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새로운 ‘구독’형 인류의 탄생

2022. 12. 22. 17: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IT 플랫폼 외에 면도날, 자동차 등도 구독

015B는 1996년 ‘신인류의 사랑’을 통해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새로운 인간 유형을 노래했다. 그리고 21세기의 1/4 지점 즈음, 우리는 또 다른 신인류, ‘구독형 인류’의 탄생을 맞이했다.

(사진 픽사베이)
필자는 현재 잡지사(출판사)에 근무하고 있다. 최근 회사에서 업무 지침 하나가 내려왔다. 2023년 잡지 정기 ‘구독’자 확장에 대한 것이었다. 쉽게 말해 1인당 몇 명 이상의 정기 구독자를 유치하라는 지령이다. 사실 좀 갑갑했다.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 오프라인 잡지를 정기적으로 받아볼 독자를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실 돌이켜보면 ‘구독’이라는 형태의 서비스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었다. 가장 가깝게는 어린 시절 매일 아침 대문 앞에 놓여져 있던 신문 배달이다. 우유도 배달이라는 일종의 구독 형태로 받아 마셨다. 물론 지금도 신문과 우유(주스, 야구르트 등) 등의 배달이라는 이름의 구독이 이루어지고 있긴 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는 게 시대적 현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구독’이라는 단어의 역사적 의미는 ‘책이나 신물, 잡지 따위를 구입하여 읽음’으로 이해될 수 있다. 구해서 읽는다,라는 뜻의 ‘구독’에 ‘정기’라는 용어가 앞서면서 ‘정기 구독’, 즉 일회성이 아닌 주, 월, 년 단위로 정해진 금액을 미리 내고 배달 받는 형태로 변화되었다. 이 구독 형태를 선택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 기업 혹은 브랜드는 일시적으로 많은 자본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루치 신문이 불과 몇 백 원 하던 시절, 월 단위가 되면 1만 원이 넘는 금액이 신문사로 흘러 들어갔다. 한 권에 몇 천 원 하는 잡지를 1년 정기 구독하면 잡지사로 1인당 10여 만 원에 가까운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이렇게 예전의 ‘구독’은 1인 소비자의 수요가 증가하면 증가할수록 회사로 하여금 일시적으로 다량의 자본을 확보할 수 있는 숨통이었다.

(사진 픽사베이)
‘구독’이 필수인 라이프스타일 시대
이처럼 한정적 산업군에서 활용되던 구독의 개념이 현대에 들어 수적, 양적 증가를 이뤄내며, ‘구독’이 없이는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할 수 없는 시대에 이르렀다. 과거의 구독이 ‘제품’을 소비자에게 정기적으로 가져다 주는 공급의 의미였다면, 현대의 구독은 ‘서비스’라는 점을 인지하는 게 중요해졌다. 세상 모든 것을 소비자가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한다는 점. 구독 서비스가 확장되고 보편화되면서 이제 우리는 ‘구독형 인류’로 전환되었다는 점 역시 인정해야만 한다. 어린 시절 대문 앞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신문과 우유는 현대적 의미에선 구독이 아니다. 그냥 배달 서비스에 불과한 것이다. 아마 현대의 구독 서비스를 망라하면 깜짝 놀라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이런 것도 구독할 수 있다고?’라며 말이다.
(사진 픽사베이)
이참에 필자가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아이템들을 꼽아보기로 했다. 일단 OTT 플랫폼 사용료가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넷플릭스, 애플TV+, 디즈니플러스까지 OTT 구독료로 대략 3만 원 이상을 지불한다. 다음으로 뮤직 스트리밍 구독 서비스다. 애플 뮤직, 스포티파이의 2가지를 사용한다. 최근 자동차를 바꾸면서 ‘플로’를 사용하지만 이건 1년간 자동차 회사에서 지불해준다고 했으니 2가지 사용료로 대략 2만 원 정도를 지출하고 있다. 다음은 또 뭐가 있을까? 아이폰을 사용하면서 저장 용량 확장을 위해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1만 원 정도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가정용 TV에서 네 살짜리 아이를 위해 키즈 채널 월 정액 사용료도 내고 있다. 이 역시 1만 원 이상의 요금이 청구되고 있다. 와. 대략 이렇게만 계산해도 어림잡아 7만 원에 가까운 구독 서비스 이용료를 지불하고 있다. 1년이면 80만 원이 넘는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개인용 랩톱을 사용하는 데 있어 마이크로 소프트 오피스 프로그램도 정기적으로 구독하고 있다. 예전에는 누군가 깔아주기도 했고, 불법 복제된 CD를 통해 무단 사용하기도 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근래 구입한 노트북은 특정 프로그램들을 구독해야만 새로운 버전에 대한 자동 업데이트가 이뤄진다고 하는 통에 여기도 연 몇 만 원이 나간다. 최근에는 디지털 콘텐츠 수요가 많아진 잡지 바닥에서 조금이라도 더 멋들어진 영상을 만들고 싶을 때도 프로그램을 정기구독해야 한다. 또 돈이 나간다. 이렇게 술술 새어나가는 금액이 월 10만 원을 훌쩍 넘어간다. 여기에 구독 서비스는 아니지만 근래 최신형 스마트폰은 데이터 사용료를 포함 기기 약정료까지 돈이 술술 빠진다. 그러니까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꾸려나가는데, 그 삶이라는 게 대부분 보고, 듣는 것들인데 연간 100만 원 이상은 우습게 사용됨을 알 수 있다.

