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석] 귀를 채워주는 흑색 건반의 `耳色` 선율
콩쿠르는 커리어 보단 실력 키우는 기회의 장
많은 연주 속 자신만의 색깔 녹인 곡으로 완성
케이트 리우, 에릭 루와 2016년 쇼팽곡 합주… 응원에 감동
콩쿠르는 준비 과정 속 나를 완성시키는 대회
손 부상 1년 휴식기, 작곡 세계 탐구했던 기회
월간객석과 함께하는 문화마당 신세대 피아니스트 에릭 루 & 케이트 리우
해마다 각지에서 콩쿠르 우승자들이 탄생한다. 그러나 쏟아지는 연주회 일정과 뜨거운 관심은 잠깐이다. 이 '반짝'거리는 시간이 지나면 콩쿠르 스타들은 진정한 심판대 위에 선다. 과연 이들의 음악을 다시 듣고자 하는 관객이 남아 있을 것인가.
21세기에 들어서며 쇼팽 콩쿠르에서 등장한 첫 스타는 윤디 리(2000년)였다. 스타성을 가진 중국 피아니스트로 급부상한 그는 콩쿠르 수상 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2015년 내한 공연에서 불성실한 태도로 팬들에게 실망감을 주더니, 최근엔 성매매 혐의로 공안에 붙잡혀 구류 처분받았다는 소식까지 남겨 그 행보에 아쉬움이 남는다. 윤디 리를 이은 우승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와의 듀오 연주로 친숙한 라파우 블레하츠(2005년)다. 폴란드 국적의 곱슬머리 우승자는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을 떠올리게 하며, 정통 쇼팽 스페셜리스트의 이미지로 인식됐다. 2010년의 우승자는 모스크바 출신의 율리아나 아브제예바.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후 45년 만에 우승한 여성 피아니스트로 주목 받았지만 현재는 같은 해 3위를 차지한 다닐 트리포노프의 활동이 더욱 활발하다.
그리고 이어진 2015년의 쇼팽 콩쿠르는 우리 모두에게 특별한 기억이다. 온라인 중계를 통해 새벽까지 실시간으로 이어진 관객들의 응원, 그리고 조성진이라는 슈퍼스타의 탄생이 음악계에 잊지 못할 경험이 됐다. 이후 그는 DG와의 계약으로 쇼팽·모차르트·드뷔시 작품으로 음반을 선보였고,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듀오, 사이먼 래틀/베를린 필 등과 협업했다. 조성진이 불러일으킨 국내 '쇼팽 콩쿠르 붐'은 비단 연주자 한 사람에게 국한되지 않았다. 당시 2위를 차지한 샤를 리샤르 아믈랭, 3위인 케이트 리우, 4위인 에릭 루까지. 한국 관객은 결선에 오른 모든 연주자의 무대를 함께 즐겼다. 다음 해에 이어진 쇼팽 콩쿠르 입상자 투어에 대한 관심도 연달아 뜨거웠다. 이들 모두 그 후로도 한국에서 공연하고 있다.
쇼팽 콩쿠르 이후 7년, 당시 함께 한국 관객의 관심을 받았던 두 젊은 피아니스트가 12월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두 사람은 "그 어느 곳보다 따뜻하고 열정적인 관객이 있는 곳"으로 이곳을 기억하고 있다. 이들의 답변으로 완성된 이야기는 특별한 2015년에 대한 추억담이자, 콩쿠르의 스포트라이트를 지나 계속해서 성장해나가고 있는 젊은 연주자들의 현실적인 도전기다.
-쇼팽 콩쿠르 이후 두 사람은 2016년에 처음 한국 관객을 마주했는데요. 당시의 기억은 어땠나요?
△에릭 루 "한국에 대한 첫 기억은 정말 훌륭했습니다. 그때 느낀 청중의 성원은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케이트 리우 "예술의전당에서 입상자 여섯 명이 함께 무대를 꾸렸었죠. 관객이 정말 열정적이게, 그리고 따뜻한 호의로 맞아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에릭 루 "저는 2018년 리즈 콩쿠르 우승 후 2019년 한국에서 전국 투어 독주회도 했었는데요, 한국 청중이 특별하다는 것을 그때 확실히 알았죠.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것은 물론이고, 음악적 지식도 풍부하더군요. 그렇게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 악보를 가져온 것을 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연주자로서 무척 행복했습니다."
-두 사람이 같은 달에 한국에 온다니! 즐거운 우연이네요.
△케이트 리우 "한국에 가면 에릭 루의 공연도 보러 갈 예정이예요. 에릭은 정말 특별하고 진실한 연주자에요. 제가 들어본 연주자 중 가장 초월적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습니다."
△에릭 루 "케이트의 예술성도 그렇습니다. 그 독특한 내면적 표현은 제가 만난 연주 중 가장 특별했죠."
-2015년 콩쿠르 얘기를 조금 해볼까요.
△케이트 리우 "결선 무대가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쇼팽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했었죠. 우승자를 발표하는 그 순간까지, 제 인생에서 가장 떨렸던 순간이었어요."
△에릭 루 "저는 당시 열일곱 살이었고, 큰 콩쿠르에 도전하기엔 많이 어렸죠. 음악계나 커리어의 현실이 뭔지 몰랐고, 단지 도전해서 멋지게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기억나는 순간이 있다면 제가 2차 예선에서 컨디션이 망가졌었다는 것. 그 라운드를 무사히 연주하고 살아남은 게 저는 거의 기적이었다고 생각해요."
-만약 그때의 나에게 조언할 수 있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케이트 리우 "할 수 있는 한의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하고 싶어요."
-젊은 연주자에게 콩쿠르는 숙제이자 기회죠.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였나요?
△에릭 루 "콩쿠르에 참가하고 우승하는 것은, 예술가의 내면적 성장과는 관련이 없어요. 삶이 계속되면 음악적 성장도 계속됩니다. 일직선의 상승은 아니지만 꾸준히 연습하고, 음악을 무대에서 경험하고, 또 그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죠"
△케이트 리우 "콩쿠르는 경력을 시작하는 예술가들에게 자신을 알릴 기회가 되긴 하지만,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긴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준비하는 과정에서 결과를 걱정하기보단 자기 음악에 충실히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죠."
-콩쿠르 이후, 음악적 행보를 계속 이어 나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케이트는 콩쿠르를 마치고 손 부상을 겪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케이트 리우 "1년간 손 부상으로 치료를 위해 휴식을 취해야 했죠. 하지만 노력 끝에 지금은 회복됐다고 말할 수 있어 기쁘네요. 저는 여전히새로운 작품을 연구하고 작곡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기대됩니다. 물론 더 많은 공연의 기회를 가지며 커리어의 확장 방법을 함께 찾아 나가면서요."
△에릭 루 "물론 현실적으로 큰 도전이죠. 제 경우에는 많은 연주 일정 속에서도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연주하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며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경험을 통해 레퍼토리 개발에 걸리는 시간을 가늠하고, 이를 무대 위에 올리는 데에 익숙해져 가고 있습니다."
글 월간객석 허서현 기자·사진= 마스트미디어·스톰프뮤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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