 않는 고시원 복도에 이불을 깔고 생활했다. 두 사람은 30여년 전 결혼했으나 친지 등 그들을 돌봐줄 사람은 없었다. 지병까지 있어 식사와 청소를 본인들이 해결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A씨를 절도 혐의로 입건, 송치하기로 했다. 그러나 딱한 사정을 알게 된 형사들은 컵라면과 마스크를 구입해 A씨 부부에게 전달했다. 이어 부산진구 범천동 주민센터에 열악한 환경에서 생활하는 A씨 부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통보했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는 “A씨 부부가 범죄에 내몰리지 않도록 행정기관에 연락해 도움을 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부산에서 10만원 이하 소액 절도 발생비율은 2019년 26.7%, 2020년 32.2%, 2021년 36.9% 등으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편 안타까운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자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날 오후 이선아 부산시 복지국장을 보내 A씨 등에게 생필품, 전기요, 이불, 라면 등을 긴급 지원했다.
부산시는 두 사람의 주거환경이 열악하다고 판단하고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아산복지재단 등 후원자를 통해 영구임대 아파트 보증금을 마련해 주기로 했다. 새 거처를 마련하기 전까지는 돌봄관리사를 보내 식사와 청소 등을 해주기로 했다. 또 고위험군 사례로 분류해 정신건강복지센터, 사회복지관 등 지역사회 기관과 연계해 지속적인 돌봄을 제공하기로 했다.
부산시 관계자는 “겨울철 혼자 사는 어르신, 노숙인 등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이 더욱더 촘촘하게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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