스마트폰의 확산으로 탄생한 ‘구독형 인간’
(사진 픽사베이)
필자는 굳이 분류하자면 ‘구독형 인류’의 세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 정도다. 그렇다면 완벽한 구독형 세대는 대체 얼마나 많은 돈을 ‘구독’이라는 명분 하에 지출하고 있는 것일까? 분명 나의 몇 배 이상에 이를 것이다. 이렇게 알게 모르게 지출되고 있는 구독 서비스가 전성시대를 맞이하게 된 배경은 뭘까? 바로 스마트폰의 폭발적인 확산세다. 어떤 OS를 사용하고 있던 그 속에는 수많은 애플리케이션이 포함되어 있고, 게임뿐 아니라 대부분의 앱이 부가 기능 사용을 위해선 추가 비용을 내고 기능을 구독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동시에 모바일의 확산으로 인해 기존에 구독 자체가 불가했던 꽃, 그림, 신발 등과 같은 오프라인 제품들도 구독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구독 서비스는 크게 3가지 정도의 군으로 분류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가 ‘계량화 모델’이다. 기본 무료 기능이 있고 더 나은 서비스를 원할 때 추가 구독해야 하는 경우를 계량화 모델이라고 한다. 비주얼 편집 툴이나 비대면 화상 회의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리뷰가 좋은 사진 앱을 받았는데 멋진 필터를 사용하려면 추가적으로 구매해야 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두 번째는 일반 판매에서 구독 경제 모델로 전환된 사례다. 앞서 필자가 말했던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오피스 프로그램(엑셀, PPT 등)이나 어도비 사의 포토샵, 프리미어 프로그램 등이 그 예들이다. 과거 이 프로그램들은 고가로 판매되던 상품이었다. 하지만 매번 새로운 버전이 출시될 때마다 새 버전을 구입하는 행위는 부담스럽고 번거로웠다. 동시에 불법 복제 버전들이 시중에 많이 나돌았다. 이와 같은 소프트웨어 제조사들이 발전된 온라인 망을 통해 자신들의 업데이트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시대를 맞았다. 그래서 이들은 재빠르게 구독서비스로 전환했다.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현대의 데스크톱, 랩톱 컴퓨터들은 아예 CD롬이 없는 경우도 많다. 정기적으로 비용만 지불하면 이제 시스템을 제거하고 설치하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고객의 부담이다.

마지막은 우리 삶 속에서 가장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소모품 구독경제 모델이다. 가끔 마트에 장 보러 가서 남성 생필품 중 하나인 면도날을 바구니에 담고 결제할 때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굉장히 비싸기 때문이다. 이런 생활 경험치를 적용해 저렴하면서 품질 좋은 면도기와 면도날을 정기 구독형으로 공급하는 업체들이 생겨났다. 여성용품 역시 마찬가지다. 이와 같은 작은 생필품에서부터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실제 생활에서 쓰면 쓸수록 가치가 떨어지는 소모품 분야에서 구독 서비스 상품들이 지속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자동차 구독 서비스를 하면 렌트하는 것보다 조금 더 비싸지만 다양한 차를 입맛과 상황에 맞게 타볼 수 있다. 소모품 구독경제는 앞으로 더 증가하면 증가했지 감소할 분야는 결코 아니다.

