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소수자 담당부서 폐지에 기자들 반발…커지는 보수화 우려
어젠다기획부 폐지에 기자들 "특정이슈 한국일보에서 후퇴하는 것 아니냐"
"그간 성과 있었는데…현상유지 장담 못한다는 답 받았다"
계속되는 한국일보 보수화 우려, 뉴스룸국장 "전혀 무관, 정체성 지키겠다"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한국일보 인사개편에서 소수자·기후대응 이슈를 담당했던 어젠다기획부가 사라지면서 일부 구성원들이 반발하고 있다. 그간 뉴스룸국장이 젠더 등 특정 이슈를 차별한다는 내부 지적이 있었고 한국일보를 보유한 동화그룹이 사실상 정부 의사가 반영되는 YTN 인수에 나서면서 한국일보 '우경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어젠다기획부를 포함한 한국일보 기자 68명은 지난 21일 한국일보 사옥에 “어젠다부 폐지가 아닌 '어젠다 실종'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붙였다. 기자들은 성명서에서 “부서의 존속 자체가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기후위기라는 어젠다가 한국일보에서 후퇴할 위기”라고 했다.
어젠다기획부 소속 A기자는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부서가 없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는 이전부터 전해 들었는데 이번 조직개편에 없어진다는 소식은 이달 알았다”며 “보통 부서가 없어진다고 하면 성과라든지 전망이 없다는 문제가 있는데 어젠다기획부는 외부에서 상도 수상하고 이용자권익위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결국 앞으로 한국일보에서 소수자 이슈가 소외될 것이라는 예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만약 다른 부서에서 이러한 소수자나 기후대응 보도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다면 어젠다기획부가 없어져도 상관이 없을 것”이라며 “최근 국장과의 간담회에서 부서 존폐와 무관하게 소수자·기후대응 이슈를 양적 혹은 질적으로 현상유지 보장을 약속해줄 수 있겠냐고 요청했지만 장담하지 못한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한국일보 보수화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사례도 제시했다. 글로벌 RE100 대표가 윤석열 대통령에 한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목표 후퇴에 대해 항의하는 서한을 어젠다부가 단독 입수했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기사가 10면 사이드로 배치됐다는 것이다. 기자들은 성명에서 “부서에서 국장들에 수차례 요청한 끝에 기사 일부가 1면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제호 밑에 배치됐다. 네이버 채널에도 부서의 요청이 있고 나서야 1시간 가량 걸렸을 뿐”이라고 했다.
A기자는 “논조 변화 우려가 분명 있다. 국장 취임 후 올해 하반기 들어서 이런 기류를 확실하게 감지했다. 작년이나 올 상반기까지는 국장하고 설령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보도가 안 되거나 잘리는 일은 없었다. 하지만 하반기부터는 실제 보도량이 줄어들었다”며 “화물연대 노동자 인터뷰 기사도 국장이 온라인 분량까지 제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전에 느꼈던 거랑은 다르게 뭔가 축소하려 한다는 시그널을 느낀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일보를 보유한 동화그룹이 YTN 인수 의사를 전하면서 한국일보 논조 변화 우려는 수면 위로 떠올랐다. 공기업 지분 매각, 방송통신위원회 승인 등 YTN 인수에 사실상 정부 의사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최근 단행한 한국일보 사장·주필 인사 배경에도 YTN 인수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한국일보 측은 "원래 사장 임기가 3년"이라며 "새로운 연도의 원활한 준비를 위해 조금만 일찍 변경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한국일보 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와 12월 초에 진행한 취임 6개월 간담회에서 정진황 뉴스룸국장은 “국장 취임 후 정부 비판 기사가 줄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일보에서 기사를 의도적으로 깔아뭉개거나 부당한 기사 삭제 지시가 이뤄지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정진황 한국일보 뉴스룸국장은 22일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성명에 거론된 개별 사례의 옳고 그름에 대해서 일일이 해명하고 반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동의할 수 없는 불완전한 팩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큰 그림에서는 젊은 기자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 정제된 형태로 월요일에 서신을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젠다기획부가 성과를 내온 것은 사실이지만 더 발전적인 부분을 찾으려는 취지다. 특정한 어젠다에 인원을 집중하면서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번 변화를 줘보자는 것”이라며 “최근 한국일보 보수화 우려하고는 무관한 조직 개편이다. 지난 간담회에서 밝혔듯이 매체 정체성이 훼손되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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