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가 잠자던 바이러스를 깨웠나

김양균 기자 2022. 12. 22.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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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기후위기 건강영향 리포트] ②홍윤철 교수 "21세기의 두 사건, 별개로 보긴 힘들어"

(지디넷코리아=김양균 기자)영화 ‘인터스텔라’(2014·크리스토퍼 놀란) 속의 지구는 사막화와 급격한 기후변화로 인해 전 지구적인 식량 부족으로 신음하는 디스토피아이다. 지구에서 인류의 존속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기에 인류는 웜홀을 통해 또 다른 살 곳을 찾아야만 하는 처지다.

그 모든 사태를 초래한 것은 과거 인간의 과오로 그려진다. 온실가스 농도의 증가와 에어로졸 양의 변화, 삼림파괴로 인한 지표면 반사율 영향 등 인간 활동에 의한 기후변화로 망가져 버린 지구. 온갖 위험이 도사린 우주로 향해야만 하는 영화 속의 인물들은 사랑하는 가족들과 기꺼이 이별을 택한다. 내일을 위한 희망을 찾기 위해서 말이다.

30년 전인 1992년 10월 ‘내일은 늦으리’라는 콘서트가 열렸다. 당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들이 모여 환경보전이란, 당시로선 다소 뜬금없는 주제였지만 톱스타들이 총출동한 흔치않은 모습에 큰 이목을 끌었다.

그런데 내일은 늦을지 모른다는 구호는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해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제6차 평가보고서는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 배출이 앞으로 크게 감소되지 않으면  21세기 내에 1.5℃ 및 2.0℃ 온난화보다도 초과될 것으로 전망했다.

지구온난화의 정도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북극 해빙 ▲적설 및 영구 동토 감소 ▲극단적 고온 ▲해양 폭염 ▲집중 호우 국지적 가뭄 ▲강렬한 태풍 빈도 및 강도 등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기후변화(climate change)는 우리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 그렇지만 지구를 탈출해 우주로 향할 웜홀도, 지구를 구할 영웅도 우리에겐 없다.

(사진=픽셀)

기후변화와 감염병 발생, 우연의 일치에 불과한가

세계보건기구(WHO) 기후변화와 환경과 건강 자문단 위원장으로 활동 중인 홍윤철 서울대의대 휴먼시스템의학과 교수는 기후변화로 인한 여러 영향이 이미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사람들이 기후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부터가 심각한 조짐이라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장기 추세의 변화이기 때문에 단기간에 느끼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조금씩 기후가 이상해진다거나 여름이 길어진다거나 고온 현상이 지속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어요. 이미 기후변화가 우리 생활에 들어와있다고 볼 수 있는 겁니다.”

질병관리청의 제1차 기후보건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의 인위적인 요인에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온실가스 농도 증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한 에어로졸 양의 변화 ▲토지이용도 변화 및 산림파괴로 인해 지표면 반사율 변화로 인한 영향 등이 있다. 인구 성장과 경제 성장으로 산업화 시대 이후 지구 평균 온실가스 농도는 증가하고 있다. 21세기는 1850년~1900년과 비교해 1.09℃의 지표면 온도 상승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기후변화가 우리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지만, 홍 교수가 이상 기온과 이에 따른 건강 영향보다 더 우려하고 있는 것은 바로 재난피해다.

“홍수나 가뭄이 대표적인데, 가뭄은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매우 국지적으로 발생하고 있죠.  과거에는 현재와 같은 규모의 산불이 없었지만, 최근 들어 거의 매년 대형 산불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상 기후 현상이 재난으로 연결되고, 다시 재난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등 건강의 손상을 겪고 있습니다. 재난피해를 기후변화와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기도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기후 변화로 인한 건강의 심각한 문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문 ‘말레이시아 니파 바이러스 발생의 교훈’(Lessons from the Nipah virus outbreak in Malaysia)에 따르면, 1998년~1999년 니파 바이러스의 숙주인 과일박쥐(Pteropus hypomelanus)가 산불과 엘니뇨로 인한 가뭄으로 서식지에서 쫓겨나 먹이를 찾으러 양돈 농장에 드나들면서 돼지가 박쥐의 바이러스에 감염됐으며 이는 다시 사람들에게 전파됐다. 그 결과 265건의 급성 뇌염이 발생해 105명이 사망했으며 10억 달러 규모의 양돈 산업이 붕괴됐다.

