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용 솔루션 한계 드러낸 MBC '결혼지옥' 논란
"오은영 박사는 남편 지적했으나 제작진이 편집"
앞서 시청자위원 통해 같은 지적 나왔던 '결혼지옥'
'방송용 솔루션' 내보내는 상담 프로 한계 드러나
[미디어오늘 정민경 기자]
상담 프로그램이 유행하면서 사생활이 불필요하게 공개되고 방송사가 이를 자극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담 프로그램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운 전문가의 솔루션을 제공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19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지옥'(이하 결혼지옥)이 불러온 논란은 전문가와 패널이 '진짜 문제'를 지적하지 않아 프로그램 효용에 의문을 불러왔다. 자극적 장면도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심지어 '결혼지옥'에 출연한 의붓아버지가 아동 성추행 의혹으로 '입건 전 조사'까지 받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담프로그램 한계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제 해결을 위해 '방송용 솔루션' 정도만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담프로그램 한계라는 지적이다.
19일 방송된 '결혼지옥'은 한 재혼 가정의 사연을 다뤘다. 아내는 재혼한 남편이 의붓딸을 학대했다고 신고했다. 방송에는 의붓딸과 장난치는 현 남편의 모습이 담겼는데 그는 아이가 거부를 하는데도 계속 끌어안고 '주사놀이'라면서 아이 엉덩이를 찔러댔다. 아이는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며 거부했다.
이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아동 성추행'이라며 방송에서 상담 받을 성격의 사연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회차와 관련해 2900여건의 민원이 접수됐다고 밝혔다.
시청자들은 프로그램에 전문가로 출연하는 오은영 박사와 패널들이 제대로 된 지적을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MBC 제작진도 비판을 피해가지 못했다. MBC 측은 논란이 커지자 해당 회차분 '다시보기'를 삭제했다.
MBC 결혼지옥 제작진은 21일 “해당 부부 딸을 걱정하셨을 모든 분에게 깊이 사과드린다”며 “논란 이후 곧바로 시청자 여러분에게 제작진 입장을 전달해 드렸어야 하나 출연자들의 방송 후 상황과 입장을 파악하고 관련 내용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소요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영상이 제작진 의도와 달리 재가공 및 유통돼 출연자 가족에게 상처가 되는 일을 막기 위해 영상을 먼저 수정할 수밖에 없었던 점, 널리 양해 부탁드린다”고 밝혔다.
MBC 제작진은 “해당 회차는 이혼이라는 아픔을 겪은 아내와 그 상처까지 사랑하기로 결심한 남편이 만나 아내의 전혼 자녀인 딸아이와 함께 가정을 이뤄나가는 과정에서 생긴 갈등의 원인을 찾고 그 해결책을 제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기획됐다”며 “아내는 남편을 아동 학대로 경찰에 신고한 상태였고 남편은 그런 아내의 행동에 수긍하지 못하고 있어 갈등의 골이 깊었고 이에 제작진은 해당 가정의 생활 모습을 면밀히 관찰하고 전문가 분석을 통해 '누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했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이 과정에서 부부 문제점 분석에만 집중한 나머지 시청자분들이 우려할 수 있는 장면이 방영되는 것을 세심히 살피지 못했다”며 “방송 후 이어진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을 접하며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해당 아동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많은 분께 심려를 끼친 점, 다시 한번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MBC 측은 “나아가 저희 제작진과 오은영 박사는 이 가정과 아동의 문제를 방송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지원하려 한다”며 “아동에게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오은영 박사와 함께 전문적인 검사와 치료적인 도움을 제공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MBC “오은영 박사, 남편 행동 지적했지만 제작진 불찰로 편집”
MBC 측은 오은영 박사가 남편 행동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는 비판에 대해 제작진 잘못이라는 입장을 내놨다.
MBC 제작진은 “오은영 박사는 약 5시간 동안 진행된 녹화 내내 남편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매우 단호하게 비판하고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며 “그러나 그 내용이 뒷부분에 집중되고 상당 부분 편집돼 오 박사 및 MC들이 남편 행동에 온정적인 듯한 인상을 드린 것 역시 제작진 불찰”이라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는 실제 녹화 현장에서의 분위기가 온전히 시청자 여러분께 전달될 수 있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결혼지옥'은 자발적으로 오은영 박사와 제작진을 찾아온 이혼 위기의 부부들에게 반전의 계기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좋은 의도만큼이나 제작 과정의 세심함과 결과물의 올바름 또한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어 “제작진을 믿고 일상의 관찰을 허용해 준 가족들의 신뢰를 무겁게 마음에 새겨 그분들의 실질적 행복에 기여하고 모든 시청자가 수긍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집중하겠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오늘은 MBC 측에 오은영 박사가 남편 행동을 구체적으로 지적한 부분을 공개할 계획이 있느냐 물었으나 MBC 관계자는 “21일에 낸 입장 외에는 추가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부터 시청자위원 통해 똑같은 지적 나왔던 '결혼지옥'
결혼지옥이 오은영 박사의 개인적 의견에 지나치게 의존하며 자극적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는 지적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프로그램 초반부터 나왔던 지적이다.
지난 6월 MBC 시청자위원회에서 시청자위원들은 “상담이 오은영 박사의 개인적 결론과 판단이라는 한계성이 있다”, “오은영 박사도 신이 아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도 듣고 분석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를 파악하는 과정은 중요하지만 갈등 수준이 심각한 만큼 자극적 내용에 초점을 맞췄다는 인상을 준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관련 기사: “오은영도 신은 아냐” “또 오은영?” MBC 솔루션 프로그램 향한 비평]
이에 MBC 측은 방송에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닌, 지속적 상담을 지원하고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유해진 MBC시사교양본부장은 당시 회의에서 야외 촬영 이후 스튜디오 녹화 전에 '오은영 클리닉'에서 심리 및 문장완성 검사 등을 통해 부부 문제 데이터를 작성하며, 정보와 기본 데이터에 기반해 오은영 박사가 스튜디오 녹화 전 VCR 내용을 분석하고 상담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문제 해결위해 '방송용 솔루션' 내보내는 상담프로 한계
사연 수위가 점점 높아지면서 전문가 상담이 다뤄야 할 문제는 점차 심각해지는데, 정규 방송에서 근원적 문제까진 다룰 수 없다는 게 한계다. 결혼지옥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난 11월부터 비혼모 단체는 MBN '고딩엄빠'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고딩엄빠에 나오는 많은 커플이 미성년 여성과 성년 남성 결합인 경우가 많고 여성이 남성에게 폭력을 당하는 장면까지 나오는데 상담 프로그램인 이상 결국 커플의 '재결합'을 위한 솔루션을 내놓는 포맷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비혼모들 “예능으로 포장한 가십거리” '고딩엄빠' 폐지 요구]
고딩엄빠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변화된미래를만드는미혼모협회 인트리'의 원양해 모니터링단원은 “어른으로서 미성년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뒤로 하고 아이들의 상처를 낱낱이 드러내고 있다”며 “청소년의 성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아니라 기존 고정관념을 단단한 지지대 삼아 자극만을 추구해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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