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권일의 다이내믹 도넛] 사회를 뒤덮은 소비자 프레임
박권일 | 사회비평가·<한국의 능력주의> 저자
지난가을, 코비드19로 중단됐던 대학 축제들이 열리면서 캠퍼스가 활기로 가득 찼다. 그 무렵 강연을 갔다가 서로 다른 대학 관계자들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축제 공연장에 대형 장벽이 세워졌는데, 이게 학생회비 납부자와 미납자를 구분해서 미납한 학생들이 공연을 못 보게 하는 용도라는 것이다. 장벽을 세운 주체는 학교본부가 아니라 총학생회였다.
검색해보니 실제 여러 대학에서 일어난 일이고 기사화된 적도 있었다. 이 에피소드를 강연 자리에서 언급하며 의견을 물어봤다. 많은 분이 충격에 사로잡혔는데 특히 진보적 성향의 중장년층에서 반응이 세게 나왔다. 그들은 “진짜 대학은 끝났구나” “절망스럽다” 한탄했다. 반면, 적지 않은 청년 세대는 “돈을 안 낸 사람이 낸 사람과 똑같이 공연을 보면 그거야말로 불공정이고 무임승차”라고 했다.
이건 ‘순수했던 대학이 상업화되었다’는 한탄이나 불공정 담론으로 끝내버릴 이야기는 아니다. 1980년대든 1990년대든 대학이 ‘순수한 학문의 공간’이거나 ‘진보와 해방의 자치구’였던 적은 없다. 대학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와 자본이 통제하던 공간이다. 다만 소수의 학생이 맹렬히 저항했고 스스로의 힘으로 대학 안에 조금 자율적인 공간을 겨우 만들어낼 수 있었을 뿐이다. 과거의 대학교는 순수했다기보다 이질적 가치들이 충돌하며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적어도 학생운동의 자장 안에서는 수익성이나 소비자 권리보다 공공성과 연대의 가치가 중시됐다.
예전에 대학 축제는 ‘대동제’라 불리기도 했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행사였다. 다른 학교 학생들만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까지 참여하고 즐길 수 있는 장이었다. 한편 지금은 축제를 포함해 캠퍼스 전체가 상업화됐을 뿐 아니라, 학생들 역시 학교 구성원이기보다 (학교 명성이나 시설 등의) 구매자로서 권리를 누릴 수 있으면 만족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럼 과거의 대학이 더 나은 것일까? 적어도 지금보다 예전 대학생들이 공공 영역으로서 대학의 의미를 더 깊이 인식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런 과거를 본보기로 삼기는 어렵다. 과거 대학생 운동은 자본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관철되지 못하게 하는 방어선이긴 했으나, 그 내부는 권위주의, 엘리트주의, 군사주의, 가부장주의에 찌들어 있었다. 1984년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사건’처럼, 숭고한 가치를 앞세운 확증편향은 종종 타인을 향한 끔찍한 폭력으로 발현됐다.
적어도 개인들 사이의 폭력에 요즘의 우리는 꽤 엄격해졌다. 이는 뚜렷한 사회 진보다. 반면 자본주의의 구조적 폭력에는 더 순종적이게 됐다. 대학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가 그렇게 변했다. 유권자는 노동자나 시민보다 정치 소비자 혹은 팬덤으로 분석되며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노동자 파업 보도를 봐도 온통 소비자의 불편을 얘기할 뿐 좀처럼 노동자의 삶과 생산 현장의 문제를 조명하지 않는다.
미국의 커뮤니케이션학자인 크리스토퍼 마틴은 1990년대 이후의 대형 파업이나 시위 보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프레임이 ‘소비자 지향’이라고 설명한다. 절대다수의 언론이 노사관계나 생산 현장의 문제를 ‘소비자의 관점’에서 다룸으로써 공통의 내러티브를 생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틴은 언론의 이러한 프레임이 노동자, 시민, 마을 주민이자 연방의 구성원으로서 개인 정체성을 소비자로 환원함으로써, 상품이 실제로 생산되는 작업장이나 공적 시민의 관심사는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미국도 예전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1940년대 문헌을 보면 미국 노동자의 근황이 신문 머리기사로 오르는 일이 흔했다. 그러나 미국 언론이 점점 노동계급 독자들을 자신의 비즈니스 모델에 쓸모가 없는 집단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노동 역시 “더는 뉴스 가치가 없어지게”(no longer newsworthy) 됐다. 마틴에 따르면, 미국 노동계급 상당수는 오늘날 트럼프의 열광적 지지자가 되거나 극우 대안 미디어의 독자가 됐다.
한국 언론도 미국 언론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의 주류 매체들은 소비자와 투자자에게 공손히 귀를 기울이지만, 노동자와 시민은 지워버리거나 사회 불만 세력으로 묘사한다. 언론에 비친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라기보다 종종 거대한 공동구매 장터처럼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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