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인이 살았던 미래···"과거가 인류를 구하리라" [책과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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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은 없다. 소유라는 악습은 공동체에서 근절돼야 한다."
공산당선언에 나올 법한 말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려는 건 종교가 아니라 경제.
사회주의 실패 탓에 종종 간과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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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재산은 없다. 소유라는 악습은 공동체에서 근절돼야 한다.”
공산당선언에 나올 법한 말이다. 실은 수도사 베네딕트가 540년 로마 남쪽 몬테 카지노에 수도원을 만들 때 세운 규칙이다. 수도사들은 무소유 정신으로 무장하고 재산을 나눠 쓰며 함께 일했다. 만들고 남은 작물, 포도주, 연장 등은 외부에 팔았는데, 품질이 워낙 좋아 인기 상품이었다. 베네딕트 수도회가 꾸린 '공동 노동, 공동 경제' 모델도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수도원들이 너무 부유해져 18세기 프랑스혁명 당시 재산 몰수를 당한 게 아이러니. 물론 저자가 말하려는 건 종교가 아니라 경제. 사회주의 실패 탓에 종종 간과하지만, 역사는 말한다. ‘공유하면, 부유해지리라.’
독일 만하임 대학 중세학 교수인 저자 아네테 케넬은 '자본주의가 유일하고 최선이며 최고인 경제 체제'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자고 제안한다. 협력하고 공유하고 교환하면서 풍요를 누린 사례가 수없이 많기 때문이다. ‘더 많은 생산, 끝없는 소비, 자연을 착취하는 현재 시스템'은 어차피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게 저자의 경고다.
‘인간은 이기적이어서, 공유 자원은 황폐화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유지의 비극’이다. 너무 강렬한 개념이어서 부정할 도리가 없어 보이지만, 선조들은 자발적 협력과 규제로 공유지를 지켜냈다. 스위스ㆍ독일ㆍ오스트리아에 인접한 ‘보덴호(湖) 어부조합’은 1350년 낚싯바늘 및 어획량 제한, 낚시 금지기간 등을 규정하며 생태 자원을 관리했다. 독일 작센주도 1775년 벌목을 규제했다. “자손을 위한, 당연한 배려”였다.
지금 ‘리사이클링’으로 각광받는 재활용도 과거에는 숨쉬는 것만큼 자연스러웠다. 아예 ‘쓰레기’라는 단어가 20세기 초까지 없었다. 중세 시대 프랑스 파리 중고 물품 시장은 5만여 명이 한 번에 몰려도 집을 가득 채울 물건을 구할 수 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모차르트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을 위해 종이를 구하느라 출판업자에게 편지를 보내 이렇게 한탄한다. “넝마 재고가 더 이상 없다고요? 힘들게 완성해낸 작품을 (넝마를 재사용한) 종이에 옮기지조차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선조들은 창의적 기부자였다. 독일의 거부 야코프 푸거는 1511년 '하우스푸어'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집을 임대하는 사회주택단지를 지었다. 같은 시기 지중해 부유한 시민들은 마이크로크레디트(소액 대출) 은행 ‘몬테 디 피에타’를 설립했다. “도시가 부자가 되면서 점점 빈곤을 낳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프랑스 시민들은 크라우드 펀딩(소액 투자)으로 아비뇽 다리를 건설했다.
장구한 역사를 돌아보면 ‘협력하는 인간’이 보이거늘, 왜 ‘사익 극대화’라는 자본주의만이 유일한 경제 모델로 여겨질까. 산업화 이후 고도성장 시기 ‘옛날에는 모두 가난했다. 자본주의 이후에는, 모두 부자다’라는 인식이 고착화됐기 때문이다. 산업화 이전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풍요를 누렸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상상의 지평을 확장하는 책. 무한 경쟁 체제에 답답함을 느끼면서도 '대안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불어넣는다.
‘미래가 있던 자리’라는 제목도 탁월하다. 과거 다양한 형태로 존재했던 공유 경제, 협력 노동,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 미니멀한 삶은 현대에 다시 각광받고 있다. 코로나19, 경기 침체, 기후 위기 앞에서 우리는 직감했는지도 모른다. 경제가 무한히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며, 이대로는 인류의 미래도 없음을. 다소 장황한 설명이 간간이 집중력을 떨어트리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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