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복장으로 미국 찾은 젤렌스키···의회 연설서 18차례 기립박수

김유진 기자 2022. 12. 22.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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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과 예상보다 긴 2시간여 회담
우크라 군인 서명 담긴 국기 전달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오른쪽)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 의회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전달한 우크라이나 국기를 펴들고 있다. 워싱턴/로이터연합뉴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21일(현지시간) 미 상·하원합동연설을 마친 뒤 의장석에 앉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에게 우크라이나 깃발을 건넸다. 동부 바흐무트에서 러시아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 군인들의 서명이 담긴 국기였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바흐무트의 영웅들이 수백만명의 생명을 살릴 결정권이 있는 미 의회 하원과 상원의원들에게 깃발을 전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했다. 펠로시 하원의장은 그 답례로 이날 의사당 건물에 게양한 성조기를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전했다.

해리스 부통령과 펠로시 의장이 깃발의 양쪽 끝을 잡고 번쩍 들어올리자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러시아의 침공 300일을 맞아 이뤄진 젤렌스키 대통령의 전격적인 방미 일정의 하이라이트였다.

러시아 침공 이후 처음으로 고국을 떠난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 진행됐다. 방미를 사흘 앞둔 지난 18일 일정이 최종 결정됐지만, 백악관은 21일 새벽 1시(미국 동부시간)에야 방문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까지 오는 여정도 비밀 작전을 방불케 했다. 구체적인 동선이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전날 동부 바흐무트를 찾은 그는 폴란드 접경도시 프셰미실까지 열차로 이동한 다음 미군 수송기에 올라탔다. 미군 수송기가 북해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러시아의 공격 가능성에 대비해 공중조기경보기(AWACS)가 순찰했고, 이후에는 긴급 출동한 미 공군 F-15E 전투기들이 엄호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내 질 바이든 여사(왼쪽)가 2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을 맞이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쯤 백악관에 도착했다. 전쟁 발발 이후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카키색 스웨터, 바지를 입고 부츠를 착용한 채였다. 그가 차량에서 내리자 바이든 대통령과 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나란히 서서 인사를 건넸다. 바이든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두 정상의 회담은 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에서 진행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시사주간지 타임이 젤렌스키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한 사실을 언급하며 “당신은 미국에서 올해의 인물”이라고 말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이 지원한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포대를 지휘하는 우크라이나군 대위의 부탁이라며 대위가 받은 무공훈장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건넸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는 매우 용감한 사람으로, 매우 용감한 대통령에게 그것을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설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과분하지만 감사히 받겠다”면서 “여기에도 전통이 있다.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내 아들도 이른바 커맨드 코인을 갖고 있다. 그가 그 동전 중 하나를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오벌 오피스)에서 회담하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전쟁 발발 이후 수시로 통화해온 두 정상의 회담은 예정보다 길어져 2시간 넘게 진행됐다. 회담 이후 공동기자회견에 나선 젤렌스키 대통령은 미국인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묻는 질문에 “평화가 있기를 바란다”며 “여러분의 자녀가 살아서 대학에 가고 그들의 자녀를 가지는 모습을 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특히 “나 역시 아버지로서 말한다”며 자녀를 잃고 복수를 다짐하며 살아가는 우크라이나 부모들이 너무나 많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기자회견 도중 미국의 추가 무기 지원 문제를 놓고 가벼운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더 많은 패트리엇 미사일을 원한다”고 한 발언의 통역을 들은 바이든 대통령이 말없이 웃자 젤렌스키 대통령이 영어로 “미안하다. 우리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일정이 된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말 고맙다. 내게는 과분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25분간 통역 없이 영어로 연설했다. 미국에 도착했을 때와 같은 차림이었다. 민주당은 물론 다수의 공화당 의원들도 연설 중간에 여러 차례 일어나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연설 도중 18차례의 기립박수가 나왔다.일부 의원들은 우크라이나 국기를 몸에 휘감고 참석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특유의 쇼맨십으로 의원들을 사로잡았다. 그는 연설 말미에 “해피 뉴 이어 되세요”(Happy New Year)라는 새해 인사를 살짝 패러디해 “승리하는 해피 뉴 이어 되세요”(Happy victorious New Year)라고 말해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발음과 유사한 단어로 농담을 던지며 푸틴에게 한방 날리기도 했다. 그는 “우리는 ‘푸틴’처럼 자유에 역행하는 모든 사람을 ‘풋인’하겠다(put-in place·분수를 알게 하겠다)”고 발음에 힘을 주어 말했다. 푸틴 대통령의 이름인 ‘Putin’과 영어 ‘put-in’이 비슷한 발음인 점에 착안한 농담이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젤렌스키 연설이 “비범했다”고 평가했다고 CNN이 전했다.

미국 상하원 의원들이 21일(현지시간) 워싱턴에 있는 연방의회에서 우크라이나 국기를 들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워싱턴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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