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 “수납원 본사 점거로 손해 막대”…법원 “배상책임 입증 안 돼”
한국도로공사가 본사 점거농성을 벌인 고속도로 요금수납 노동자들을 상대로 낸 억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요금수납 노동자들의 불법행위로 막대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도로공사 측 주장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대구지방법원 김천지원 하석찬 부장판사는 지난 21일 도로공사가 요금수납원 5명과 노조 간부 4명, 민주노총 등을 상대로 낸 1억3700여만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도공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소송비용도 부담하라고 했다.
요금수납원들은 원래 도공 정규직이었으나 2000년대 외주화가 시작되면서 모두 용역업체 소속 비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들은 직접고용을 촉구하며 2013년 소송을 냈다. 1·2심 모두 수납원들 손을 들어줬지만, 도공은 대법원 판결을 앞둔 2019년 7월 수납업무를 전담하는 자회사를 출범시켰다. 요금수납원 6500명 중 5000명은 자회사로 옮겼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진행 중인 1500명은 계약만료로 해고됐다.
대법원은 2019년 8월 일부 요금수납원들이 도공을 상대로 낸 첫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도공의 직접고용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확정했다. 그러나 도공은 확정판결을 받은 수납원 499명만 직접고용하겠다고 밝혔다. 자회사행을 택하지 않은 수납원별로 소송을 낸 시기가 달랐는데, 1·2심이 진행 중인 1000여명과는 소송을 이어간다는 방침이었다. 해고 수납원들은 대법원 판결에 따라 모든 해고 수납원들을 직접고용하라며 같은 해 9월 도공 본사 점거에 나섰다.
당시 경찰이 강제해산을 시도하자 대다수가 40~50대 여성인 노동자들은 “몸에 손대지 말라”며 상의를 벗고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수납원들과 도공 직원, 경찰이 충돌하며 기물들이 파손됐다. 도공은 같은 해 10월 1층 로비 회전문 파손 및 고장 4000만원, 2층 로비 회전문 파손 및 고장 3000만원, 옥외 잔디 망실 1500만원 등 추정 손해액을 모두 더해 총 1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청구액은 이후 1억3700여만원으로 늘었다.
법원은 “피고들이 공모해 공동으로 불법행위를 해 손해가 발생했다”는 도공 측 주장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고들의 어떤 공동행위로 시설물이 파손됐는지 관련성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시설물 파손을 점거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행위로 볼 수 없고, 피고인 노조 간부들이 소속 조합원에게 파손행위를 기획·지시·지도했는지에 대해 도공 측은 아무런 주장 및 입증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도공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물적 피해’로 기재된 시설물 파손이 점거행위가 발생하는 과정 및 점거 동안 발생한 것인지, 실제로 누구에 의해 발생한 것인지, 파손의 실제 행위자가 노조 소속 조합원들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며 “시설물 파손행위가 피고와 관련돼 있음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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