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홀릭’ 대기업 부장이 ‘문화센터 고인물’을 만났을 때···‘도토리 문화센터’ 난다 작가[인터뷰]
일 밖에 몰랐던 중년 여성이 취미에 빠져든 과정
난다 작가 첫 장편 스토리 만화…쫄깃한 서사와 서스펜스
웹툰은 젊은 세대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10~30대가 주 독자층이고, 주인공도 대부분 10~20대다. 10대들의 학교 생활, 2030의 로맨스를 다룬 만화 가운데서 유유히 중년 여성의 취미와 삶을 이야기하는 웹툰이 있다. ‘이용 회원 평균 연령 70대’의 지역문화센터를 배경으로 한 카카오웹툰 <도토리 문화센터>다. 생활 만화 <어쿠스틱 라이프>로 유명한 난다 작가의 첫 장편 스토리 만화다.
다람시 토리동에는 도토리문화센터가 있다. 대기업 유니버스그룹은 곧 고속철도와 터널 등이 건설되는, 대단지 아파트로 둘러싸인 이곳에 신개념 쇼핑센터 ‘더 유레카’를 지으려 한다. 좋은 조건에 사겠다는 유니버스그룹의 제안에 필지 소유자 대부분은 땅을 팔았지만, 4명은 팔지 않았다. 사군자 교실 ‘고인물’이자 여성병원 원장인 정중순(68), 수예교실 강사 겸 실버태권도 교실·시 쓰기 교실·은빛 디지털 배움터·포크 댄스 교실 수강생이자 문화센터 자치회장인 지옥길(76), 갱년기 극복교실 수강생 모미란(50), 오래전 시 쓰기를 수강한 송수지(59)가 바로 그들이다. 일밖에 모르고 취미라곤 없는 고두리 부장은 유니버스그룹 차기 본부장이 되기 위해 매도 계약을 성사시켜야 한다. 그는 정체를 숨기고 도토리 문화센터에 침투한다. 웹툰을 연재 중인 난다 작가를 최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났다.
“중년 여성 이야기가 심적으로 가깝게 느껴져요. 제가 원래 그 연령대를 좋아하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계속 주변에서 만나기도 했고요. 그런 것에 비해 웹툰이나 이야기의 주인공으로는 많이 다뤄지지 않은 것 같아요. 10~20대의 욕구나 감정은 잘 다루는 창작자가 많아요. 그런데 중년 여성은 누군가를 보살피는 역할로 등장하거나, 깊게 다루는 경우에도 보통 자식과의 관계 이야기인 경향이 있어요. 이들이 일상적으로 뭘 원하는지, 친구 때문에 짜증나고 힘들고 그런 이야기를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중년들이 젊은 세대와 똑같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첫 스토리 웹툰에서 중년 여성을 다룬 이유를 물었을 때 난다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고두리가 처음 접근하는 정중순은 이전에 난다 작가가 기획했던 판타지 만화 캐릭터에서 설정을 따왔다. 정중순의 모태가 된 캐릭터는 1950~60년대생 여성으로, 딸이라는 이유로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가 도깨비 같은 존재를 만나는 인물이었다. 집에서 차별받은 한을 갖고 있다는 기존 설정에 작가가 문화센터 사군자 교실에서 실제로 만난 회원의 이미지를 더했다. 한 여성 회원이 간식 시간에 유일하게 혼자 참여하지 않고 그림만 그리는 것을 보고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상상했다고 한다.
호기심 많고,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도 말을 거는 극외향형 인간 남세미 캐릭터도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난다 작가는 “문화센터를 지나가다 모르는 분을 만났는데, 굉장히 과장해서 말씀을 하셨다”며 “어떤 집을 갔는데 천장이 되게 높았다는 이야기를 ‘천장 높이가 3m는 되겠더라’ 이렇게 말하시는데, 너무 재밌었다. 그분의 성격을 따왔다”고 했다. 남세미는 작가의 ‘최애’ 캐릭터이기도 하다. 난다 작가는 “자기 나름대로 엄청난 전략을 짜지만 실은 하찮고 귀여운 캐릭터다. 귀여운데 또 음침한 면도 있다”며 “그가 음모를 꾸밀 때의 얼굴을 가장 좋아한다”고 했다.