(사진 픽사베이)
스마트한 구독형 인간이 되는 법
이런 세 가지 범주의 구독경제 상품을 두루두루 이용하다 보면 사적 경제의 파탄까지는 아니지만 휘청거릴 만큼 지출이 많아질 수가 있다. 필자만 하더라도 월 십수만 원에 이르는 금액이 구독이라는 명목으로 술술 새어나가고 있지 않던가. 하지만 분명 소비자는 거기에 빠져 허우적댈 만큼 어리석지 않다. 언제나 그렇듯 공급자의 반대편에 선 수용자, ‘소비자’는 영리하다. 구독 서비스를 이용하더라도 꼭 ‘정기’라는 의미에 중요성을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현대의 구독 서비스는 일, 주, 월 단위로 쉽게 끊어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자 보호 차원의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 그러니 필요할 때는 어떤 상품을 구독했다가, 필요 없는 순간 즉각적으로 해지하는 경우도 많다. 필자만 하더라도 애초 OTT 플랫폼 모두를 구독했다 정기적으로 하나둘 해지하며 그에 대한 사용료 지출을 조절한다. 기존 영화들을 많이 봐야겠다 싶으면 왓챠를 구독하고, 넷플릭스에 새로운 시리즈가 대거 업데이트 되었다면 왓챠를 끊고 넷플릭스 회원이 된다. 과거에는 정기구독의 의미가 1년 단위로 형성되었다면 지금의 구독 서비스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사진 픽사베이)
심지어 굳이 혼자서 그 구독의 비용을 다 지불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한 용어가 ‘구독팸’이다. 이는 구독 서비스를 통해 형성된 인간 관계를 의미한다. 쉽게 말해 꽤나 비싸게 느껴지는 OTT 또는 SNS 플랫폼 구독 서비스를 ‘1/N’로 나눠서 비용을 내기로 한 것이다. 초기 OTT 플랫폼들은 한 계정으로 몇 명까지 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나눴었다. 예를 들어 3인까지 사용한 서비스라면 계정을 공유해서 그 비용을 1/3로 줄이는 것이다. 구독을 공유하는 패밀리, 즉, 구독팸은 지인도 있지만 특수하게 형성된 관계일 수도 있다. 이런 사례를 막기 위해 서비스 업체들은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고 개발하기도 한다. 요즘 친구들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맺은 인연도 교우관계라 생각한다는 점이 이와 같은 구독팸을 활성화시킨 발단이기도 하다.
서비스의 품질에 따라 도태되는 구독 경제
(사진 픽사베이)
구독 서비스 상품의 대부분은 실물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앞서 말한 면도날, 자동차 등은 제조 산업에서 만들어낸 어떤 실물을 직접 사용하는 것이지만, 많은 구독 서비스들은 소프트웨어적 측면에서 제공된다. 그렇기에 구독 경제라 일컬어지는 구독 서비스 상품들은 향후 더 늘어날 전망이다. 아니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다. 테크놀로지의 발전 자체가 그와 맞물려 진보하고 진화하고 있기에 더 그렇다. 과거 음악을 듣기 위해서는 CD, 카세트테이프, 바이닐 등의 물리적 상품을 구입해야만 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는 극장 입장권을 사야 했고, 작품을 모으기 위해서는 비디오테이프, DVD 등과 같은 상품을 구매해야만 했다. 이들을 모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쌓이면 쌓일수록 처치곤란의 미궁 속으로 빠져듦을 이해할 것이다. 이건 현대의 미니멀 라이프 트렌드에 위배되는 행위다. 환경을 고려하는 ‘필환경’의 시대에도 위반되는 행위다. 구독을 하면 실물을 쌓아 둘 필요가 없어진다. 모든 것이 모바일을 비롯한 온라인 상에서 다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에도 수많은 구독 서비스 상품들이 생겨났다 사라지곤 한다. 언제나 그랬듯 소비자는 영민하고 기민하다. 그들 다수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서비스는 금세 도태된다. 이런 반복적 시도는 되려 구독 서비스의 활성화를 부추긴다.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서비스들은 이미 존재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내 취향에만 맞는다고 하여 그 서비스가 존속되기는 어렵다. 필자의 회사가 과거의 관습으로 잡지 정기 구독자를 모집하는 것 역시 이유가 있지 않던가! 1명의 구독자는 연 10만 원이지만 100명을 모으면 연 1000만 원이 된다. 구독 서비스 역시 같다. 사용자 1명에게는 월 1만 원을 받을 때는 이익이 적지만, 그들이 1000명이면 월 1000만 원의 매출이 생긴다. 이제 소비자들은 새로운 게 나올 때마다 흥미를 보인다. 그러니 구독이라는 명분 하에 진열된 수많은 서비스들이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사용해보고 싶은 현대인의 욕망도 구독 경제에 지속가능성을 부여한다. 물론 내 돈을 지불했을 때 그만큼의 값어치를 하는가에 지속성이 달려 있다. 이제 구독은 ‘서비스’의 개념이 더 중요해졌기에, 소비자에게 어떤 서비스로 만족감을 주는가가 그 승패를 좌우할 것이다.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0호 (22.12.27) 기사입니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