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현답] 경제 전쟁에 '종료 직전 역전골'은 없다

2022. 12. 22.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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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제 정상에 오르는 길은
탑 쌓듯 오래 공들이는 과정
누적된 체력·실력서 승부 갈려
내년이 상승·추락 갈림길 예감

월드컵 예선 포르투갈전에서 한국을 16강에 오르게 한 종료 직전 역전골은 모처럼 국민 통합과 행복의 순간을 이뤄내고 세계를 놀라게 한 쾌거다. 그런데 '경제 전쟁'에서는 이와 같은 게임 종료 직전 대역전이라는 드라마는 거의 없다. 오히려 한번 밀리면 걷잡을 수 없이 골을 내주는 대브라질전과 같은 일이 흔히 일어날 수 있는 게 경제 현실이다.

근세사 이래 세계 경제의 패권은 스페인, 네덜란드, 영국으로 이어졌고, 그 이후에는 신대륙 미국이 그리고 제조업 강자인 일본과 독일이 주도권 경쟁에 참여했다. 지금은 오랜 정체기에서 벗어나려는 미국과 대국굴기의 중국이 이 사활의 경제 패권 다툼을 하고 있다. 이 국가들이 세계 경제의 정상에 오르는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고, 탑을 쌓듯이 반세기 이상 공을 들인 것이지만, 추락은 썰물 빠져나가는 속도로 이뤄졌다. 패권을 차지한 나라는 개방 국가를 지향하며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들 나라에서는 창의와 혁신이 번영의 동력이 됐다.

그렇지만 이들 국가는 풍요를 누리면서 서서히 자만, 부패, 이념과 폐쇄성이 지배하고 혁신이 지체되며 후발 주자에 주도권을 넘겨주게 된다. 지금은 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경제 패권 회복 노력이 노골화되는 반면, 중국은 억압적·봉쇄적인 '통치 체제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유럽은 분명 세계 경제 속의 존재감이 전 같지 않고,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타격이 무겁게 느껴진다. 그 틈새로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패권 경쟁의 잠재적 주자로 부각되고 있다.

한국은 1996년 설익은 OECD 가입으로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는 비판 속에 몇 번의 경제 위기도 겪었지만, 이를 잘 극복하고, 지속적으로 도약해온 최우량 국가 중 하나였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추락하는 국가의 전형적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적 성과에 대한 자만감, 파이를 키우기보다 나누는 것에만 열중하는 모습, 배타적 민족주의, 통 큰 부패, 갈등 공화국 그리고 과도한 정부의 시장 개입 등이 그것이다.

여기에 외부적 여건도 급격히 악화하면서 내년도 한국의 경제 전망은 암울하다. 1%대 성장률 예상이라는 잠재 성장률도 못 채우는 IMF 이후 최악의 경제 성적표를 쥘지도 모른다. 적자 경제 속에서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등 제조업의 성장이 지체되고 있고, 기업의 아성도 떨어진 듯하다. 정치권은 죽기 살기로 싸우고, 사회 각 부문의 갈등은 날로 거세지고 있으며, 균형과 조화는 사라지고 있다. 위기 불감증까지 만연해 있다.

그렇다고 희망이 끊어진 것은 아니다. 최근 노동계에서 보듯이 MZ세대의 노동관이 실용적으로 달라지고 있다. 워라밸보다는 프로가 되고 싶은 욕망, 국내에서보다는 글로벌을 지향하는 안목, 신한류로 인한 한국에 대한 브랜드 가치 급상승, 사우디·베트남·인도 등 신흥 유망국들과의 연대 가능성 등 밝은 면도 적지 않다. 데이터 기반 경제로의 빠른 전환과 원전, 방산 수출 등에서도 선도국이 되고 있다.

위기 때에는 '거대 담론'보다 민첩성(Agility)이 더 필요하다. 시대와 세대의 흐름과 미세한 변화의 조짐을 미리 파악하고, 반 발짝이라도 빨리 받아들이는 것이 성공의 길이 된다. 그 변화는 현장에서 찾아야 한다. 이기는 전략·전술도 중요하지만, 승리를 결정하는 것은 손흥민의 질주와 빈 곳을 민첩하게 찾아 골을 낸 황희찬의 순발력이다. 물론 계속 쌓아온 체력과 실력이 관건이다. 그러니 정책 결정자도, 기업 경영자도 현장에서 살며 눈을 뜨고 변화를 느껴야 한다. 그 민첩성과 현장 감각으로 산업을 살려야 한다. 내년 2023년이 상승과 추락의 갈림길이다. 16강을 넘어 새로운 세계 경제 패권을 넘볼 수 있다. 우문현답, 즉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조환익 한국뉴욕주립대 석좌교수(전 한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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