또 ‘기후변화에 따른 인수공통전염병 대응 예측: 모기 매개체와 환경 변화’(Forecasting Zoonotic Infectious Disease Response to Climate Change: Mosquito Vectors and a Changing Environment)는 지난 80년 동안 발생한 전염병 대부분이 인수공통감염병으로, 70% 가량이 야생동물에 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으로 후천성 면역결핍증(AIDS)은 유인원으로부터, 조류인플루엔자(AI)는 야생 조류로부터, 신종 플루(H1N1)는 돼지에서 유래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 에볼라 바이러스(Ebolo virus), 코로나19(COVID-19) 박쥐에서 사람으로 온 것으로 보고됐다.

모두 바이러스의 숙주인 야생동물이 사람에 병원체를 전파시키며 신변종 감염병이 발생한 사례들이다. 기후위기가 이러한 감염병 발생 사이의 과학적 인과관계는 아직 보고된 바 없다. 그렇지만 홍윤철 교수는 “기후변화와 신종 감염병 출현이 우연의 일치로만 치부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21세기 들어 신종 감염병이 급증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기후변화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죠. 이 두 가지 현상을 따로 볼 수 있을까요? 시베리아의 동토가 녹으면 아래 오랜기간 노출되지 않았던 바이러스나 세균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병원체는 철새를 따라 이동할 수도 있고, 이동한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를 만나서 인간을 감염시킬 가능성은 충분히 많다고 봅니다.  기후변화와 신종 감염병 출현이 상당한 연관성을 가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편적 건강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 UHC)이란 개념이 있다. WHO는 2013년 UHC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재정적 어려움을 겪지 않으면서 양질의 필수 건강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라고 정의내린 바 있다. UHC와 기후변화는 별개의 문제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젠 그렇지 않다. 홍 교수는 “기후변화가 의료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재난이 발생했는데, 현장에 제때 구급차가 도착하지 않거나 의료시설 자체가 재난으로 파괴돼 의료 제공에 대한 차질이 생겼다고 가정해봅시다. 우리나라는 그 정도로 심각하진 않지만 홍수나 가뭄 피해를 많이 받는 나라들에게는 생사를 결정짓는 문제입니다. 이를 통해 기후변화가 건강할 권리 자체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보편적 건강 보장이 기후 변화와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논의가 최근에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이 문제가 우리가 기후와 건강의 문제를 보는 시각이 돼야 한다고 봅니다.”

제27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7)는 가뭄 등 지구온난화로 인한 심각한 피해를 받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개최됐다. 총회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한 ‘손실과 피해(Loss and Damage)’ 대응을 위한 재원 마련 문제가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채택 이후 30년 만에 처음으로 당사국총회 정식의제로 채택됐다. 손실과 피해 복구를 위한 기금을 설립하고, 선진국과 개도국 인사들로 구성된 준비위원회(transitional committee)를 설립, ▲기금의 제도적 장치 마련 ▲기존 재원 확장 방안 등에 대한 논의를 내년까지 지속하기로 했다.

홍 교수는 기후변화 피해국의 취약성에 집중한다. 취약함은 기후변화 상황 속에서 기묘한 역설을 만들어낸다. 취약한 국가일수록 더 많은 기후변화 피해에 직면해 있지만, 그 취약성 때문에 기후변화에는 큰 기여를 안했다는 아이러니다.

“그들이 기후변화에 거의 역할을 하지 못할 만큼 취약했음에도 가장 많은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결국 가해자라고 할 수 있는 기후 변화를 일으키는데 상당한 역할을 했던 국가들이 피해 국가를 지원해야 한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홍 교수는 세계화 흐름을 역행하고 있는 작금의 국수주의 강화 경향이 기후변화 해결을 가로막고 있다고 보고 있었다.

“‘나만 잘 살자’는 기조가 비극으로 이어질까봐 우려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기구가 더 역할을 해야 함에도 국가주의가 국제기구의 역할보다 더 커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김양균 기자(angel@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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