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뭘 믿고 전세 사나요"…'빌라왕' 피해자들 분통·눈물
보증보험 미가입 임차인들 더 피말라…경매 넘어가도 손해 불가피
(서울=연합뉴스) 김치연 기자 = "한국에서는 임대인이 바뀐 사실을 임차인에게 통보할 의무도 법적으로 없고, 임대인 사망 사실도 세금 체납도 임차인에게 알릴 이유가 없다고 하네요. 도대체 우리가 뭘 믿고 전세 계약을 할 수 있나요."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1천139채를 보유한 '빌라왕' 김모씨가 숨지면서 전세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 피해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은 부동산 계약 경험이 많지 않은 20·30대 사회 초년생이다.
빌라왕 사건 피해자인 배모(29)씨는 22일 연합뉴스와 만나 "김씨가 사망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그간 정부에서는 먼저 이 건과 관련해 임차인들에게 안내든 연락이든 한 번 온 적이 없다"며 "피해자들이 초조한 마음에 국토교통부며 주택도시보증공사(HUG)며 전화를 하지만 통화가 연결되기조차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배씨는 2020년 12월 수원 장안구에서 보증금 2억5천400만원에 빌라 전세 계약을 맺었다.
공인중개사를 통해 집을 소개받아 등기부등본과 근저당까지 꼼꼼히 확인했다. 중개사 사무소에선 '깨끗한 매물'이고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가입도 가능하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한다.
계약 당시 임대인 명의는 다른 사람이었으나, 입주한 바로 다음 날 임대인이 빌라왕 김씨로 변경됐다.
사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입주한 지 6개월이 지난 뒤였다. 국토부나 HUG를 통해 안내받은 게 아니라 중개사무소 사이에서 알음알음 도는 '악성 임대인 리스트'에 김씨가 기재돼 있다는 사실을 지인이 알려줬다고 한다.
배씨는 "신축 빌라만 대상이 아니다. 구축인데다 지인을 통해 전세 계약했는데 임대인이 김씨로 바뀐 사실을 계약해지 통보 기간이 끝난 뒤 알게 된 피해자도 있다"며 "임대인이 중간에 바뀌어 버리면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모(29)씨는 지난해 2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 소재 김씨 보유 주택에 보증금 2억7천만원을 걸고 전세 계약을 했다.
당시 임대사업자인 김씨의 해당 주택이 전액 임대보증금 보험에 가입돼 있다고 안내받았고, 국세·지방세 체납 사실과 선순위 담보권 설정도 없다고 기재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하지만 올해 초 보증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HUG에 문의하자 집에 압류가 들어와 가입이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구청에 문의하자 김씨 앞으로 가입돼 있는 임대보증금 보증은 전액이 아닌 40% 보증에 불과했다.
박씨는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면 나머지 60%는 경매를 통해서 받아야 하는 상황이 돼버렸다"며 "부동산(사무소)에서는 계약서에 기재된 내용은 임대인에게 구두로 확인한 내용이고 정상 거래였기 때문에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집을 알아볼 때 더 알아보느냐 아니냐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말 그대로 운이 좋고 나빴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다"며 "멀쩡히 잘 살다가 나도 모르게 임대인이 바뀌었는데 그게 빌라왕일 수도 있고, 문제없는 물건이라고 해 계약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라면서 한숨을 쉬었다.
피해자 중 HUG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들은 더 피가 마르는 심정이다. 김씨 보유 주택 세입자 중 HUG 전세보증금 반환 보증보험에 가입한 이들은 절반이 약간 넘는 수준인 614명으로, 나머지 500여명은 미가입자다.
보증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임차인들은 대부분 박씨처럼 김씨가 임대사업자 보증 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하게 돼 있어, 따로 임차인이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안내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해 4월 1억3천만원의 전세 계약을 체결한 김모(29)씨는 "계약서상 임대인 보증보험에 100% 가입하기로 특약이 적혀있어 믿고 계약했지만 실제로는 가입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며 "보험 미가입자는 경매하는 수밖에 없는데 김씨 미납 세금이 선순위인 상태인데다 경매로 낙찰을 받아도 집값이 하락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전세사기 피해가 급증하면서 세입자가 거주하는 집이 경매나 공매로 넘어가도 국세보다 전세금을 먼저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이르면 내년부터 시행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지만, 아직 입법이 가시화하지 않은 점도 피해자들의 애를 타게 하는 지점이다.
또 다른 피해자 최모(38)씨는 "올해 7월 압류 사실을 알게 돼 변호사를 선임해 전세보증반환 소송을 진행해 승소 결정문을 받았지만 당해세가 임차보증금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법안의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며 "법안이 나오면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경매 낙찰을 받을 계획"이라고 했다.
chic@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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