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강국’ 몰린 동아시아, 전자 불황에 직격탄

안상현 기자 2022. 12. 2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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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전자 수출액 65%
한·중·일·대만 등이 차지

올해 전 세계 전자제품 시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최악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 우려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자 상대적으로 값비싼 전자제품 수요부터 급감한 탓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카운터포인트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출하량은 3억100만대로 1년 전보다 12% 감소했다. 3분기 기준으로 8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노트북을 포함한 개인용 컴퓨터(PC) 시장은 더 심각했다. 시장조사기관 가트너는 3분기 전 세계 PC 출하량을 전년 동기 대비 19.5% 줄어든 6800만대로 집계하면서 “PC 시장이 20년 만에 가장 가파른 하락 폭을 보였다”고 밝혔다.

직격탄을 맞은 것은 동아시아 국가들이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대만, 일본, 싱가포르 등 전자 산업 수출 강국이 대거 몰려 있는 데다 서로 공급망을 통해 밀접하게 얽혀있기 때문이다. 국제무역센터(ITC) 통계에 따르면 작년 전자제품 수출액 상위 10국 중 7개 나라가 중국·대만·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이고, 전 세계 전자제품 수출액(3조3943억9910만달러)의 65.8%가 동아시아에 몰려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전 세계 전자제품 불황이 동아시아를 벽으로 몰아넣고 있다”고 평가했다.

◇불황 직격탄 맞은 동아시아

세계 1위 전자제품 수출국인 중국은 올해 하반기 들어 수출 실적이 눈에 띄게 악화 중이다. 예년엔 쇼핑 시즌을 맞아 연말로 갈수록 수출이 늘어났던 것과 정반대다. 중국 수출은 지난 10월 전년 대비 0.3% 감소하며 팬데믹 이후 처음 마이너스로 전환한 데 이어 11월에는 감소 폭이 8.7%로 확대됐다. 자동차 등 기계류 수출은 늘어났지만 가전제품과 자동데이터처리장치, 음향영상설비, 집적회로 등 전자제품 수출이 크게 부진한 탓이다.

한국도 비슷한 사정이다. 반도체·컴퓨터·휴대폰 등 전자산업(ICT)이 전체 수출의 32%를 차지하는 한국의 ICT 수출액은 지난 9월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지난달에는 전년 대비 22.5% 감소한 166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방사업 수요 위축 및 IT 기기 생산 축소 등으로 주요 지역인 중국·베트남·미국·유럽연합·일본 수출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전자제품 판매 부진으로 3분기 재고가 전년 동기 대비 무려 20조원 증가한 삼성전자(DX부문)는 지난 7일 사내 인트라넷 공지로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며 허리띠 졸라매기에 나섰다.

총수출의 40% 이상이 전자제품인 대만 역시 타격이 크다. 대만의 11월 전자제품 총수출은 전년 대비 4.9% 감소한 151억5000만달러로 3년 반 만에 처음 감소했다. 세계 최대 전자제품 하청 생산 업체인 대만 폭스콘의 경우 11월 매출이 5510억대만달러(약 23조5100억원)로 전월보다 29%, 전년 대비 11% 줄었다. 폭스콘의 11월 매출이 줄어든 건 12년 만에 처음이다. 대만 재무부는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미·중 기술 전쟁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앞으로의 위험에 포함돼 있다”며 이달 수출도 전년 대비 8~12%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반도체까지 무너져... 내년에 더 나쁘다

전자제품 시장 불황은 핵심 부품인 반도체로 옮아붙고 있다. 지난 11월 우리나라 반도체 수출액은 84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29.8% 줄어들며 전체 수출 실적 부진을 견인했다. 장상식 국제무역통상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사전 주문 제작하는 시스템 반도체와 달리 메모리 반도체는 범용 부품이다 보니 경기에 민감하다”며 “아직 우리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고 중국 같은 수출국 경기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불황 무풍지대로 보였던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산업에도 본격적으로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지난해 받아놓은 선주문 일감이 워낙 많았던 덕에 3분기까지만 해도 파운드리 업체들은 안정적인 매출을 보였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는 3분기 매출이 전분기 대비 11.1% 늘어났고, UMC와 글로벌 파운드리스, SMIC 등 3~5위 파운드리 기업들의 매출도 전분기 대비 증가했다. 2위 업체인 삼성전자 파운드리는 원화 약세 영향으로 매출이 감소했지만, 그 폭은 0.1%에 그쳤다.

그러나 4분기 들어 전방 사업 타격으로 반도체 가격이 폭락하자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들의 공정 주문 취소가 잇따르고 있다. 대만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는 파운드리 상위 10개 업체의 팹(반도체 공장) 평균 가동률이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100%에 달했지만, 지난 3분기 80% 중반으로 줄었고 4분기에는 70%대로 더욱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최대 파운드리 기업인 SMIC는 올 4분기 매출이 전분기 대비 15%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삼성전자와 함께 무한 투자 경쟁을 벌여온 TSMC는 업황 악화에 대비해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당초 400억달러에서 360억달러로 10% 축소했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이 아직 끝나지 않은 데다 내년 경기 둔화가 기정사실인 만큼 글로벌 전자제품 시장 불황은 내년에 한층 더 혹독해질 전망이다. 전 세계 산업 활동의 전조로 여겨지는 일본의 공작 기계 주문도 지난 10월 실적이 전년 동기 대비 5.5% 하락했다. 투자은행 JP모건 체이스의 고쿨 하리하란 이사는 “전자제품 수요 감소로 인해 2020년부터 이어져 온 반도체 산업 성장이 끝날 것”이라며 2021년 20~30%, 올해 15% 성장한 반도체 산업이 내년에는 성장 대신 후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컨설팅 기업인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전자제품 수출 부진으로 내년 동아시아 지역 상품 수출이 올해보다 약 4%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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