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정하고 사기쳐"…빌라왕의 덫, 왜 인천 미추홀·서울 강서 몰렸나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1139채를 갖고 있다가 숨져 세입자 수백 명이 거리에 나앉게 만든 '빌라왕' 김모씨(42). 그는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에만 빌라 등 주택을 199채를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인천 미추홀구에도 180채를 가지고 있었다. 인천 미추홀구는 2019년도에도 2000여 가구의 세입자들이 한 사람에게 전세사기를 당했다고 호소해 경찰이 수사중인 지역이다.
부동산 전문가는 이들 지역이 김씨 '타깃'이 된 건 우연이 아니라고 분석한다. △부동산 개발비가 비교적 저렴하고 △주변과 시세 비교가 어려우며 △전세 수요는 높아 사기꾼들이 몰렸다는 것이다.
강서구는 김포공항과 가까워 구 전체의 97.3%가 고도 제한 지역으로 묶였다. 건축물 높이와 용도가 제한받아 부동산 개발이 더뎠다. 전세사기 피해자 오모씨(31)가 살던 L빌라도 2020년에 3층 단독주택을 허물고 지어지기 전까지 일대 부동산 개발이 전무하다시피했다.
오씨는 경기도 안산에 살다가 2020년 말 서울에 전셋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김씨에게 사기를 당했다. 신월동에서 오씨에게 집 중개를 해준 곳은 H부동산이었다. 중개사는 빌라 등 주택 3곳을 보여줬다가 마지막에 L 빌라를 소개해줬다.
불과 7개월 전 지어진 신축이었고 오씨가 '첫 입주'였다. 오래된 빌라들과 수준이 달랐다. 7.2평에 침실 밖 거실도 있었다. 채광이 좋았다. 당시 중개사는 "손님께 특별히 소개해드린다"고 했다. 해당 부동산은 올 초 기준 문을 닫았다.
보증금은 2억300만원이었다. '주변 시세'와 비교는 불가능했다. L빌라 주변은 온통 구축 빌라였다.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된 것들이다. 오씨는 "(보증금이)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중개사는 "집주인이 한달 뒤 바뀔 것"이라고 했다. 이미 등기부등본 상 집주인은 김모씨(42)로 바뀌어 있었다. 수상했지만 오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깡통전세' '전세사기' 용어를 뉴스로 접했지만 자신과 먼일로 생각했다. 오씨는 약 3% 변동금리로 대출받은 1억원과 모아놓은 돈으로 보증금을 냈다.
지난해 7월쯤 오씨는 보증보험 가입을 위해 HUG(주택도시보증공사)에 김씨 관련 서류를 제출했다. HUG는 김씨가 '집중관리 다주택 채무자'라고 했다. 보증사고 2건을 냈거나 3억원 이상 대위변제한 집주인은 집중관리 대상이 된다. 대위변제란 HUG가 보증금을 반환하고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 것을 말한다
오씨의 집주인 김씨는 이른바 '빌라왕'이라 불린 인물이었다. 김씨는 전세보증금을 갚지 않았고, 종합부동산세, 재산세 등 65억원 상당 세금도 내지 않았다. 그는 지난 10월12일 서울시 종로구의 한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사인은 '상세 불명의 질병'이었다.
김씨는 지난 7월 오씨에게 '보증금 갚을 돈이 없으니 집을 사라'고 거래를 제안했다. 오씨는 거절하고 변호사를 선임해 전세 계약을 해지한 뒤 보증금 반환을 요구했다. 김씨는 보증금을 갚지 못했고 법원은 빌라 방을 경매에 부쳤다. 법조계는 오씨가 전세보증금 2억300만원을 온전히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지 않다고 예상한다.
마찬가지로 인천 미추홀구 전세사기가 벌어진 숭의동은 구시가지로 꼽힌다. 이렇게 새로 지어진 부동산은 주변과 시세 비교가 어렵다. 인천 미추홀구의 경우 아파트 1개 단지에 1개 동밖에 없는 '나홀로 아파트'가 많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의 윤지해 수석연구원은 "세대 규모가 작아서 거래량도 적고 현재 시세가 얼마인지 중개사 말 외에는 알 방법이 없다"고 했다.
객관적인 시세 비교가 어려운데 수요는 높다. 김씨가 소유한 주택 대부분은 서울과 출퇴근이 가능한 수도권이란 장점이 있었다. 또 2020~2021년 전세 물량이 대폭 줄었을 때 기존에 살던 전세 만기일에 쫓겨 계약한 경우도 있다. 인천 미추홀구에서 전세사기를 당했다는 안모씨는 "부천에 살다가 전세 물량이 너무 없어서 제대로 시세 비교도 못하고 계약했다"고 했다.
전세사기를 당하면 보증금 반환 가능성이 매우 낮아 주의가 요구된다. 사망한 빌라왕 김씨의 주택은 김씨 부모님이 한정승인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한정승인은 상속 재산의 부채를 차감해 순자산에 대한 채무만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재산 정리에는 최소 2~3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등기부등본 철저히 열람 △부동산 가치 점검 △소유자와 직접 계약 등을 철저히 할 것을 조언했다.
오씨는 "돌이켜보면 신축 빌라, 계약 후 사라진 부동산 등 작정하고 사기를 치려는 일당에게 당한 것 같다"며 "그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된 개인 단위 부동산 중개를 받는 게 현실적인 해법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씨가 사망하기 전까지 수사하던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김씨에게 공범이 있는지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인천=김성진 기자 zk007@mt.co.kr, 박수현 기자 literature1028@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 "광고료도 빼돌려"…이승기, 후크 권진영 고소 - 머니투데이
- 마동석 "출연료 못받아 하차 고민"…'하이브' 촬영 중단, 무슨 일? - 머니투데이
- 장동건·고소영 '400억' 건물주…이병헌은 3년만에 100억↑대박 - 머니투데이
- 박수홍 만난 손헌수 "형 보고 배운 것? 가족간 돈거래 절대금지" - 머니투데이
- 이 사진 한장에…'22살 연하' 박보검과 열애설 난 여배우 - 머니투데이
- "시세차익 25억"…최민환, 슈돌 나온 강남집 38억에 팔았다 - 머니투데이
- 현대차 노조 '정년 퇴직 후 재고용 직원 조합원 자격 유지' 부결 - 머니투데이
- 박나래, 기안84와 썸 인정…"깊은 사이였다니" 이시언도 '깜짝' - 머니투데이
- 정준하 "하루 2000만, 월 4억 벌어"…식당 대박에도 못 웃은 이유 - 머니투데이
- "경찰이 술집에 불러 성관계 요구" 피의자 모친 강제추행…항소심선 감형 - 머니투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