남편을 거스르기 어려워하는 가정주부 모미란에 대해서 난다 작가는 “저희 엄마 세대가 그렇게 살아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금 수동적인 캐릭터도 만들었다. 저희 엄마는 장사를 하셨는데, 장사 자체도 사회 활동이긴 하지만 그 영역을 넘어 차를 타고 멀리 간다든지 이런 일이 거의 없이 사셨다. 이런 여성이, 특히 주부의 경우 상당히 많은 것 같다”며 “그걸 깨는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저도 저희 엄마가 뭔가 좀 파격적으로,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다 ‘쌩까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다소 답답해 보이던 모미란 캐릭터가 아이돌 ‘오리진’에게 ‘치여’(덕질 대상에 저항하지 못하고 빠져드는 순간을 표현하는 말. 교통사고를 비롯한 ‘덕통사고’와 같은 맥락이다) 콘서트장에서 처음으로 ‘큰소리를 내는’ 장면은 모미란 편의 백미다. 오리진과 고 부장을 만나며 모미란은 꿈과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간다.
난다 작가는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그들이 ‘귀엽지도, 인자하지도, 딱히 지혜롭지도’ 않아진 배경을 이야기한다. 문화센터 안팎의 중년 여성들은 종종 ‘억센 사람’ 혹은 ‘텃세 부리는 사람’들로 이해되곤 한다. 난다 작가는 파란만장했을 그들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그가 만화에 펼쳐놓은 상상력은 독자의 현실로도 번진다. 한 독자는 “문화센터 자리 꽉 잡고 계시는 어머님들 볼 때마다 좀 너무 억세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헤아려 보면 그만큼 당신의 삶에 기쁨을 주는 것들이기에 절박하게 붙잡고 싶어 하셨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댓글을 달았다.
난다 작가는 첫 장편 스토리물 연재가 “재밌으면서도 힘들다”고 했다. 그는 “생활만화는 주인공이 나라서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다. 이미 있었던 사건을 결과가 나온 다음 그리는 것이라 ‘왜 그랬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며 “스토리 만화는 인물의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어야 한다. 고 부장이 정중순을 만나러 갈까말까 하는 중요한 사건에서부터, 캐릭터가 음료수를 마시는 사소한 행동까지 선택을 하는 게 재밌으면서도 스트레스다”라고 말했다.
작은 마을의 문화센터를 배경으로 한 잔잔한 이야기인데도 손에 땀을 쥔다. 고 부장이 정체를 들키는 건 아닌지, 이 인물들이 과거에 어떤 일을 겪은 건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지켜보는 서스펜스가 대단하다. 난다 작가는 “다음 화에 볼 수 있게 유도를 해야 하니까 싱겁게 끝나면 안 된다. 궁금함을 유도해야 한다”며 “제가 원래 스릴러 서스펜스 장르를 좋아해서 반전을 주는 게 익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이야기 자체도 고 부장이 탐정처럼 인물들의 정체를 알아가는 내용이라 더 느끼신 것 같다”고 했다.
<도토리 문화센터>는 취미를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고두리 부장이 다양한 취미를 접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난다 작가는 ‘연뮤덕’(연극·뮤지컬 덕후)이다. 난다 작가는 몇 년 전 연극과 뮤지컬 보기라는 취미가 생겼다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서 전했다. 이전부터 영화 관련 만화를 연재하기도 할 만큼 영화도 많이 보고 책도 읽었지만 취미로 여기지는 않은 듯하다. 작가는 “영화, 책, 음악, 그림은 ‘일상’이지 ‘취미’라는 생각을 못했다”며 “덕질은 일상과 분리돼 완전히 다른 걸 한다는 느낌이 있다. 집에 있다가 호텔로 가는, 그런 다름이 느껴지는 게 취미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딸 ‘쌀이’와 남편 ‘한군’이 주로 등장하는 가족 이야기 <어쿠스틱 라이프>가 2018년 10월부터 휴재 중이라 근황을 궁금해하는 독자들이 많다. 난다 작가는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최근 사춘기 전 일종의 파도 같은 것을 겪었다”며 “‘엄마가 뭘 알아’ 이러는 시기였는데, 순간에는 감정이 속상했지만 자연스럽게 거치는 시기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보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고 전했다.
오경민 기자 5k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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