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끼리 직설적 평가 … 완벽 추구해야 살아남아"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2. 12. 2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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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교향악단 맹활약 韓 목관 연주자들
클라리넷 김한, 내년2월부터
BBC웨일스내셔널 수석으로
핀란드방송교향악단에선
함경, 오보에 제2수석 활동
베를린방송교향악단에는
바순 종신 수석 유성권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

목관악기가 교향악단의 평가를 좌우하는 만큼 한국인 연주자가 콧대 높은 유럽 악단의 기준을 넘어서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실력을 갖춘 젊은 연주자들이 그 문턱을 넘어서면서 편견을 깨고 있다. 유명 악단의 명성에 기여하면서 자기 발전을 거듭하는 한국 목관악기 연주자들은 한국 클래식의 저력을 알리는 일등공신이다.

클라리넷 연주자 김한(26)은 최근 영국 BBC웨일스내셔널오케스트라 수석으로 영입돼 내년 2월부터 활동한다. 북유럽 최고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핀란드방송교향악단의 부수석으로 4년간 활동한 것을 기반으로 이적하면서 수석으로 진급한 셈이다. 김한은 "일반적으로는 하루에 오디션을 보고 최종 선발된 연주자가 통상 2년 정도 수습기간을 거쳐 종신 단원으로 임명되는데, 이번에는 10명 정도가 수차례 주어진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악단이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찾을 때까지 경쟁해야 했다"며 "이적하는 과정에서 마치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자가 된 듯한 느낌이라 새로웠다"고 회상했다.

오보에 연주자 함경.

현재 김한과 함께 핀란드방송교향악단에서 오보에 제2수석으로 활동하는 함경(29)은 지금이 세 번째 악단이다. 22세에 독일 하노버슈타츠오퍼에서 수석으로 악단 생활을 시작한 함경은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 평단원을 거쳐 핀란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호주 퍼스의 서호주심포니오케스트라(WASO) 수석으로 3개월짜리 '단기 아르바이트'를 다녀오기도 했다. 함경은 "핀란드방송악단은 단원들의 외부 활동이 악단을 알리는 기회라고 생각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편"이라며 "유럽 밖의 악단에서 일한 것은 처음이라 새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바순 연주자 유성권.

21세에 독일 베를린방송교향악단에 바순 종신 수석으로 입단한 유성권(34)은 모교인 베를린 국립음대에서 매주 6시간씩 강의하고 있다. 대목인 연말 공연을 앞두고 리허설로 꽉 찬 일정에도 후학 양성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은 마스터클래스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언젠가 정교수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유성권은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국가 음악가가 유럽 악단에 입단하려는 사례는 계속해서 늘고 있다"며 "예전에는 경쟁의식이 강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을 경계했는데, 이제 도전하는 어린아이들에게 내 경험을 나누는 것이 음악 인생의 즐거움이 됐다"고 말했다.

3명의 연주자는 모두 갓 성인이 되자마자 유럽 악단에 입단한 실력파 연주자들이다. 어린 나이에도 평단원을 거치지 않고 입단할 수 있었던 것은 공석이 된 직책을 채우는 채용 방식 덕분이다. 하지만 공급에 비해 턱없이 적은 수요에 신인 연주자가 입단하는 것은 어렵다. 대부분 기존 연주자가 은퇴해야 자리가 나는 경우가 많아 지원자들 사이에서는 기회를 얻는 것부터 운에 달렸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2012년 뉴욕필하모닉에 플루트 정단원으로 입단한 손유빈(37)은 당시 50여 명과 경쟁했고, 유성권이 입단할 당시 경쟁자는 180명에 달했다. 김한은 "수석은 악기별로 두 자리 정도인데 주로 종신 단원으로 임명받기 때문에 해당 연주자가 은퇴할 때까지는 자리가 안 나는 경우가 많다"며 "선택지가 많지 않다 보니 구인공고가 떠서 오디션장에 가면 다른 곳에서 경쟁했던 연주자를 또 만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수석으로서 리더십을 어느 정도 발휘할 수 있는지도 입단에 영향을 준다. 함경은 "수석의 경우 연주실력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을 얼마나 잘 이끌 수 있는지 소통능력도 보고 판단하는 것 같다"며 "지금 악단에서는 경력과 관계없이 의견을 낼 수 있고 그것을 받아줄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들은 한국 목관악기 연주자가 해외 악단의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타고난 재능에 갈고닦으려는 노력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성권은 "종신이라는 위치에 안주하지 않고 꾸준히 좋은 소리를 탐구하려는 자세가 중요한 것 같다"며 "단원들끼리 서로 직설적으로 평가하는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완벽함을 추구해나가는 자세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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