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햇발] 전장연 21년 외침과 ‘립서비스’ 정치
[아침햇발][장애인 기본권 보장]
최혜정 | 논설위원
일시 멈추긴 했지만 1년 넘게 이어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선전전은 출근길 대란의 ‘상징’이다. 휠체어를 탄 시위대가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 열차 운행은 연쇄적으로 지연되고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에는 “전장연의 불법 시위” 탓이라는 방송이 울려 퍼진다. 시위대를 향한 거친 항의와 열차 내 소란, 연착에 따른 불편 호소 등이 끊이지 않자, 서울시는 지난 14일 시위 장소인 삼각지역을 무정차 운행하고 대규모 민사소송을 예고했다. 전장연을 향한 비판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는데, 막상 이들이 목에 건 팻말 속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살자’는 호소는 제대로 주목되지 않는다.
전장연의 핵심 요구는 장애인권리예산 확보다. 이들이 말하는 ‘권리’란 별다르지 않다. 필요할 때 대중교통 수단을 타고 이동할 수 있는 것, 시설이 아닌 집에서 생활하는 것,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는 것, 의무교육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교육권 보장 등이다. 누군가에게 당연한 일상이 이들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전장연은 이를 위해 △사지마비·시각장애 등 혼자 생활하기 힘든 중증장애인의 활동지원 서비스 확대 △장애인 콜택시(특별교통수단) 국비 지원 △장애인 자립지원 시범사업 △장애인 평생교육 진흥센터 운영 등을 요구했다. 기획재정부가 애초 편성한 예산(2조2600억원)은 전장연의 요구안(3조7200억원)보다 약 1조5천억원 적었는데, 여야는 예산 심의를 통해 정부안에서 6500억원 늘리기로 했다. 22일 극적으로 여야가 예산안 통과에 합의하며 이젠 기재부의 동의 여부만 남았다. 전장연은 합의된 예산만이라도 통과되면 지하철 시위를 멈추겠다며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
여당 일각에선 이 증액안을 “시민을 볼모 삼아 수천억원 혈세를 좌지우지했다는 선례”(김상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라고 원색 비난했다. ‘민폐 시위’에 강경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도 끊이지 않는다. 여기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식사도 화장실도 해결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들이 하루 평균 5시간 이하의 보조만 받고 있다는 사실, 애초 정부가 장애인 콜택시 1대당 운전원 인건비를 연 1900만원이라는 ‘비현실적’ 임금으로 책정한 문제, 많은 장애인들이 시설에 수십년 살면서 초중고 의무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실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특히 이동권은 장애인들의 인권과 직결된다. 이동할 수 없으면 직장이나 학교에 갈 수도, 병원에 다닐 수도 없다. 이동권이 노동권이고 생명권이며 교육권이다. 하지만 2020년 9월 현재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30%대에 머물고, 그나마 시외·고속버스는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에서도 제외됐다. 2019년 시범사업으로 시작된 휠체어 탑승 가능 고속버스 4개 노선 중 현재 유지되고 있는 노선은 서울-당진 구간뿐이다. 지하철 승강기는 교통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배치 탓에 일부 역에선 장애인 등 교통약자의 환승거리가 비장애인보다 5배 가까이 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장애인 콜택시는 이용요금, 시간, 운행 범위 등이 지방자치단체마다 제각각이다. 이용하려 해도 대기시간을 가늠하기 어려워 접근성이 떨어진다.
전장연의 지하철 선전전은 이런 현실을 동료 시민에게 직접 알린다는 취지로 진행되고 있다. 여기엔 겉으로는 “죄송합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되뇌지만, 결국은 꿈쩍하지 않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실망이 깔려 있다. 실제 법과 제도, 예산으로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와 국회는 ‘무관심’하거나 장애인-비장애인의 갈등만 부추긴다. 지난 21년간 여러 차례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돈줄을 쥔 기획재정부는 정부 성향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인색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의 전장연 혐오 발언이 문제됐던 올 4월,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등 4개 장애인권법안을 중점 법안으로 처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뿐이었다. 심지어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은 여야 합의 법안인데도 뒷전으로 밀린 채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2001년 1월 장애인 부부가 오이도역 수직 리프트에서 추락한 참사 이후, 장애인들은 쇠사슬을 감은 채 선로에 드러눕고 버스 밑에 기어들어가며 ‘시민권’ 쟁취 투쟁을 벌여왔다. 이들의 권익이 조금이라도 향상됐다면 이는 장애인들의 목숨 건 투쟁의 성과로 봐야 한다. 보기 싫고 불편하다고 ‘무정차’로 외면할 것이 아니라, ‘이동하고 교육받고 노동하고 지역사회 함께살자’는 당연한 요구에 이제는 정부와 국회가 답해야 한다.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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