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 반려동물의 장애 “편견은 그만 넣어 둬요”
산책을 나갔다가 꼭 수리만한 덩치의 강아지와 마주쳤다. 수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보호자가 말했다. “얘는 앞이 안 보여요.” 당황하고 안쓰러워 “아이고, 어째요” 했더니, 보호자는 늘 다니던 길이라 방향도 저가 정하고 계단이 몇 개인지도 알아서 척척 잘 오른다고, 괜찮다고 했다.
처음 다래와 루이를 만났을 때 아마도 나는 상당히 난감하거나 측은한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장애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괜한 오지랖이었지만. 아닌 게 아니라 다래도 루이도 몸소 증명해 보였다. 안 보여도, 신나게 달리지 못해도, 우리는 얼마든지 괜찮다고. 다래는 발랄하고 애교 넘치는 모습으로 동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루이도 날마다 공원 벤치에 나와 앉아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표정으로 바람과 볕을 느낀다. 내가 그들에게서 처음 발견한 것은 ‘결핍’이었지만, 지금은 그런데도 불편에 굴하지 않는 그들에게 ‘최선’을 배우고 있다.
적어도 그들은 가지지 못한 것, 남과 다른 것에 집중하지는 않아 보인다. 남과 비슷하거나 그보다 나아야 한다는 생각에 몰두하지도 않는다. 그저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다래만 해도 그렇다. 주저앉아 있지 않고, 기억과 후각의 힘을 빌려 걷고 뛰고 냄새 맡는 데 최선을 다한다. 루이는 요즘 휠체어 타는 연습을 하느라 바쁘다. 아직은 불편하고 서툴러 보이지만, 보호자가 멀리서 부르면 두 발과 두 바퀴를 열심히 운전해 보호자에게 달려간다. 반려인들의 열띤 응원을 받으면서 말이다.
그렇기는 해도 장애견 장애묘를 키우는 보호자의 입장은 좀 다르겠다.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더 큰 수고로움을 감당하면서, 종종 장애에 대한 편견과도 싸워야 할 테니 말이다.
한 포털에 장애를 가진 개와 고양이를 반려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카페가 있다. 가끔 들어가서 보면 가슴 아픈 하소연들이 매번 새롭게 올라온다. 주로 장애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편견과 무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이야기들이다. 가령 산책 중인 장애견을 보고 신기하다며 무단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 보호소에서 입양한 다리가 불편한 반려견을 데리고 애견 운동장에 갔더니 ‘애가 저렇게 될 때까지 뭐했냐’며 쑥덕거리는 사람, 휠체어를 탄 개를 보고 ‘저도 살겠다고 저러고 다닌다’며 웃는 사람…. 때로 그런 무뢰한들과 시비가 붙어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과 마주치면 이래저래 속상한 일이 많으니 차라리 깜깜한 밤에 산책을 나간다는 이도 많다.
장애견을 키우는 반려인들의 바람은 비슷하다. 그것은 ‘안됐다’거나 ‘불쌍하다’는 위로도 아니고, ‘대단하다’거나 ‘힘내라’는 위안도 아니다. 그저 말없이, 생각은 생각으로만 넣어 두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 주는 것. 그들을 정말 지치게 하는 건 사랑하는 반려견의 장애가 아니라, 주변의 날 선 시선들과 배려 없이 던지는 한마디란다. 윗글의 ‘장애견’을 ‘장애인’으로 바꿔 놓고 보아도 하나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도 언제든 장애를 겪을 수 있고 그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다. 그렇다면 장애로 인해 편견어린 시선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야말로 가장 간절한 소원이 아닐까. 물론 나 역시 그렇다. 장애와의 동행에 관해서는, 분명하게도 개나 고양이만큼 훌륭하게 수행해낼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 맘)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0호 (22.12.2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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