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혼 남편 장례조차 못 치르는 ‘법 밖의 가족’
증명 후 연고자로 인정받아도
사망진단서 발급 등은 ‘제약’
50대 후반 여성 A씨는 지난해 6월 20년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던 B씨와 사별했다. 사업 실패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B씨는 예전 가족과는 교류가 없었다. A씨는 장례를 치르기 위해 B씨의 옛 가족 주소지를 찾아가는 등 노력했지만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A씨는 장례식장에 자신이 직접 장례를 치르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법적 가족이 아니라 장례를 치를 수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B씨는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공영장례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월 요양병원에서 사망한 C씨(81)는 30년 넘게 다닌 교회를 통해 사회적 유대를 쌓았다. C씨에게는 딸이 한 명 있었으나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C씨가 사망한 후 교회의 전도사 등 지인들은 구청에 여러 차례 장례를 직접 치르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구청은 “친족인 딸에게 먼저 연락이 닿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안내했다.
‘법적 가족’의 테두리를 벗어난 이들에게는 애도할 권리조차 제한적으로 주어진다. 건강가정기본법 제3조에는 “‘가족’이라 함은 혼인·혈연·입양으로 이뤄진 사회의 기본단위를 말한다”고 돼 있다. 장사 등에 관한 법률(장사법) 제2조 16항은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을 갖는 연고자를 배우자, 자녀, 부모, 자녀 외의 직계비속, 부모 외의 직계 존속, 형제·자매, 사망 전 보호하고 있던 행정기관 또는 치료·보호기관의 장 순으로 규정하고 있다.
후순위로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도 적혀 있지만 장례를 치를 때 고려 대상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2018년에도 사실혼 배우자가 망자의 연고자로 인정받지 못해 무연고 장례를 치른 사건이 논란이 됐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2020년 ‘장사업무안내’ 지침을 정비했다. 지침에 ‘시신이나 유골을 사실상 관리하는 자’의 구체적 예시로 사실혼 배우자 등을 명기했다. 지속적 돌봄 관계, 경제적 부양 관계 등의 경우에도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장례 권한을 가질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이 같은 지침이 실제 장례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장례업 종사자나 변사를 관리하는 경찰, 지방자치단체 등에 따라 적용이 ‘복불복’인 상황이다. 무연고 사망으로 처리해야 했던 A씨 사례 역시 장례식장 직원이 바뀐 지침을 인지하지 못해 장례를 치르지 못한 경우다.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기관 ‘나눔과나눔’의 박진옥 상임이사는 “연고자로 확인되는 관계임에도 장례 관계자들에게서 ‘안 된다’는 말을 듣고 무연고 장례 절차를 밟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연고자로 인정받아 장례를 치를 수 있다 해도 사망신고 등의 절차에서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 의료법 제17조에 따르면 사망진단서를 교부할 수 있는 대상은 환자의 직계 존·비속, 배우자 또는 배우자의 직계 존·비속, 형제자매까지다.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틀에 법적, 문화적으로 의존해 왔다”며 “영국에서는 ‘내가 지정한 사람’이 장례를 치를 수 있다. 사회적 유대관계에 따라 장례 우선권을 가질 수 있도록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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