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기자단’에 있다는 것 [슬기로운 기자생활]
[슬기로운 기자생활]
전광준 | 법조팀 기자
출입기자가 아니라 서러웠다. 2017년 ‘벚꽃 대선’ 당시 한 시사주간지 인턴기자로 일했다. 숨 가쁘게 대선주자들을 쫓아다니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런데 국회 상시 출입기자가 아니라 그런지 따로 각 정당의 대선주자 일정 공지를 받을 수 없었다. 일정을 모르니 취재도 어려웠다. 정당에 항의하니 “누리집에 올라오는 보도자료를 참고하라”는 답을 받았다. ‘내적 욕설’을 꾹 누르고 선배 기자들을 통해 건너 건너 일정을 공유받을 수밖에 없었다.
5년 전 일이 떠오른 이유가 있다. 지난 14일 법조기자단이 아닌 두 언론사가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1층 기자실에서 한 ‘기자단 가입’ 소견 발표 때문이다. 마감하느라 정신이 없어 ‘기자단에 함께하고 싶다’는 대략적 내용만 기억난다. 소견 발표 전에 두 매체 기자가 따로 연락해 오기도 했다. 막내급 기자에게 따로 연락했을 정도니 법조기자단 대부분에게 연락이 갔을 테다.
42개 언론사 기자 259명(12월 기준)으로 이뤄진 법조기자단은 서울 서초동에 있는 주요 법원과 검찰청을 담당한다. 가입 조건은 까다롭다. 6개월 동안 최소 3명으로 법조팀을 꾸려 법조 기사를 써야 가입 자격이 생긴다. 여기에 실제 가입하려면 각각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서울중앙지법 기자단 3분의 2 이상 출석과 과반수 찬성을 받아야 하는데, 법조팀장들이 주로 있는 대법원 기자단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문제는 기자단 투표와 팀장들의 거부권 행사에는 선호 여부만이 있을 뿐 기준은 없다는 점이다. 14일 두 매체의 가입 시도는 각 기자단의 투표 정족수 미달로 실패했다. 대법원 기자단까지 올라가지도 못했다.
법원과 검찰청은 기자단을 중심으로 언론에 취재 편의를 제공하는데, 법조기자단의 폐쇄성은 유명하다. 비출입기자가 취재에 차별을 받는 경우도 많다. 지난 3월 실손보험금 관련 대법원 공개변론 때, 테이블 위에 노트북을 놓고 쓸 수 있는 대법정 자리가 한정돼 대법원은 기자들에게 선착순으로 자리를 배정하겠다고 밝혔다. 대법원 직원은 줄 서 있던 기자들 명함을 확인하고 비출입사 기자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대법정에서 노트북으로 변론 내용을 받아 치는데, 먼저 와서 줄을 섰던 비출입사 기자들이 일반 방청석에 앉아 휴대전화로 내용을 받아 치는 모습을 보니 민망했다. 출입사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단이 사실상 취재를 방해할 때도 있다. 지난 4월 대검 기자실(법조기자단 소속만 출입할 수 있다)에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김건희를 구속하라”는 펼침막을 든 한국대학생진보연합 회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이 외치는 구호를 열심히 받아 쳤다. 그런데 기자단 관계자가 기자실 밖으로 나와달라고 수차례 연락해 왔다. 기자들이 모두 빠져야 방호원들이 ‘상황 정리’에 나설 수 있다는 논리였다. 사회부장에게 상황을 보고하니 자리를 지키고 취재를 이어가라는 지시가 돌아왔다. 결국 시위하는 사람 다섯명에 기자 한명만 기자실에 남아 취재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했다. 기사 가치를 떠나, 그 자리에 없었다면 어떤 목소리는 온전히 나가지 못했겠구나 싶었다.
기자단이 뭉치면 거대 국가기관을 상대로 발언권이 생기기도 한다. 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측근이라는 정진상씨 구속 전 피의자심문이 있을 때 변호인단이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밝혔다. 검찰은 불허한다며 청사 현관문을 폐쇄했다. 이에 지검 기자단은 “기자실은 원칙적으로 열린 공간이다. 취재 및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이에 검찰이 체면을 구겼다는 평이 많았다.
정답은 모르겠다. 법조기자단의 병폐도 많지만 순기능도 있으니 말이다. 일부 주장대로 기자단을 덜컥 없애면, 국가기관만 내심 반기겠다는 생각도 없지 않다. 다만 기자단 가입이라는 높은 장벽이 다른 비출입사의 취재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은 문제로 보인다. 기관들이 출입기자가 아니라며 취재에 제대로 응하지 않는 일도 어떤 식으로든 해결돼야 하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에 비출입사 기자들에게 브리핑 ‘워딩’이라도 흔쾌히 공유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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